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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Oct 02. 2019

13. 이라크, 그린존 (8)

고정익기 대신 투입된 회전익기를 투입한다. 적들은 이제 소리 대신 눈으로 감시자를 볼 수 있게 된다. 노딩턴 대위는 적들이 마주하게 될 하인드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다. 유럽 연합군은 독자적인 체제가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각 군에서 병력과 장비, 구조 등을 조합해야 했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동구권의 병력들은 옛 소련 시절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미그기와 하인드, AK들이 손에 익을 수밖에 없었다. 옛 시절에 이름을 널리 알리던 무기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세월이 지나도 그 위력은 여전했다. 이제 놈들은 스팅거를 맞고도 끄떡없던 하인드를 상대해야 했다.


[ 그린팀, 앞으로 15km. ]


사령부의 지침에 변경은 없지만 아직까지 침묵 상태인 만큼 작전 자체는 거부되지 않았고 전술 상황도 아직까지 우위에 있는 상태... 하인드가 상공에서 적을 묶어두는 동안 그린팀은 그 사이 합류하여 적을 무력화한다. 상황은 노딩턴 대위의 의도대로 풀려가고 있었다. 놈들은 아까 공격조가 몽땅 날아가 버려서 그런지 몰라도 멈춘 채 가만히 있기만 했다. 적이 위축된 상태인 건 좋았지만 아직 무장 능력과 패키지의 위치는 불명이었다. 정보가 더 필요했고 그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친구들이 문득 생각나 노딩턴 대위는 통신 채널을 연결했다.


[ K-64, 아이린 1-1입니다. ]

[ 아이린, 수신. ]

[ 적에 대한 전술 정보가 필요합니다. 패키지와 적의 위치가 서로 구분됩니까? 혹은 무장 상태에 대한 정보라도? ]

[ 확인, 전송 중. ]


CIA 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분석 정보를 보내왔다. ATCS의 터미널에 압축된 데이터가 전송되면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X레이, 열 적외선, 통신 감청, 자기장 검출 등의 영상 자료가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되었고 그 양은 정말 방대했다. 노딩턴은 그중 1순위 태그로 표시된 자료들을 우선 필터링하여 살펴보았다. 세밀하게 살펴보던 노딩턴의 눈에 뭔가가 잡혔다. 열원 검색 사진과 자기장 검출 사진을 각각 다른 레이어에 겹쳐 보니 쇠붙이 종류에 반응을 보이는 보라색 입자들이 손 주변에서 검출되지 않는 열원이 하나 있었다. 노딩턴 대위는 직감했다.


[ 아이린 1-1, 패키지 위치 확인. 패키지 위치 확인. ]


즉각 윌리엄 터너 박사의 위치가 ATCS에 공유되었고 이제 죽을 뻔한 박사의 신병은 상부의 결정에 왔다 갔다 할 판이었다. 이렇게까지 위치를 자세하게 알려 놨으니 무시는 못할 것이다. 노딩턴 대위는 다음 전술 행동에 돌입했다.


[ 스페이드 1-1, 경고 방송이 가능한가? ]

[ 수신, 외부 송출용 스피커는 장착되어 있습니다. ]

[ 스페이드 1-1, 목표물엔 적군이 민간인 패키지를 억류하고 있는 상태다. 가능한 교전을 회피하고 이들을 무력화해야 한다. ]

[ 확인, 종용해보겠습니다. ]


공중을 선회하던 하인드는 조심스럽게 차량 행렬의 후면으로 접근해 갔다. 정면과 측면은 차량 내 좌석 배치를 이용해 적이 움직이기 쉽지만 뒤돌아 서서 사격 방향을 잡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배후 공간으로 이동한 하인드는 호버링을 실시하면서 로켓과 기관포를 장전 상태로 놔두고 150m까지 접근했다.


[ 아이린, 센트럴이다. ]

[ 확인, 센트럴. ]

[ ... CAT 팀을 지원 보냈다. 패키지와 적군 이송에 활용하도록. 이상. ]

[ 확인, 센트럴. CAT 팀의 지시 관제를 실시. ]


노딩턴 대위의 입가에 배부른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지금쯤 상층부에서는 '명령에 따르지 않는' 대위를 놓고 얼굴이 벌게져 있을 사람이 몇 명 되었을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의 알력 싸움으로 민간인까지 몽땅 날려 버릴 수는 없었고 더군다나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그걸 그냥 명령 때문에 놔버리는 건 유럽 연합군의 체질에도 안 맞았다. 상부에서 보낸 CAT 팀, 회수조의 블랙 호크에 이동해야 할 좌표를 전송하며 노딩턴 대위는 그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 그린팀이 아이린에게. 위치 도착. 뭐야, 저 하인드는...? ]

[ 아이린 1-1, 그린팀에게 송신. 발포 금지, 발포 금지. 확인. ]

[ 수신, 발포 금지. 뭐야, 우리가 아군인지도 몰라 볼까 봐? ]

'걱정돼서 그렇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린팀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차량을 측면으로 선회하여 차량의 역할에서 움직이는 포대의 역할로 변신했고 상부 해치를 열어 40mm 유탄 발사기의 총구도 돌려놨다. 척 보고 스내치를 계획 중임을 알고 투항하는 적에 대한 무력화를 실시할 준비를 하였다. 그 모습을 본 노딩턴 대위는 또 한 번 감탄이 나왔다. 역시 전쟁을 10년 동안 해 온 사람들 다웠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될 동안 반격이 있을 법도 했지만 그럴 조짐은 없었다. 노딩턴 대위는 그래도 열원 영상과 자기장 검출 영상을 계속 주시하며 루 중위에게도 중계했다. 수 틀리면 날려 버린다는 건 변함없는 사항이니까.


