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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기영 Dec 01. 2019

김밥집에서 만난 "마이크로 매니저"

동네에 김밥집이 새로 생겼다. 그 앞을 여러 번 지나쳤지만 음식을 먹어 볼 기회는 없었다. 일찍 아니 정시에 퇴근한 어느 날, 아이와 함께 그 김밥집에 들렀다. 아이는 늦은 간식을 먹었다고 해서 치즈 김치볶음밥 하나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식당 안에 손님이 많이 없어 보이는 데도 주방과 홀은 매우 분주해 보였다. 포장을 해 가는 손님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뭔가 매우 바빠 보였다.


유심히 살펴보니 사장인듯한, 중절모를 쓴 아저씨가 계속해서 직원들을 채근하고 있었다. 수저는 이렇게 가져가시고, 이거 빨리 치우세요, 아 그거 치즈 볶음밥은 토치로 그을리면 돼요, 아니 그거 말고 저거부터 하라니깐. 이미 수저통을 옮기고 있는 직원한테 수저를 이렇게 가져가라고 하고 있었다. 우동 국물을 옮기고 있는 직원한테는 옆에 있는 빈 그릇을 먼저 치우라고 잔소리를 해댔고, 이미 토치를 들고 있는 직원한테 치즈 볶음밥은 토치로 그을리면 된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사장의 잔소리에 직원들은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는 일이 많이 없음에도 모두들 바빠 보였던 것이다.


Photo by Jakub Kapusnak  | unsplash.com


아이는 지난번에 먹었던 김밥 맛이 어땠고, 치즈 볶음밥이 어땠는지 얘기하면서 뭐니 뭐니 해도 눈꽃 치즈 떡볶이가 제일이라며 조잘거렸다. 아이가 참새처럼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직원들을 닦달하던 중절모 아저씨가 우리 쪽을 힐긋 보더니 주방으로 다가갔다. 곧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저기 왜 아직 볶음밥 안 줬냐고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 직원의 표정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장이 하도 이리저리 간섭을 하니 주방 직원이 실수로 요리를 하지 않은 듯했다. 사장은 김밥 담당 직원한테 급히 꼬마 김밥을 하나 말아 달라고 해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며 일단 허기를 달래라고 하고는 계산대로 돌아갔다. 사장에게 김밥 담당 아주머니가 다가갔다.


"사장님, 이거 POS기가 너무 불편해요"
"왜요? 이게 그래도 최신 기계인데?"
"아니 제가 여러 식당에서 일을 해 봤지만 이거는 화면이 너무 복잡하고 메뉴도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여사님이 기능 숙지를 잘 못하신 것 같네. 저도 여러 군데서 일을 해 보았지만 이게 제일 쓰기 편한 POS 기에요"


김밥 담당 직원은 동네 다른 김밥집에서도 오랫동안 일을 해서 우리도 얼굴을 아는 분이었다. 경력이 꽤 있는 직원이 불편사항을 얘기하는데, 사장은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을 탓하며 한마디로 묵살해 버렸다. 얼굴이 붉어진 직원은 제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조용히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Photo by Jonas Leupe | unsplash.com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손님도 거의 없을 즈음, 밖으로 나갔던 사장이 아이스크림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다들 고생했다며 이것 좀 드시라고 갑자기 친절을 베풀더니 밖으로 다시 나갔다.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몇몇 직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사장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보였다.


음식은 그럭저럭 먹을 만했지만, 식당이 전혀 관리가 안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밥을 먹는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보통은 사장이 없고 직원들 (특히 아르바이트생들) 끼리만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저 김밥집은 사장이 원인이었다. 사장이 업무의 흐름을 깨고 있었고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 뜨리고 있었다.




김밥집에서 마주친 사장은 마이크로 매니저의 전형적인 유형이라 생각한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뛰어들어서 음식을 나르고,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직원을 이리저리 간섭했다. 수저를 어떻게 놓는지 까지 매번 일일이 지시를 하고 심지어 토치를 들고 있는 직원에게 그건 토치로 그을리면 된다고 재차 강조를 했다. 숙련된 직원이 얘기하는 불편사항도 들은 체 만 체 했다. 경청은커녕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며 면박을 주었다. 이렇게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 뜨린 뒤에 사장은 아이스크림을 한 보따리 사 와서 나누어 주었다. 병 주고 약 주고 이다. 직원들의 사기가 다시 올라갈 리가 없다.


Image by cdd20 | unsplash.com


회사에서도 이런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뛰어난 업무성과를 보여서 리더로 발탁된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실수가 팀원이 해야 할 일을 본인이 직접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내가 누구보다도 그 업무에 능숙하니 실무자가 하는 일이 답답해 보인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업무를 직접 처리해 버리고 만다. 이렇게 되면 그 직원은 업무를 배울 기회도, 배운 업무를 숙달시킬 기회도 잃게 된다. 리더가 현업을 처리하느라 정작 리더로서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효과적으로 필요한 순간에 조언을 하거나 도와준다면 오히려 일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필요치도 않은 곳에 간섭을 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면 직원들의 의욕을 상실하게 할 뿐이다.


김밥집 사장처럼 매니저가 모든 결정의 순간에 관여를 하고 싶어 하고 시시콜콜한 사항까지 잔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팀원을 믿지 못하니 업무를 위임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전반적인 업무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 지나치게 관여한다. 모든 사항을 자신이 컨트롤하고 싶어 하고 작은 내용에 집착하면서 의사결정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팀원은 매번 보고서를 만드느라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못 할 지경이 된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믿고 맡기고 나서 혹시라도 직원이 실수를 한다면 그것을 매니저가 책임지고 직원과 함께 수습하면 될 일이다. 이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시시콜콜 간섭하며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좋은 관리자라면 어떤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목표만 주고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는 직원들에게 일임할 수 있어야 한다.


Photo by Mimi Thian | unsplash.com


리더는 잘 들어야 한다. 그 이야기가 숙련된 직원으로부터 나왔던 신입 직원으로부터 나왔던지 간에 잘 듣고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리더가 항상 모든 해답과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무언가 힘들거나 불편하다고 해서 바로 처리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충분히 듣고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같이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런 것 하라고 관리자가 있고 팀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직원들을 힘들게 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한 뒤에 회식을 시켜주면 다 풀릴 거라 믿는 리더들도 종종 본다. 스트레스를 준 요인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술을 같이 먹는 다고 그것이 풀릴지 모르겠다. 업무시간에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매니저를 퇴근 후에도 보고 있으면 그 술이 잘 넘어가기는 할지도 의문이다. 회식이 더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팀의 사기를 올리려면, 업무시간에 팀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매니저가 원인이었다면 그것은 본인의 행동이 바뀌어야 해결이 되는 문제이다. 단순히 맛있는 것을 사 주거나 회식을 시켜주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참 뒤에 그 김밥집에 다시 가 보았다.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손님이 여럿 있었고, 테이크 아웃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주문한 오므라이스가 나왔다. 홀을 담당하는 직원은 신속하게 수저와 밑반찬을 내어 왔다. 주방에서도 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주문을 받는 직원과 조리를 하는 직원이 주고받는 나지막한 대화만이 들렸다. 김밥 담당 직원은 전표를 확인하며 열심히 김밥을 말고 있었다. 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모든 업무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뭐가 달라진 걸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깨달았다. 중절모를 쓴 사장님이 매장에 없었다.



*cover image by kaboompics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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