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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Jan 13. 2020

23. 쿠웨이트, 쿠웨이트 시티 (5)

"모하비 차관, 에코 프로젝트는 이제 누구의 주도 하에 움직이는 그런 계획은 아니지. 나도 잘 아네. 촘촘한 건설 계획만큼 자금 지원도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차관 스스로가 설계했으니까. 난 직접 그 프로젝트에 참여할 생각은 없어. 다만 새로운 필요성과  방식에 대해 얘기해 주고 싶군."

"새로운 필요성...이라면..."

"차관, 그 계획을 구성하고 실행하는 스스로는 못 느끼겠지만 그 계획은 지금 중동과 아프리카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인프라 구축 공사라네. 원유 관련 사업들만 이슈로 삼고 또 비교하면 그 보다 더한 규모로 진행된 원유 산업 단지 조성 사업도 있지만 분명 이 사업은 거대하다네. 차관 스스로가 감성적인 면보다는 이성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숫자라는 현실만 주시하는 경향이 있을 테지. 모하비 차관, 거대한 송수관과 담수 시설이 현재에도 조금씩 키를 높여 가고 있는 그곳은 사막일세. 텅 비어있는 공간, 바람과 모래에 이겨내야 살 수 있는 곳. 비워져 있던 곳을 우리가 채우고 있네. 그다음은 무엇이 생기겠는가?"

"... 도시겠지요."

"그렇다네. 인간에 의해 채워진 도시겠지. 인간의 규율에, 인간에 의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도시. 차관, 그것은 에코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신대륙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네. 하지만 난 다른 하나를 보고 싶군. 도시는 아프리카에 세워지고 아프리카만의 모습을  보일 거라는 점."

"네, 그럴 겁니다."

"차관, 난 아프리카 연합 방위군 창설 계획을 알고 있네. 신대륙을, 신도시를 지킬 사람들이 분명 필요해질 거야. 하지만 그 사람들 모두 아프리카 사람들이네. 그 사람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 질문하신 의도를 모르겠군요. UN 산하 질서 유지군과 같은 제한된 임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려는 그들을 왜..."

"간과하지 말게나. 아프리카와 전쟁의 관계를. 각 국을 관통하는 그 땅엔 도시 이전에 전쟁이 있었고 전쟁은 사막에 삼켜져 갔지. 그러나 그 사람들은 알아. 그들의 땅에 세워지는 도시와 풍족한 땅이 그들에게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 시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편협적이군요. 왜 그렇게 단정 지으시는 겁니까?"


아프리카 연합 방위군의 창설 목적은 노인이 지적한 대로 에코 프로젝트의 도시 구역과 생산 시설, 자산 등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도시 방위를 필두로 인구가 유입되고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방위군도 점차 규모를 늘려 나가면서 점차 발전시킬 계획이었고 노인의 지적은 직접적이었지만 핵심은 관통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각 국의 이해 사정과 국내 사정이 혼잡하게 얽혀 창설 계획은 에코 프로젝트의 건설 속도에 비해 지극히 지지부진인 상태였다. 하지만 산업부 소속인 모하비가 그 문제까지 관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UN 평화 유지군은 2006년을 기점으로 아프리카 분쟁에 대해 단계적인 철수를 진행 중인데 분쟁은 약화될 기미를 안보였다. 중앙아프리카의 문제가 점점 인근 국가로 확대되어 나아갔기에 아프리카 연합 방위군 창설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인종 문제가 불거져 나오면서 창설 시기는 오리무중이었다.


"안전. 안전은 사업의 기본이지. 에코 프로젝트는 돈이나 사업의 과장된 방향성 때문에 쓰러지지 않을 거야. 만약 쓰러진다면 직접적이고도 실체화된 공격에 의해 쓰러지겠지. 차관, 에코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사막에 없던 물을 만드는 일이라네. 순수한 사람도, 순수하지 않은 사람도 바라마지 않던 염원 그대로를 투영한 일이지. 이상적인 면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은행가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사업적인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그 땅은 안전해져야 한다네. 그리고 그런 시도는 일이 시작되었을 때 같이 진행되어 뿌리를 내리는 것이 좋겠지."

