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창립기념일 행사가 있었다. 매년 열지는 않고 올해는 사옥건축 및 이전 기념으로 성대하게 열었다. 2시간가량 예정되어 있던 행사였는데 1시간이 훌쩍 초과되었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던 행사라 자리에서 업무를 하려고도 했는데 막상 참석하고 나니 참석하지 않았음 안되었겠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점을 깨달았다.글로벌 사업가가 꿈인 필자는 이런 순간들을 쉬이 지나칠 수 없었다.
멋진 금관악기 연주와 시작된 행사
금관악기 5대가 이렇게 멋진 축제를 더 빛나게 해 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는 멜로디가 줄줄이 나오는데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중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금관악기의 매력은 훗날 필자의 축제날에 샴페인과 함께 멋진 연주곡으로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찬 상상도 했다.
피, 땀, 눈물이 함축된 사람 냄새나는 5분
국가기관은 인간 한 명을 한 사람이 아니라 숫자 1로 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숫자로 관리하는 부서, 필자가 속한 경영관리 직무가 그렇다. 매출, 영업이익, 비용, 인당 생산성, 월별 매출 추이, 전년도 차이, 계획과의 차이 등 숫자를 온종일 바라보는 이 직무는 도무지 생생하지가 않다. 인간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업부 각 리더분들의 5분 PT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리더는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마음을 울려야 직원들이 따른다. 피 튀기는 경쟁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각 사업부 리더가 제시하는 방향성이 매우 원대해 보였다. 앉아서 어떡하지 고민만 한 게 아니라 피, 땀, 눈물이 얽혀있는 성장형 스토리였다.
리더는 수만 번의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창립기념일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CEO 메시지였다. 사옥을 짓기로 검토한 시점은 2017년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이었다. 처음 부지를 검토할 때부터 지역 선정, 설계사, 시공사 선정 등 CEO의 10여만 건 의사결정을 거쳐서 지금의 사옥이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말단 사원은 적어도 40여만 건을 검토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놀라웠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하는데, 안주하지 않고 변화하려면 생각보다 무수한 결정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는구나.
그동안 저건 왜 이렇지라는 생각 없이 회사에 출퇴근했던 필자는 어느 마감재 하나 허투루 결정된 게 없다는 사실을 한 시간 반여의 침 튀기는 열정적인 PT를 듣고 나서야 알았다.
재택근무 vs 원격근무
원격근무를 해야 한다는 CEO의 의지가 정말이지 강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디지털 원격근무를 위해 회사는 코로나 이후 매년, 조금씩 바뀌어왔다. 책상 위의 전화기를 없앨 땐 영업을 어떻게 하지 불안했다. 전화기를 애플리케이션을 연동해 휴대폰을 사용하게 했고, 킬 때마다 무거웠던 사내 메신저는 해외소통까지 자유로운 글로벌 메신저로 바꾸었다. 매일 자리를 예약해 다른 자리에서 근무하기 위해 각자의 사물함과 자리 예약 시스템이 생겨났다. 물론 쓰레기통을 비롯, 각자 자리에 있던 모든 비품들은 없어졌다. 이런 변화들의 길목에서 변화할 때마다 왜 그러는가? 하고 마음속 소심한 저항이 일었는데 그건 그저 과거 습관 때문일 뿐이었다. 매년 전사적으로 행했던 시스템의 변화는 모두 디지털 근무로 전환을 위한 리더들의 고민이 Action으로 변화한 것이었다.
디지털 노매드의 삶
어느 회사는 재택근무라 하여 무조건 집에서만 근무를 해야 한다는 것이 회사방침이라 했다. 우리는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혼용해서 사용하지만,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원격근무는 어디에 있던 직원이 자신의 업무 퍼포먼스만 내면 된다. 말 그대로 전 직원이 '디지털 노매드'가 되는데 CEO는, 각 리더들은 그 방침을 이행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대표의 PPT가 수백 장이 지나간 시점,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선 시각에서야 전체 행사는 마무리 됐다.
PT 중간엔 지루할 틈 없이 Quiz 타임이 다섯 차례 주어졌는데, 무심코 지나친 1층에 나무와 가장 꼭대기층의 나무 이름 맞추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1천여 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회사를 20여 년 넘게 이끌어온 CEO도 존경스러웠지만 막상 번쩍번쩍한 사옥을 지어 그에 얽힌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모습을 뵈니 확실히 '아, 아무나 대표하지 못하겠다' 싶었다.
'마이크를 잡았으니 말씀드려 봅니다'
사실 누구도 남한테 관심이 없다. 자기 살기 바쁘니까 말이다. 그런데 리더는 다르다. 사업이 잘 되고 자신의 사람들이 잘되어야 한다. 장기근속자 시상식에서 바로 전 해외영업 부서에서 함께 일하시던 분이 대표로 말씀하셨다. 기왕지사 마이크를 잡았으니 말씀드려 봅니다'로 운을 띄우셨다. 자신의 사업부가 이런 이런 일을 하고, 회사 전체에 이런 이런 이익을 안겨주니 응원과 지지 바란다는 말을 재치 있게 하셨다. 자신을 어필하고 자신이 속한 사업부를 어필하는데 밉지 않고 되려 좋아 보였다. 무릇 자기 어필시대라는 말은 다른 언어로 변천돼서 셀프 브랜딩, 셀프 어필 등으로 중요성이 확대된 것 같다. 내세우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대다.
필자의 회사생활과 앞으로의 미래도 함께 고민되는 시점이었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어필할까, 나아가서 리더의 자리에 서면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울릴까. 이 회사에 입사한 지 8년 차가 되는데성장하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이 뿌듯하고 보고 배울 점이 많은 리더분들 곁에서 일하는 점이 무척 감사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