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lack Compan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창환 Oct 02. 2019

14. 이라크, 그린존 (9)

[ 아이린 1-1, 전달. 방송 재개. ]

[ 확인, 아이린. 방송을 재개한다. ]

[ 그린팀, 전진하겠다. 부담을 좀 더 줘야겠군. ]


ATCS 터미널을 통해 노딩턴 대위는 라인 대형을 갖추고 천천히 전진을 취하는 그린팀을 확인하였다. 하인드에 의해 파괴된 차량에서 서서히 연기가 솟아오르는 가운데 긴장감도 고조되었다. 이상하리만치 침묵하는 적군이 의심스러웠다. VBIED의 가능성도 있고 끌어들여 근접 거리에서 공격을 가할지도 모르는 경우다. 그냥 나와 주면 될 것을... 노딩턴 대위는 한층 머리가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 쉽지 않군요. 괜찮겠습니까? ]

[ 모르겠네. 공격을 가했는데도 반응을 안 보이는 건 꽤 나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

[ 감시 장비를 모두 동원하고 있지만 상황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

[ 알아... 그럴 것 같구먼. 2번째 차량에 손님이 있다고 했나? ]

[ 네, 그렇습니다. 2번째 차량 뒷자리입니다. 공교롭게도 창가 쪽이네요. ]

[ 제길, 쏴도 한 명이 남는군. 깔끔한 처리는 힘들겠어. ]

[ CAT 팀과 합류해서 양쪽에서 압박하시죠. 거의 다 왔습니다. ]

[ 그쪽이랑 통신해봤나? 준비는 해둬야 할 것 같군. ]


노딩턴 대위는 루 중위와 그린팀 간의 교신을 계속 들으면서 CAT 팀의 합류를 준비했다. 하인드에 이어 이 친구들도 알바니아 군 소속이었다. 강한 억양의 음성 교신보다는 압축된 텍스트 정보를 공유해 상황을 인지시켰다. 혹시나 영어를 못 알아들을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도 CAT 팀은 상황 인식 응답을 보내왔고 지시된 루트로 비행 궤도를 맞춰 주었다. 통합 지휘 체계를 갖춰놔도 이런 부분에서 갖은 충돌이 나는 유럽 연합군이지만 그런대로 굴러는 갔다.


[ CAT 팀 지원 예정, 10분 뒤입니다. ]

[ 이제 나오게 하거나 다 붙잡으면 되겠구먼. 지시는? ]

[ 팔루자 방식 환영만 제외하고 다 해 볼 생각입니다. 경고, 교전, 경고, 교전... ]

[ 이봐, 관둬. 자기 친구들이 벌집이 되었는데 가만히 있는 놈들이야. 그게 통하겠나? 다 죽이자는 거지. ]


루 중위는 뭔가 말하려다가 갑자기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닫았다. 노딩턴 대위는 잠자코 그가 방향을 찾길 기다렸다. 답답한 공방 상태였지만 전장을 굴러 다닌 그린팀이 저기 있었고 그들과 가깝고 그들의 상리를 아는 루 중위였다. 그가 방향을 못 잡으면 제시 가능한 답은 이제 하나로 좁아지게 된다. 게다가 지상 지휘관은 그였다.


[ 공식적으로는, 적군에겐 현재 교전 허가가 발효된 상태입니다. ]

[ 그래서? ]

[ 차량도 날리고 적군을 뭉개 버렸지만 교전 허가 명령과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잘 남아 있습니다. 방송에 나와서 총질을 하는 양키들로 몰아세울 수는 없겠죠. ]

[ 아, 그렇군. 삼단 논법, 결론은? ]

[ 비공식적으로는... 안 나오고 있으니까 저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나올 때까지 부숴 버리는 수 밖엔 없습니다. 적이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항복하겠소 하고 나오게 하는 방법이 지금 안 통하고 있네요. 잘 아시겠지만 이게 충격과 공포 압박 방법이었지요...]

