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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일팔 Apr 30. 2017

긴급조치 45호 대한민국 부동산개혁

어느 큐브세대의 미래 04

소유권은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는 점을 이 자리에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보통 소유권을 물건과 사람과의 관계라고 착각합니다. 그렇지만 물건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물건은 관계를 맺을 힘이 없으므로 물건과 사람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생겨날 수 없습니다. 소유권은 사람 간의 관계입니다. 소유권이라는 것은 내가 이것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이 내게 인정해주는 거죠. 다른 사람과 나 사이에 관계가 생겨나는 것이고,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죠.-한남포럼, 121쪽(김현경)


0.


20XX년 정부가 전국 주요 매체를 통해 긴급 발표를 한다. 이 발표가 대중에 미칠 엄청난 파급력을 우려해 정부는 수방사 병력과 일부 특전사 병력을 풀어 수도권의 민심을 통제한다.


“정부는 20XX년 0월 0일을 기해 전국의 모든 부동산 및 토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긴급조치 45호’를 발표합니다. 이에 국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정부의 지침을 따르십시오. 해당 긴급조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이하 경어 생략). 첫째, 개인 및 단체가 소유한 부동산 및 토지 중 직접 생산 및 상업에 사용하지 않는 부동산 및 토지 일체를 정부의 자산에 유상으로 귀속하며 이는 부동산 및 토지를 소유하지 않고 있는 국민에게 유상으로 양도될 것이다. 둘째, 몰수된 부동산 및 토지에 대한 보상은 해당 부동산 및 토지를 분배 받은 국민으로부터 받게 될 얼마간의 돈으로 지급될 것이며, 또한 그렇게 분배된 부동산 및 토지에서 나온 수익의 절반을 3년간 피몰수자에게 증여함으로써 피몰수자가 겪게 된 피해의 일정 부분을 보정할 것이다. 셋째, 이 조치는 헌법에 준하는 위상을 갖게 되며 모든 민형사상의 소송을 면하고 그 어떤 부동산법의 상위에 위치하는 효력을 갖게 된다. 넷째, 해당 조치에 관한 모든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은 이에 성실히 따라야 한다.” 


1.


땅을 가진 자도 땅을 갖지 못한 자도 정부의 이 발표가 불러올 파장을 예상하지 못 했다. 특히 전국의 수많은 건물주들은 이 발표가 정부 관계자의 매우 심각한 착오에 의한 해프닝이라고 믿었으며, 일부는 그렇게 되리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3일 뒤 전국 관공서의 토지조사관들에 의해 현실로 들이닥쳤으며 그들의 한결같은 상냥한 목소리로 “선생님께서는 어떤 민형사상의 소송을 제기할 수 없으며, 소유하고 계신 부동산은 별도의 이전 절차 없이 약 3개월 뒤 자동으로 국가에 귀속될 예정입니다”라고 통보했다. 대한민국의 건물주가 취할 수 있는 대응은 두 가지였다.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해외로 이민을 가거나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거는 것. 하지만 전자는 그야말로 정부가 원하는 것이었고 후자는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하지 않은 대응이었다. 


2.


정부 발표가 나온 지 이틀 뒤 헌법재판소는 재빨리 이번 조치가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으며 오히려 국민행복을 증진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일구는 헌법의 정신에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전국의 수많은 변호사 중 절대다수가 부동산과 토지의 소유자였으나 자신들의 법에 의해 구속당한 그들은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정부가 예상했던 대로 부동산 가격은 폭락했으며 어떻게 해서든 헐값에라도 부동산을 털고 해외로 내빼려는 건물주와 땅주인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유사 이래 가장 값비싼 재화가 된 토지는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으며 분노한 집주인들의 한숨 소리가 반도를 메웠다. 


3. 


보수 언론은 이레적으로 연일 정부를 향해 격정적인 기사와 논설을 쏟아냈으며 전경련 등 재계단체와 보수단체는 며칠째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정부를 지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 무엇도 떨어지는 땅값의 속도를 멈출 수는 없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완전히 소유해본 적이 없는 빈곤한 서민들은 인생에서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을지도 모를 이 불가해한 기회를 자신의 삶에 제대로 안착시키고자 빨간 눈을 부릅뜬 채 관공서와 부동산 사무소를 들락거리는 한편 얼마 안 되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불법적인 시도를 동원해서라도 미리미리 더 많은 땅을 사놓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냥 정부의 지침을 기다리는 것이 좋을지 자문했다. 20XX년의 불과 5분간 진행된 정부의 짤막한 발표는 대한민국 건립사상 가장 큰 진폭의 요동을 국민에게 안겼다. 


