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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Sep 01. 2023

남아 있는 나날 by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은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1989년 발표한 작품으로 부커상을 수상했다.


소설은 1956년 영국의 저명한 저택에서 집사로 일하고 있는 스티븐스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스티븐스가 35년간 모셨던 주인 달링턴 경이 사망한 이후,  달링턴 저택을 사들인 미국인 페러데이가 아래서 계속 집사로 일을 하고 있다. 스티븐스는 20년 전 동료였던 켄튼양의 편지와  페러데이의 권유를 계기로 생에 첫 여행을 떠난다.


페러데이의 차를 몰고 켄튼 양을 만나기 위해 엿새간의 여행을  떠나게 된 스티븐스는 달링턴 경 아래서 일했던 지난 세월을 회상한다. 집사(Butler)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스티븐슨은 위대함, 품위, 의무와 충성심에 대해 생각한다. 늘 직업상의 의무가 먼저였던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해야만 했던 지난날들에 대해 생각하며 언뜻 아쉬움을 비추는 것 같기도 했다.


중후한 노신사의 모습으로 좋은 차를 타고 여행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를 달링턴 경 같은 신사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굳이 바로 잡아 주지 않는다. 주인이었던 달링턴 경을 아주 존경하면서도 충성을 다 바치고도, 사후 누군가 그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인다. 달링턴 경의 정치모임에서 집사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으로 정치적, 사회적 역할을 한 것처럼 느끼지만, 그가 한 일의 본질은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임종도, 호감을 느꼈던 켄튼 양의 마음도 지키지 못하며 자신의 젊은 나날을 바쳐서 해 온 일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 합리화해야만 하는 그의 노력이 못내 안타깝고 실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속 깊숙이 알고 있지 않았을까. 가끔은 눈과 귀를 닫고 모른 척해야 내 모습을 합리화하고 지킬 수 있는 것일까.


<남아 있는 나날>은 지난 70년간 영 연방을 대표하는 책 목록(The Big Jubilee Read)에 이름을 올렸다. BBC와 비영리단체 리딩 에이전시(The Reading Agency)는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70주년 (the Platinum Jubilee)를 기념해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매 10년 10권씩을 뽑은 이 목록에서 이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영국 대저택에서 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삶을 아름답고도 안타깝게 그려냈다고 평했다.


앤서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이 연기한 동명의 영화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사소한 설정이 조금 다르고 스티븐스의 생각을 독백으로 듣기보다는 조금 더 직접적인 메시지가 많지만, 영국의 대저택과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집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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