[ 그거 밖엔 없어? 총으로 해결하자고? ]


루 중위가 그 대목에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노딩턴 대위는 바라봤다. 속으로 암담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후의 대답은 노딩턴 대위의 몫이었다.


[ 아이린 1-1입니다. 노크를 시도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 젠장... ]

[ 모든 주파수와 영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폭탄 감시, 현재까지는 이상 없습니다. ]

[ 이봐, 장난감 상자는? 그건 폭탄 아냐? ]

[ 냉동 상태로 터지는 폭탄은... MilNet 엔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

[ 빈약하군, 빈약해. ]


머리가 두 배로 아파지는 기분이었지만 현실이었다. 적군, 박사, 장난감 상자. 이걸 모두 확보하려면 적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노딩턴 대위는 계속 상황을 명쾌하게 보려고 생각을 굴렸지만 다른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적에게 근접해 직접 나오라고 차 문을 노크해야 하는 상황. 이라크에서 수많은 현장 정보요원이 바로 이와 같은 접촉 단계에서 목숨을 잃었다. 10여 년을 전장에서 보낸 그린팀이야말로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노딩턴 대위는 다른 답을 몰랐다. 그리고 노크를 얘기한 순간부터 지원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이게 이라크의 교훈이었고 뒤늦게 날아와 합류할 CAT팀에 대한 배려였다.


[ 버티는 놈이 이기는 게임 같군. 결국엔 문을 벌컥 열어야 하는. ]

[ 위험도가 높은 첫 번째 차량부터 검색하고 두 번째 차량으로 넘어가지요. 폭탄 전문가는 원격으로 연결해 두도록... ]

[ 관둬, 웬만한 건 다 해체할 수 있으니까. ]

[ 알겠습니다. ]

[ 제기랄, 아이린... ]

[ 네, 말씀하십시오. ]

[ ... 맥주, 아이스 박스에 채워놔. ]

[ 알겠습니다. 준비해 두죠. 아이린 아웃. ]


노딩턴 대위는 스내치를 위해 하인드의 화망을 격자로 배치되도록 위치를 조정했다. 하인드는 이제 차량 전면에서 운전석에 있을 적군에게 30mm 기관포를 들이 되고 가만히 나오기를 종용할 것이다. 노딩턴 대위는 그린팀이 조금씩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혀 가는 것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CAT 팀은 시간 상으로 볼 때 그린팀이 한참 수색을 하고 있을 때 도착할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지휘부로써 손을 쓸 수 있는 사항은 없었고 고통스럽게 인내하는 게 전부였다.


[ 선탠도 참 짙게 해 놓았구먼. 아무것도 안 보여. ]

[ 80m 접근 중. ]

[ 거기서 잘 봐야 한다고. 우린 이제 다른 거 신경 못 쓸 테니까. ]

[ 확인, 센서 감지 중. ]


폭탄 신호를 송출하는 주파수 감시기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지만 온 신경을 거기에만 쏟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차량 자체가 폭탄으로 보일 지경이었고 과거에 고물 같은 소형 자동차조차 폭탄으로 변모하던 기억을 되살려 방심하지 않으려고 했다. 차량을 정차시킨 지 꽤나 시간이 흘렀으므로 차에 탑승한 적들이 폭탄 조끼를 입고 나온다 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치는 필요했다. 노딩턴 대위는 상부로의 통신 채널을 오랜만에 개방했다.


[ 센트럴, 아이린이다. ]

[ 센트럴, 수신. ]

[ 적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의 대응 방식을 지시해 달라. 이상. ]

[ 센트럴이 아이린에게. 위협 요소를 포착 시 즉시 제압, 제거하도록. ]

[ 확인, 아이린 아웃. ]


총을 들고 나오거나 나오자마자 죽음의 찬송 문을 외우는 순간 날려 버려라 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노딩턴 대위는 지시 사항을 루 중위에게 전달했다. 당연한 지시였겠지만 폭탄으로 간주되고 있는 저 차량들을 수색해야 하는 그린팀에게 확보 운운하면 당장에라도 욕을 한 바가지 얻어먹을 수 있었으니 여의치 않으면 갈겨 버려라 라는 지금의 명령은 중요했다.