4.


자 여기까지는 경제의 ‘경’ 자도 모르며,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티끌만큼도 없는 서른 살의 미천한 노동자가 망상 속에서 끄집어낸 몇 자의 소설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부동산 개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진보와 빈곤>을 지은 헨리 조지는 이렇게 말했다.


“진보와 동행하는 빈곤을 타파하려면 토지사유제를 철폐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투자를 몰수할 필요는 없고, 다만 토지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을 국가가 몰수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토지에 빌붙어 불로소득을 챙기는 일이 없어질 것이며, 모든 사회 구성원은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자신의 가치를 쏟아부을 것이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아마 대한민국의 국민 중 토지와 부동산 소유관계에서 자유로운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고 누군가는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로 연명하고 있고 누군가는 수백 채의 오피스텔을 굴려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 오피스텔에 숙식하며 폭등하는 월세를 감당하느라 삶을 소진하고 있고 누군가는 자기 명의로 된 20평짜리 아파트 한 동을 얻고자 10년이 넘게 은행 대출을 갚고 있고 누군가는 임대인의 난폭한 행패를 못 이겨 임차계약서를 땅에 펼친 채 목을 매 자살한다. 


5.


땅의 문제는 곧 나라의 문제이고 나의 문제이고 삶의 문제이다. 모든 것의 문제다. 따라서 인간의 거의 모든 것에 손을 뻗치고 있는 토지 문제에 대한 어떤 정책의 후폭풍을 상상하고 유추하는 행위는, 현재 우리가 거하고 있는 삶의 기반, 즉 ‘부동산 사회’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위태로운 삶의 공간이 언제라도 고꾸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어쩌면 가장 폭력적인 수단 이외에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부동산 대개혁이 일어난 한국의 상황은 어떠할 것인가? 도시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서민의 경제는 나아질 것인가? 중산층은 부활할 것인가? 내수 시장을 다시 활기를 띨 것인가? 취업난은 해결될 것인가? 불균형한 노동구조는 복원될 것인가? 질문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6.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한 방향으로부터 쏟아져 축적될 것이다. 도시학자의 답, 사회학자의 답, 정치학자의 답, 부동산 전문가의 답, 물리학자의 답, 소설가의 답, 경제학자의 답, 역사학자의 답, 철학자의 답. 그리고 이 대답은 다양한 형식으로 제기될 수 있다. 정밀한 미래 예측 리포트, 흥미진진한 소설, 영화, 다부작 드라마, 웹툰, 소논문, 에세이. 방식은 다양하다. 그리고 나는 감히 한 가지는 확신한다. 만화가 김수박이 노래했듯, 토지의 수익이 무효가 되는 사회가 도래하면 우리의 노동은 좀 더 가치 있게 될 것이라고.


7.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망상을, 김수박이 자신의 어느 만화에 썼던 글을 인용하며 맺을까 한다.


토지 소유를 통한 불로소득을 차단하지 않으면 한 사회의 노동 의욕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부의 불균형, 양극화,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인해 서민 생활이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100여 년 전의 주장이 100년이 흐른 뒤, 우리나라의 현재와 상관없지 않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 시절,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의 성과물이 땅이라는 가치에 귀속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우리의 목표는 내 집 마련이 되었다.
나는 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마음을 전달하는 일이나, 내 아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의 가치가 땅의 가치보다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흙먼지를 마시며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나, 가정을 꾸리는 일의 가치도 땅의 가치보다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일도, 사람에게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일도, 사람에 필요한 물건을 파는 일도, 노래를 부르는 일도, 사람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도, 공익근무도, 인간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도, 그리고 인간 자체도 땅의 가치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중 제일 비싼 것은 땅이다. 나는 중학교 때 이런 구절을 외웠다.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거짓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듯, 자신과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지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의 20대와 30대를 바치고 있고, 40대와 50대를 ‘충성을 다하여’ 바칠 것이다. 나는 ‘내 집 마련’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이것이 거짓일까?



이 글은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의 2016년 7월 29일 자 방송 “나라사랑♡부동산개혁♡이상평론” 편을 참고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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