"총재님, 전 서방계에서 교육받고 자라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재님이 말씀하신 그 안전을 위한 시도라는 게 대충 어떤 모습일지 연상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연합 방위군 창설이 표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간 부분에서 군대를 빌려 오자는 발상을 저는 수긍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진행할 수도 없고요."


사실 노인의 말은 에코 프로젝트가 처음 얘기 나왔을 때만큼이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었다. 어느 누가 사막 속에서 1년을 보내려고 한단 말인가. 그 문제 때문에 지금 에코 프로젝트가 난관에 봉착하려는데. 또한 중동이 아닌 어떤 이해 관계도 없는 서방 세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평화와 안전에 갑자기 관심을 기울일 일은 없었다. 차라리 '좀 더 개발된' 이라크나 아프간을 선호하겠지... 그리고 단순히 사람의 문제도 아니었다. 걸림돌은 너무나 많았고 그 과정과 비용들은 일반적인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은 신경을 꺼버릴 만한 규모임이 분명한데 왜 은행 연합회에서 이런 얘기가 꺼내지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  앞서 차관을 친히 초대한 이유는 단순히 돈을 꿔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걸 상기시켜 주고 싶군. 모하비 차관, 하지만 내가 이 자리에서 말한 사실들을 터무니없는 구상안으로만 몰아세우지는 말게나. 결정은 내릴 수 없는 문제이니만큼 오늘은 뜻을  전달한 것으로 마치려고 하네. 부디 좋은 결정을 내려 주게나..."




돌아오는 길에 모하비는 생각에 잠겼다. 하비브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사과를 표했지만 모하비에겐 들리지 않았다. 궁금증만이 더 불같이 타올라 납치하듯 하비브를 차에 태우고 속사포처럼 질문을 퍼부었다. 모하비가 궁금했던 건 구상안의 주체로써 이번 일에 총이라고는 잡아보지도 못한 순한 친구가 어떤 이득을 취하는지가 우선이었다. 민간 군사 기업이라니... 온전한 성품의 하비브가 꺼낼 소재라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앞에서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오랜 친구가 이 일의 시작점이었다.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모하비의 근원적인 질문은 거기에 있었다. 아프리카 내부의 내전 상태야 이미 반세기를 넘게 지속되어 왔고 그때마다 피를 불렀다. 하지만 내전이라고 칭해지는 것처럼 살육은 국가 내의 부족 간 학살 상태로 벌어졌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남아프리카 각 국은 정부와 군벌 간에서 영토의 지배권을 놓고 대립하는 상태였고 국가와 국가 간의 대립 상태는 흔치 않았다. 사실 애초에 아프리카 연합 방위군의 전선이 된 구상안은 피의 대립을 겪고 있는 그 국가들이 짜 놓은 상태였다. 에코 프로젝트는 물의 생산과 공급은 중동 지역에서, 그리고 그 땅의 방위는 송수관이 지나가는 아프리카 각 국이 담당하기로 계획되었다.


"... 물어볼 것이 많겠지."

"왜 계획을 숨겼나? 그것부터 들어봐야겠지."

"총재님께서 한 가지 잘못 말씀하신 게 있다네. 계획의 시작은 내가 아니야. 내가 구체화 하긴 했지만 에코 프로젝트에 무언가를 더하자는 생각은 총재님께서 먼저 하셨다네. 처음에는 정체된 사업 구조 대신 빠르게 성장하는 신규 사업에 대한 참여에 의미를 두었지만 에코 프로젝트가 점점 더 많은 의미의 가치들을 보여줄 수 있는 걸 깨달아 감에 따라 총재님도 다각도로 원래의 계획을 수정하셨지. 자네도 알다시피 총재님은 은행가의 모습보다 정치인의 모습이 더 어울리지 않는가? 총재님은 새로운 땅의 의미를 진정 알고 계신 분이지."

