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자살 가해자

by 변덕텐트

자살 가해자

의도치 않은 사고였다
너의 손을 잡고 머리를 기대며
높은 땅 위에서 삶을 소진하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며 마지막까지도 사랑하고 있었다

나에게 수도없이 아픈 질문들을 하던 그 아이
우리의 시작은 설렘으로부터였지만
그 순간엔 처절하고 괴팍한 슬픔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쌀쌀한 바람에 살갗은 쓸리고
밀려오는 졸음은 죽음의 일부분을 보여주었다
속이 좋지 않았다
기생충들이 마음도 갉아먹는지
깊게 슬펐다. 오래도록 지쳤다

그 때엔 난 맞잡던 손을 놓았다
더이상 우리는 살 수 없음을 직감하고
함께와 이별하자 말했다

실수였다
정말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만
볼펜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유히 밑으로 미끄러져 갔다
내장이 쏟아지고
두개골은 한 바퀴 돌아갔다
개박살이 난 채로.
휘어있는 꼴이
혐오스러웠다

나는 다시 펜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알던 세계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사고현장의
처참한 잔상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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