[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가서 노크라도 하나? ]

[ 아이린 1-2입니다. 투항 권고를 방송할 예정입니다. 하인드를 통해서요. ]

[ 누가? 저 헬기에 스피커가 있다고? 허, 이런 일 많이 해본 것 같군. ]

[ 아이린 1-2, 이런 일에 적합한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은행이겠지. 노딩턴 대위는 아까부터 끊임없이 OPCON 권한을 터미널을 통해 요청하는 게 ATCS 화면에 다 보였지만 무시하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통제권을 넘기지 않고 스내치를 끝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계속되는 통제권 요청이 노딩턴 대위에겐 경고로 보였다. 닥터 왓슨의 경고였고 지금까지 작전을 진행하면서 느낀 불협화음이었다. 이 상황은 내 손에서 끝내야 아무 문제없게 된다. 루 중위가 눈짓으로 OPCON 요청에 응하라고 신호를 주었지만 노딩턴 대위는 외면했다.


[ 아이린 1-1이 스페이드에게. 경고 방송 실시. ]

[ 확인, 통상 경고용 방송을 실시합니다. ]


통상 절차는 경고 후 강제 진압이었지만 노딩턴 대위는 불응하면 첫 번째 차를 벌집으로 만들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다 데려갈 수는 없었다. CAT 팀이 도착하면 작전 통제가 더 까디로워 지니 뭔가 상황을 간결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런 결심을 루 중위의 터미널로 전송하고 응답을 요구했다.


'여기서 손을 놔버리고 끌려 다니면 닥터 왓슨 팀이 위험해져. 우리끼리 해결하자.'

'OPCON 요청이잖아요? 무시할 만한 게 아닌데요?'

'현장 지휘관이 우선이야. OPCON 은 다음 지원을 요청할 때 우선권을 가지게 되겠지. 우리끼리 하자.'


다행히도 루 중위는 수긍해 줬다. 절차를 중시하는 루 중위는 가끔 명령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어 이런 때에 손을 놔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교전 상황 발생 후에 현장 지휘팀과 대응 팀이 아직 철수하지 않고 후속 작전을 계속하는 지금은 이런 외부의 개입보다 현장팀들의 지휘권 및 작전권이 우선된다. 센트럴도 그걸 알기 때문에 CIA의 요청을 묵살할 수 있는 거였다. ISAF 가 작전을 펼치던 때라면 상상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유럽 연합군이 중동의 질서를 지키고 있었고 여기서도 전투는 유럽인들이 치르고 있었다.


[ 스페이드 1-1이 아이린에게. 적군 응답 무. 후속 조치를 요청. ]

[ 아이린 1-1이다. 표적을 지정한다. 경고 사격 실시. ]


노딩턴 대위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루 중위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고 루 중위는 곧장 그린팀에게 표적 지정 요청을 보냈다. 10여 초 뒤에 그린팀으로부터 첫 번째 차량에게 표적 지정용 레이저가 송출되었고 하인드는 신호를 따라 30mm 기관포 사격을 가했다. 표적 주위가 곧장 먼지 구름이 일어났다.


[ 그린팀이다. 꼬리에 있던 차량이 후진하는걸? ]

[ 도망치려는 거군. 아이린 1-1, 스페이드에게. 후속 전진하는 차량이 보이는가? 날려 버려라. ]

[ 육안으로 확인. 교전. 건, 건, 건(Gun, Gun, Gun). ]


위협적이었지만 먼지 구름만 만들어 냈던 하인드의 기관포는 이번엔 원래의 취지에 맞게 불꽃을 수놓았다. 하인드의 거너는 정확하게 차량의 중앙, 사람이 승차하는 구역에만 탄환을 집중시키고 유폭을 염려해 엔진 기관부는 쏘지 않았다. 먼지 구름이 자욱하게 일어났지만 노딩턴 대위는 차량과 탑승자 모두 무력화되었음을 직감했다. 루 중위는 파괴의 현장에 눈길조차 안 주고 남은 2대의 향방을 끈덕지게 살펴보고 있었다.


[ 아이린 1-2, 그린팀에게. 지상 관측 요청. 확인 요망. ]

[ 그린팀이다. 움직임 없음. 이봐, 저렇게 쏴대면 인질극이라도 벌이는 거 아냐? ]

[ 아이린 1-1, 그린팀에게. 그렇게라도 적이 일단 움직여 줘야 합니다. 차 안에 틀어 박혀 있으면 패키지를 최종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과격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안 그럼 직접 달려가셔야 할 텐데요? ]

[ 아, 그건 사양하고 싶군. 하인드 친구들을 믿을 수 없어서... ]

[ ... 제가 통제하니까 그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


하지만 일리는 있었다. 인질극이 벌어지고 사태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이면 아프가니스탄식 해결책을 CIA 쪽에서 쓰려고 할 것이다. 현재도 연결되어 있고 작전도 보고 있으며 통제권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아프가니스탄에서 드론을 운용할 권한을 얻은 미국 측이 얼마나 많은 폭탄을 원격으로 조준해서 표적을 날려 버렸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를 것이다.


14시간 동안 전쟁을 할 수 있었던 2000년대의 과도기를 지나 현재는 밤이나 낮이나 버튼과 카메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이점을 놓치지 않고 쉴 새 없이 폭탄을 떨궈 되었다. 뉴스는 사람들에게 알고 싶은 것만 알고 싶을 만큼 전달해 줄 뿐이었다. 여긴 뉴스를 전달해 줄 그 카메라조차 없다. 묻어 버리려고 미국 쪽에서 손을 쓰려고 한다면 저 하늘에 떠있는 하인드는 곧장 타격을 가할 테고 그럼 그린팀, 아이린, CAT 팀은 손 놓고 그냥 봐야 한다. 적과도 싸우는 동시에 시간과도 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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