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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Apr 24. 2023

생명을 지키는 일의 흔적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1년, 친구 D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 쓰러진 60대 남자를 보았다. 몇 년 전 배운 심폐소생술(CPR)을 떠올리고 바로 남자를 도왔다. 구급차가 와서 남자를 병원으로 데려갈 때까지. 그 후에 그 남자가 건강하게 회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D는 심폐소생술을 배워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더 확실하게 배워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 주간의 주말을 응급처치(First aid) 수업을 듣는데 투자했다. 그렇게 D는 홍콩 적십자와 세인트 존 두 응급처치 기관에서 자격증을 땄다.


나도 몇 년 전 회사에서 세인트존에서 함께 제공하는 심폐소생술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 수업을 들었고, 심폐소생술 마네킹으로 여러 번 연습했다. 길에서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자신 있게 도울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물었을 때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응급처치 과정을 모두 배워두는 것이 작년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다만 영어로 제공하는 수업이 자주 있지 않고, 광둥어와 달리 3일에서 1주일 정도 휴가를 내야 들을 수 있는 평일 수업이라 신청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올해, 회사에서 홍콩 적십자 응급처치 자격증 수업을 제공한다고 했다. 온라인으로 8시간 정도의 자료를 보고 퀴즈를 풀어야 하고, 3일간의 실습을 한 후 필기, 실기 시험을 보는 형태다. 수업이 열리자마자 자리가 금방 찼지만, 대기를 걸어두었더니 한 자리가 났다. 그렇게, 오래 기다렸던 응급처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응급처치의 목표는 생명을 지키는 것(to preserve life)이다. 생명을 잃지 않는 것, 지켜내는 일은 말만큼이나 어렵다. 응급처치는 심폐소생술을 포함해 자동심장충격기(AED)를 사용하는 법, 출혈과 골절을 대처하는 법 등을 포함한다. 글을 읽고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실제로 그 상황에 놓였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잘 판단해 하나하나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수업은 아침 9시에 시작해 오후 5시까지 계속됐다. 7시까지 출근해 그날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는 만큼 처리해 두고, 미팅룸으로 갔다. 이번 수업에는 16명이 등록을 했다. 평소 만날 일이 없던 다른 부서 동료들과 함께 진지하게 수업을 들었다. 옆 건물 은행에서 회계사를 하셨다던 강사님은 안전 수칙을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같은 상황을 여러 번 침착하고 확실하게 시범을 보였다.


모든 응급처치는 사고 현장에서 나와 환자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장이 안전하다고 판단될 경우 환자의 의식상태를 파악하고, 호흡 상태를 확인한다. 의식이 있는 경우 환자의 부상 부위와 상태를 보고 어떤 처치를 할 것인지 결정한다. 출혈이 있을 때 어떻게 붕대를 감아야 하는지,  혹은 골절이 있을 때 어떻게 그 부위를 보호하고 고정할 것인지에 대해 배웠다. 우리는 곧 파트너를 정해서 부위별 출혈이 있을 때 붕대를 감는 법을 각각 배우고 직접 시도해 보았다. 미팅룸은 곧 손과 팔, 무릎과 허벅지, 발 등에 붕대를 감은 사람들로 꽉 찼다. 머리에 출혈이 있는 경우 거즈를 대고 천으로 고정해야 했다. 표정도 사뭇 진지해서 마치 사고 현장에 나와 있는 것 같았다. 골절의 경우는 더했다.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팔, 어깨, 다리  관절까지 각각 천으로 골절 부위가 움직이지 않도록 몸을 고정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흰 천을 몸에 둘둘 감고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며 재난 현장에 있는 것 같은 긴장감을 느꼈다. 강사님은 미팅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실기시험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들을 더 주의해서 처치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었다.



생명을 지키는 것과 직결된다고 느꼈던 것은 역시 심폐소생술이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길에서 쓰러진 누군가의 생명을 심폐소생술을 통해 지켜 낸 이야기들이 뉴스를 많이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심폐소생술은 심정지가 일어난 환자의 가슴을 압박해 심장의 펌프 역할을 대신해 뇌와 온몸으로 혈액을 순환시킬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의식을 잃은 환자를 발견하면 우선 사고 현장의 안전을 확보한 후, 환자의 의식상태를 확인한다. 반응이 없으면, 현장 주변에 있는 특정인을 지정해서 (e.g. “까만 티셔츠 입으신 남자분”) 구급차를 부르고, 현장 주변에 AED를 찾아서 가지고 돌아와 도와달라고 외쳐야 한다. 바로 환자의 기도를 열고 호흡이 있는지 10초 이내로 확인한다. 호흡이 없다면 바로 가슴 압박을 시작한다. 15~18초 이내에 30회 가슴 압박을 시행하고 2회 인공호흡을 한다. 이때 가슴뼈 아래 절반 부위를 손바닥 뒤꿈치로 5cm 이상 깊이로 압박해야 한다. 두 손은 깍지를 끼고, 양팔을 쭉 펴고 손바닥 뒤꿈치 위에 어깨가 올 정도로 무게를 실어서 시행한다. AED가 도착하면 패드를 부착하고 AED의 지시에 따른다.


마네킹에 2분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연습을 여러 번 반복했다. 처음에는 사람의 가슴을 5cm나 눌러야 하는 게 무서웠다. 손을 겹쳐 압박을 진행하다 보니 손등에 금방 멍이 들었다. 실제상황이라면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더 오랜 시간 반복해야 할 텐데 고작 2분간의 가슴 압박으로 손등이 멍이 들다니. 그 후 가슴 압박을 할 때마다 손등의 통증을 참아야 했다. 이 마네킹이 내 동생이라면, 나는 내 동생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을까. 연습을 모두 마치고도 손이 아프고 숨이 가빴다. 고작 3일의 연습으로 내 양 손등에는 흔적이 남았다. 구급대원과 의료계 종사자처럼 매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흔적이 남았을지 생각하니 더욱더 존경스러워졌다. 


같이 교육받던 동료들과 나는 이게 실제 상황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나 반복 교육을 시키는 거겠지 하면서 말이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내 눈앞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그 상황이 생겼을 때 기계적으로 해낼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서로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게. 



대한심폐소생협회 심폐소생술 시행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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