"... 그래서?"

"내가 단지 은행가이기 때문에 손익 계산을 한다고 보진 말아주게. 아프리카엔 분쟁이 많아도 너무 많아. 특히 에코 프로젝트로 녹지로 만들 서남아프리카 지역은 특히나 심하지. 그래서 아프리카 연합 방위군이 창설되려고 했지만 그 방안조차 정치적, 인종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걸 알게 되었지. 모하비, 그 거대한 공사를 단지 기업에서 고용한 소규모 사설 경비대로 방어할 계획인가? 중동에서 공급될 자원들을 탐내는 군벌 조직들이 벌써부터 공격 징후를 보이고 있는 마당에? 자네의 영역이 아닌 건 알겠지만 자네가 핵심 인물 아닌가? 우리 편이 되어 주게나."

"하비브, 입에서 입으로 그 계획이란 게 나올 때마다 점점 거대해지는 건 알고 있나? 제대로 된 계획이 있기나 한 건가?"

"있다네. 총재님은 자네를 이해시키기 위해 머리말들만 해주었지. 자네가 허락한다면..."

"아냐, 멈추게. 듣고 싶지 않군."


대화는 다시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모하비는 머리가 지끈 아픈 느낌이었다. 방금 전까지 들은 반쪽의 진실들은 부끄럽지만 외면했던 내용들이었다. 실제로 에코 프로젝트의 공사 시기는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준비 단계로써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작업에 우선시하고 있었지만 안전하지 않은 분쟁의 땅에 담수 시설을 비롯한 녹지를 갖추었을 때 어떤 문제들이 생겨날지 걱정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무결성을 추구하는 건 아니지만 이 프로젝트는 돈의 가치보다는 순수하게 땅을 일구고 사막을 녹지로 만드는 본래 목적에 맞게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했다. 하나는 맞았다. 그 땅은 안전해져야만 했다.


"자네가 나 보다 더 많이 에코 프로젝트의 현 단계를 알고 있는 것 같군."

"그렇지는 않아. 난 자네를 통해 에코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고 자네를 통해 현재 상태를 얻는 것뿐이지. 나도 듣는 사람이라네."

"듣는 사람?"


듣는 사람... 에코 프로젝트는 비밀스러운 계획이 애초부터 아니었기에 누군가 관심을 표명하는 건 당연했으나 직접 이권을 위해 관심을 표명한 집단은 없었다. 아랍권에서 사업이 시작하려는 지금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세력들은 누굴까? 등장을 참으로 이상하게 해서 관심을 끄는 재주가 있었다. 더군다나 전혀 다른 관점으로써 말이다. 없던 분쟁도 마치 생겨날 거라고 위협을 가하면서... 모하비는 문득 학생 시절 지겹도록 들었던 보험 판매원들의 수법이 생각난다. 그때와 다른 건 지금은 국가 단위로 속삭이는 세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대체 어디까지 끌고 들어간 것일까. 그 점이 궁금했다.


"하비브, 얘기해 주게. 누군가, 그들은?"

"..."


하비브의 눈에서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고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모하비는 차분히 기다렸다. 진실을 듣기 위해서는 언제나 용기와 기다림이 필요한 법이고 지금이 그때였다. 은행 연합회에서도 하비브도 자신의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들은 흔적이 농후했다. 배경이 누군가. 지금 이 시점에서 모하비가 궁금한 건 바로 그 점이었다. 이처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이제 그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아니, 사실 지금 이 배경이 더 중요했다. 이미 계획이 세워져 있었고 자신은 후에 통보받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이제부터는 추측이었다.


"하비브, 이건 중요한 문제네. 누가 배후인지. 내가 지금 들은 이상 공식적인 자리에서 넘어가는 건 여기까지네."

"공권력이라도 투입할 것 같은 분위기로군."

"하비브... 명예를 걸고 얘기하는 거네. 친구로서 이렇게 추궁하는 것도 정도에 어긋나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네."