[ 스페이드 1-1, 근접 엄호가 가능하겠는가? ]

[ 확인, 아이볼(Eye-ball) 관측 거리로 접근함. ]


하인드에게 적군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거리까지 접근하도록 지시를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하인드의 로켓포와 기관포를 그만큼 가까운 곳에 위치시켜 무력으로 적의 의지를 꺾기 위함이었다. 적이 방어 거점에서 농성을 결심하였으므로 이러한 결의를 약화, 나아가 제거하기 위해서는 적의 공격 화력보다 월등한 무력을 동원해 적을 타격한다... 미군은 이러한 종심 타격 전략을 7단계에 걸쳐 준비했다. 지금은 그 교리와 반대가 되는 방식인 '압박자'를 종심 근처에 작용토록 한 셈이었다. 노딩턴 대위는 부디 적군이 하인드의 압박에 손가락 하나 까닥 못하고 있기를 바랐다. 이제 남은 건...


[ 그린팀, 재빨리 끝내십시오. ]

[ 알아, 알아. 어느 거부터 확보할까? 상자, 박사? ]


노딩턴 대위는 터미널에 입력된 목표 우선순위 표시판을 다시 살펴봤다. 1순위는 상자, 2순위는 패키지라 지칭된 박사였다.


[ 첫 번째 차량부터 시작하죠. 상자를 확보해야 합니다. ]

[ 확인. 저 헬기 좀 딴 데로 옮겨줘. ]


신중하게 2대의 차량을 포위하던 그린팀 중 2명이 첫 번째 차량으로 접근해 갔다. 노딩턴 대위는 헬기를 선회하여 차량의 후방 쪽으로 가도록 조정했다. 이제 차량은 헬기와 그린팀에 의해 십자 포화망 속에 검색당할 운명에 처했다. 노딩턴 대위는 말없이 긴장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 25m 접근. ]

[ 스내치 개시. 헬기로 경고 방송 전파. ]


그린팀은 총구를 매섭게 각 차량의 창문을 겨냥했고 하인드에서는 아까와는 다른 내용의, 차량에서 내리라는 방송을 개시했다.


[ 반응 없음. ]

[ 차량에서도 꼼짝 않고 있습니다. 적외선으로 봐도 움직임이 없네요. ]

[ 마이크로는? ]

[ 말도 안 하고 있습니다. 창밖만 보고 있나 봅니다. ]

[ 젠장. 좀 더 접근한다. ]

[ 확인. ]


25m 에서 15m로. 이제 완전 레드 존에 돌입한 상태라 폭탄이 터지면 그린팀에선 반드시 사상자가 나오게 된다. 노딩턴 대위는 원격으로 제어되는 폭탄을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노이즈 카운터'를 가동했다. 그린팀을 비추고 있는 드론에서 소형 발사체가 발사되어 해당 지역으로 날아갔다. 노이즈 카운터는 강한 지향성 전파를 감지하면 바로 그 주파수 대역에 아주 강력한 노이즈를 발사해서 해당 기기와 주파수를 입력받을 기기를 물리적으로 과부하시키는 목적을 수행하게 된다. 단, 사용 범위가 좁기 때문에 지금처럼 스내치 작전에서야 써먹을 수 있었다. 아프간에서, 이라크에서 IED에 호되게 당한 미군과 나토가 연합해 개발한 첨단 무기 중의 하나였다. 수많은 무기가 비싸게 개발되고 바로 고물이 되어 버렸지만 이건 야전에서도 잘 쓰이는 유용한 물건이었다.


[ 방송 개시. ]


헬기에서 다시 차에서 내리라는 내용을 강압적으로 전파했지만 무반응. 이젠 열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13. 이라크, 그린존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