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뭐 먹을까? 나가서 먹을래?"
"아니 귀찮아"
"그럼 뭐 시켜 먹을까?"
"아니 아빠가 해줘"
"..."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딸은 어느 언제부터인가 밖에 나가는 것을 매우 귀찮아한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자고 해도 손사래를 치기 일쑤이다. 그렇다고 배달시켜 먹는 음식을 아주 좋아하지도 않는다. 배달앱을 이용해서 종종 시켜 먹기는 하지만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에는 직접 해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이가 "아빠가 해 줘"라고 할 경우에는 늘어진 몸을 일으켜 터벅터벅 부엌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냉장고를 열었다. 껍질을 벗겨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하얀 양파와 파란 대파가 눈에 들어온다. 음... 뭐 별다르게 해 먹을 만한 게 없다. 김치냉장고를 열었다. 며칠 전에 구워 먹다 남은 목살 한 덩어리가 보인다. 옆에 있는 통에는 신 김치도 조금 있다. 돼지고기와 신김치. 둘을 볶아서 반찬으로 먹을까 싶다. 그냥 생각만으로도 맛있는 맛이 그려진다. 사실 신김치는 어떤 재료와 볶아도 맛이 없을 수가 없는데, 돼지고기와는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일단 돼지고기를 썰어 밑간을 해 두었다. 기름 부위는 냄새도 나고 느끼하므로 가능한 제거 한다. 살짝 언 고기를 써는 느낌이 서걱서걱하는 것이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아이와 같이 먹어야 하므로 조금 작게 썰어 소금과 후추를 뿌린 후 손으로 잘 버무려서 한쪽에 치워둔다. 손질이 되어 있는 양파를 꺼내어 크게 썬다. 아이가 양파를 끔찍이도 싫어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크게 썰어야 한다. 눈에 잘 띄어야 하고 골라내기 쉬워야 하기 때문이다. 신 김치도 꺼내어 손으로 꾸욱 짜 준다. 역시 적당한 크기로 썰어 한쪽에 둔다. 대파도 큼직하게 (양파를 크게 써는 것과 같은 이유로) 썰어서 준비한다.
기름을 두르고 대파를 먼저 볶는다. 파 기름이 나와서 요리의 맛을 풍성하게 해 준다고 하는데, 솔직히 차이는 잘 모르겠다. 그냥 더 맛있겠거니 하고 남들을 따라 하기로 한다. 파 기름이 적당히 나온 것 같으면 돼지고기를 넣고 볶는다. 치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고기가 익는다. 다진 마늘도 함께 넣고 볶다가 고기 겉면이 익으면 양파와 김치를 넣고 함께 볶는다.
김치에 간이 되어 있지만 짭짤하게 먹을 요량이면 소금을 조금 넣어도 좋다. 김치가 잘 익을 때까지 볶다가 대파를 썰어서 넣고 조청을 한 바퀴 두르고 한 두 번 뒤적이다가 불을 끈다. 설탕을 넣어도 되는데, 조청이 좀 더 순한 단맛을 내는 것 같고 요리의 때깔도 좋아 보이게 하므로 나는 조청을 선호한다. 왠지 몸에도 덜 해로울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완성된 요리는 그릇에 옮겨 담고 깨를 뿌려 낸다.
우리가 늘 밥상에 올리는 김치는 언제부터 먹게 되었을까? 김치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정착 농경생활이 발달되었던 삼국시대부터라고 한다. 채소를 오래 보관해서 먹기 위해 소금에 절이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것이 발전하여 발효를 시켜 저장하는 방법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채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에는 미리 해 놓은 김치만큼 비타민과 미네랄 등을 보충해 주는 음식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내친김에 김치박물관 웹사이트에서 김치는 왜 김치인지를 찾아보았다. 상고시대에 절여 놓은 야채를 뜻 하는 ‘침채(沈菜)’라는 단어가 있었다고 한다. 이 침채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침채→딤채→김채→김치로 변화하면서 김치가 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럴듯한 추정이다.
어쨌든 고소한 돼지고기 목살과 시큼하고 아삭한 신김치를 함께 볶으면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맛있는 일품요리가 된다. 갓 지은 하얀 쌀밥과 함께라면 한 끼 식사로서 손색이 없다.
준비물: 돼지고기 (목살 혹은 삼겹살), 신김치, 양파, 대파, 깨, 조청 (혹은 설탕), 다진 마늘
요리법:
1. 돼지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작게 썰어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잘 버무려 놓는다.
2. 양파를 까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대파도 썰어 둔다.
3. 신 김치를 꺼내어 짜서 물기를 제거하고 적당한 크기로 썬다.
4. 달군 기름에 파를 볶아서 파 기름을 낸 후 돼지고기와 다진 마늘을 넣고 볶는다.
5. 고기 겉면이 익으면 김치와 양파를 넣고 함께 볶는다. 필요시 소금 등으로 간을 더한다.
6. 김치가 익으면 조청을 넣고 조금 더 볶는다.
7. 그릇에 담아 깨를 뿌려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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