"그다음은 뭔가?"

"이봐, 몰라서 묻나? 이 자리에서 오고 간 내용은 친구인 나에게 한 내용도 있겠지만 차관인 내 입장도 있다네."


하비브는 신중하지만 무게감이 있는 모하비의 말에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망설임은 다소 의외였다. 그는 한 은행의 대표이고 그 은행은 민중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그는 인망 높은 기업가였고 정치권에서도 영향력이 컸다. 그 누구보다도 하비브 자신 스스로 받고 있는 사회로부터의 평가를 잘 알고 있었을 텐데 그가 지금 망설이고 있었다.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면... 심각했다.


"모하비... 아니, 친구."

"... 새삼스럽게 왜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게. 회의장에서 진행된 계획의 단면을 알려주지.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군..."


모하비는 그때 오랜 친구였던 이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그가 품고 있었던 걱정의 크기가 어땠을지 상상할 수 없었지만 격정적으로 얘기를 그때의 모습을 되짚어 볼 때 그 어떤 음모도 여기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모하비, 권력자들을 믿나?"


하비브의 물음은 위와 아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중간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진지한 표정으로 말미암아 모하비는 간신히 국왕에 대한 지칭이 아님을 마음속에서 떨쳐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자네가 일컫는 권력자들이 내 위에 있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군."

"그건 당연하지. 젠장, 난 일루미나티나 프리 메이슨 같은 음모론에서 출현하는 집단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니야. 자네가 내무부에서, 산업부에서 뭔가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마다 그들이 있었다네. 그들은 현실적인 집단이야. 현실을 움직이는 돈을 매개체로 행동을 이끌어 내지. 그들은 집단이면서 동시에 의지일세. 그들을 조종하는 집단의 우두머리란 존재하지 않아. 그들은 흐름을 만들지. 돈을 통해,  돈을 통해서 말이야. 돈은 그들에게 의지의 산물이면서 열쇠일세. 수많은 의지를 담고 담아 마지막엔 돈을 들이밀지."

"이봐, 서두가 장황하군. 그쯤이면 되었네. 오늘 있었던 일과 자네가 일컫는 그들과의 관계성은 뭔가?"

"... 우린 그들을 특별한 지칭 없이 단지 그룹이라고 일컫는다네."

"그룹?"


그룹, 숨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리킬 때 쓰기 좋은 딱 좋은 단어였다. 그런 호칭이라면 무슨 목적으로 결성되었는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런 동시에 유치하기 그지없는 단어이기도 했다. 내부 인원들은 자신들을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는 게 분명했다. 하비브는 기이한 그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1970년대 유럽에선 냉전 시대를 발 밑에 두고 가시나무처럼 성장한 조직들이 있다네. 적군파, 붉은 5월, IRA... 그들 모두는 신세계에서 강대국과 싸우는 방식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의했지. 테러 말일세.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우리 옆에 붙어 있는 이라크가 말 그대로 붕괴하면서 감옥에 가고 재판을 받아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세계로 숨어 버렸지. 그들은 1970년대의 어두운 교훈들을 그대로 이해하고 있던 부류들이었고 실제로 그 전략에 입각해 서방세계와 싸우던 자들이었네. 시간이 흘렀고 당연히 싸우는 방식 또한 진일보했지. 그들은 물리력만을 이용한 게 아니네. 그들은 미디어와 돈을 이용하기 시작했지. 서방 세계엔 돈, 다시 말해 물질이 넘쳐나지. 그렇기 때문에 건물을 부수고 사람을 죽인다 한들 그들에겐 털끝만큼의 피해를 입힐 수도 없었고 입힌다 해도 금방 복구되었지. 그들에게 진정 피해를 입히고 충격을 주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필요했지. 2001년 9월, 결국 그 목표는 실행되었다네. 군사 목표가 아닌 목표에 대해 타격을 입히고 그동안 구축해 왔던 자신들만의 망을 통해 전 세계로 그 소식을 실어 날랐어. 전 세계가 그 모든 걸 동시에 보았고 동시에 충격을 입었지. 상상을 넘어선 성공이었다네. 중동 내에서 가장 적대적인 세력들조차 경악하고 있었을 때 그룹은 움직였다네. 누구도 제3 차 대전을 의심치 않고 있었을 때 그들은 빠르게 서방계의 금융권을  잠식해 들어갔네. 그리고 뿌리를 내려 그곳에서 성장했고. 대리인을 내세운 이사회와 위원회들을 거머쥐고 다시 그들은 숨었지. 10년, 20년.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이제 나타난 거야. 모하비, 그들은 우리를 겨냥하고 있다네. 이 모든 일들은 우연이 아냐. 그들의 목적이 설계되었고 그걸 수행하기 위해서 위기가 구성되는 거고 차츰 조여들고 있어. 이해가 되나?"

