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제가 석사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했던 그림책이 있습니다.
20대 때의 작업이니깐 꽤 오래전 일이죠.
시간이 지나면 지나간 자신의 그림은 어설프고 어색해서 부끄러워집니다. 그리고 늘 아. 좀 더 잘 그릴걸.이라는 후회도 남고요. 마감에 쫓겨서 더 잘 못한거 같아 아쉽거든요. 물론 저만 아는 부분들입니다.
이제 그 그림책은 시간이 오래 지나 시중 판매는 안 하고 있는데.
최근에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KBS에서 시작하는 일일드라마의 배경으로 출판사가 나오는데 제가 일했던 출판사가 책을 제공한다고요.
드라마 제작 측에서 책 몇 권을 선택해서 대형 사이즈로 부착하고 싶다고 사용 동의를 구하는 연락이었습니다.
'아악 저 지금 그거 똑같이 더 잘 그릴 수 있는데. 다시 그리면 안 될까요?'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책은 그대로 그 옛날의 모습으로 드라마 촬영장의 한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잠들어가는 저의 책을 이렇게 다시 세상에 꺼내어 사랑해준 출판사와 드라마 제작팀에 감사드립니다.
책을 그린다는 것은. 이렇게 세상에 계속 남는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조금 더 책임을 갖고 조금 더 잘 그려야 할 거 같아요.
그럼 저는 새 책 마감을 하러 총총...
(편집장님! 하고 있어요! 이 글 지켜보고 있는 거 다 알아요. 그리고 있어요! 연락 안 하시는 게 더 무서워서 미리 고백 중...)
드라마 속 제 책은.
세트 책장의 첫 번째로 보이는 파란 책입니다.
저 커다란 소품으로 만들어진 책 저도 갖고 싶네욤 ㅎㅎ
#kbs일일드라마 #속아도꿈결
#일러스트레이션 #허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