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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창환 Jan 11. 2022

각자의 상처에 대해...

(이 글은 완성본이 아닙니다. 완성이 되면 이 소제목을 삭제하겠습니다.)

01. 무엇이 상처인가?


삶이 상처가 되기 위해선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고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칫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헤쳐나가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때마다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받았다. 어려운 일은 고민하고 더 잘 알 수 있을 사람에게 물어보며 나누고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충실하게 사회생활을 했다, 했었다. 그렇게 10여 년을 한 업종에서 일했다.


상처가 없었을까?

아니었다.

잘 회복이 되었을까?

아니었다.

나는 망가졌다.

머릿속 어디든 어느 부분은 분명 망가져 갔다.


26살부터 시작했던 일의 기억과 결과와 일상은 10여 년이 흘러 지금에 이른 지금, 삶의 곳곳에서 난도질하듯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말투에서,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 생각의 방향에서, 판단의 근거에서, 행동의 원인에서, 감정의 근원에서, 그리고 그것들이 지속된 이후 찾아오는 결과의 모습에서...


이제 남은 건 겪고 난 뒤에야 찾아오는 회상이다. 몇 년이 흐른 뒤에야 이제 돌이켜보는 과거와 현재. 일할 때엔 단지 조그마한 차이로 느꼈을 것들이 이제는 크게 느껴지고 일할 때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들이 이제는 큰 마음을 먹고 바라봐야 하는 사항이 되었으며 과거를 조우하고 기억하는 것이 그리움과 행복의 시간이 아닌 아픔과 고통이 함께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무엇이 과거의 기억을 상처로 돌려놓았을까? 이제는 알 거 같다. 일하면서, 생활하면서 곳곳에서 마주쳤던 실패... 실패들이 원인이라는 걸.




02. 상처는 어떤 모습인가?


그래서 남겨진 상처는 나에게 어떤 작용을 했는가?  표면적으로는 반복되는 중얼거림과 함께 깨어나는 악몽이 될 수 있다. 이게 좀 웃긴 게 ‘예전에는’ 그냥 일하는 장면일 수 있는 일상이 시간이 지난 뒤의 꿈속에서는 송곳 같은 질문을 던지는 당사자가 되는 점이다. 시차가 있긴 하다. 무려 10년이긴 하지만... 10년 전에 있었던 일상이 이제 돌아와 송곳이 되는 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때에 정확했던 답변과 결과가 시간이 지난 지금 결과로 보았을 때 실패가 되었고 그로 인해 영향받은 영역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의 느낌은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자다가 악몽을 꾸는 형식으로, 아니면 잠이 오지 않아 보름달 아래서 덜덜 떨고 있는 모습으로, 차를 운전하고 있지만 실제로 보고 있는 환경은 사막 속의 어느 계곡을 지나가면서 폭탄이 터질지 덜덜 떠는 모습으로 느껴질 수 있다.


어떤 모습이든 간에 상처는 개인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가장 강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닌 점점 마음의 틈을 노린다. 이 점이 가장 크다. 상처를 앓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는 이유는 물리적인 상처가 있을 때와 의식적인 상처가 있을 때 정말 달라진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할 때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든 무너진다는 것엔 변함이 없다. 둘 다 무너진다는 측면에선 다름이 없다. 상처의 원인을 넘지 못하고 한계에 봉착했다고 생각하며 그 자리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그 사람은 상처의 고통 속에 남겨지게 된다. 어떤 외부에서의 접근이 있어도 철저하게 고립되어서 말이다. 그러나 그 시간, 그 공간, 그 다짐은 분명히 존중받아야 한다.




03.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까?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것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상처와 기억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실패를 경험한 당사자가 스스로 질문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의 실패가 나를 지배하는가?

나의 실패에 오게 된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가?

그 실패의 상처를 이기고 다음으로 나갈 수 있는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 또한 스스로의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나 힘들어'라는 문장으로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인지할 수는 없다. 스스로 자신의 존재와 개인에게 안겨진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면 그 문제의 크기와 중요성, 그리고 어떻게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인지 시킬 수 있을지 방법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다양한 다리 위를 걷고 있는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일한 방법은 없다. 심리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래서 의사들은 환자의 마음속을 둘러보기 위해 다양하고도 깊은 질문을 할 것이다. 제 3 자의 입장에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낼 방도가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조차 힘겨울 수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문제를 설명하고 현재의 문제를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하고 인식하는 것은 문제를 안고 있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돌아가서 상처를 바라보는 외부인은 우선 그 사람의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문적인 의사의 시각을 아닐지언정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과 교류가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정서적인 공감과 감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개인이 안고 있는 '상처'와 '기억'에 대해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혼자 두지 말아라. 가장 깊은 곳의 상처를 홀로 놔두는 시간이 길수록 그 상처는 더 커질 뿐 결코 아물지 않는다. 지겹도록 얘기하고 주제로 꺼내어 되풀이하고 주변 사람이 싫증 낼 정도로, 그리고 그 주제가 지극히 평범한 상황(술 안주거리)이 되도록 얘기하자. 결코 한 사람에게 중요한 사항이 아닌 것처럼...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어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툭툭 털고 다른 일과 다른 생활로 집중할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에겐 바람 소리와 발자국 소리마저 평생 소스라치게 만드는 요인으로 남을 수 있다. 모든 문제의 답이 치유된다로 귀결될 수는 없다. 다양한 사람이 있든 다양한 결말이 있을 수 있음을 주변 사람들 또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상황을 겪고 있을 당사자가 하루 하루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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