"너무 장대하군... 하비브, 장대하다 못해 거짓말과 전혀 다를 게 없어 보여. 대체 무슨 얘기를 꺼내는 건가?"

"자네가 모르는 것이 있어. 지금 내가 말하는 실체는 분명 존재하네. 믿기지 않고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지금부터 내 말을 진실이라고 생각해 보고 들어주길 바라네. 친구로서 말하건대 이걸 지금 이 자리에서 믿지 않는다면 난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네."

"좋네, 좋아. 들어보지."


하비브는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모하비는 이 오래된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의 실체를 잘 몰랐고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 모하비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비브는 자신에게 몰입된 채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모하비, 결론부터 말하자면 테러 조직도 발달했다네. 그룹은, 냉전 시대에서 전해져 온 테러 조직의 또 다른 머리란 말일세. 21세기 초반에 그들 입장에서는 서구로부터의 엄청난 사냥을 당한 이래로 생존의 방식을 달리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지. 그들은 그들의 적으로부터 장점을 흡수하기로 하였어. 조직의 분화였지. 공격 조직과 운영 조직이 하나의 조직 내에 운영되던 그들은 아무리 조직을 축소시키고  점조직화해도 결국 사냥꾼들에게 차츰 제거당하는 치킨 게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네. 세포 조직들의 성격을 바꾼 거야. 앞서 말한 서양계에 대한 금융권 잠식은 폭탄 대신 돈을 택한 테러 조직들의 담당이었어. 과거와는 달리 그들은 공격을 담당한 그 어떤 조직과의  연계성이 없다네. 법적으로 깨끗한 화이트 컬러들이 바로 그들이지. 그들 자신도 테러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할 거야. 서방계가 공격 조직에 대한 제거를 중점으로 두고 활약하고 있을 동안 그들은 돈을 끌어모으고 생명을 유지할 방법을 찾았지. 법으로 위장된 사업들과 우리 중동의 오일 머니는 그들에게 칼이나 다름없었어. 언론들은 유려한 표현으로 기업 간에 벌어진 이 돈싸움을 포장했지. 환율 전쟁, 자원 분쟁, 경제 블록 간의 대립... 모하비, 자넨 왜 이리 순수하단 말인가? 그 허허벌판 사막에 환상 정원을 마련하면 모든 이가 편안해 질거라 생각한 건가? 물이 돈으로 거래되는 세상인데 그 물이 무한정 나올 방법을 사막에, 도시에 마련해 놓고 아무  문제가 없길 바라다니... 자네는 자네가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르겠지. 아니, 나 자신도 몰랐다네.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전 까지는."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누가 이 사업을 노린단 말인가?"

"모르겠는가? 그룹은 드디어 찾은 거야. 다시 옛날처럼 자신들의 온전한 세력원들이 자리 잡을 곳을. 그 모든 것과 동떨어진 사막에서, 그것도 잘 갖춰진 도시로써 말일세."


하비브의 말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모하비는 한동안 모호한 표정을 얼굴에서 떨치지 못했지만 결국 결론이 도달했다. 그는 이제야 하비브가 그토록 경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고 그래서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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