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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Nov 18. 2019

메탈리카를 아시나요?

[마음을 담은 편지] #15

지금은 없어진 미도파 백화점 전산실이 첫 직장이었습니다.


제대 후 어떻게든 빨리 취업하고 싶었어요. IMF 였던 때라 변변찮은 기술도 없어 쉽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운좋게 들어간 직업전문학교 선생님을 졸라 어렵게 사회에 발을 디뎠죠. 인력 회사를 통해 취직했으나, '나도 일한다'는 마음에 해마다 재계약하는 파견직이어도 거리낄게 없었습니다.


1년정도 일하니 월급이 적고 안정적이지 못해 불안했어요. 오후 3시 출근해서 전산실은 물론 백화점 전체 직원이 모두 퇴근한 저녁 8시, 홀로 영업 종료에 맞추어 전산데이타 정리와 백업을 하면 밤 11시에 가까웠어요. 사무실을 나와 맞는 제기동 밤거리는 무거웠습니다.


좀 더 의미로운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맡겨지지 않는 기회가 속상했어요. 그걸 잡기 위해 노력해도 늘 멀리 떨어진 그 녀석때문에 답답했습니다. 그럴땐 테이프에서 들려오는 메탈리카 음악들이 허전한 퇴근길 친구가 됐어요. 갑갑한 마음을 통쾌하게 날리는 사운드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들의 음반을 B자 테이프로 모았어요. Play No.1은 'Master of puppets', 'Enter sandman', 'One', 'Battery', 'Nothing else matters' 그리고 무엇보다 'Orion'! 강렬한 음악 이상 가득 찬 느낌과 자연스레 머리가 흔들리는 멜로디, 그리고 제임스 헷필드의 거친 보컬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바쁘게 흐르던 일상에서 사라진 그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우리나라에 벌써 4번째 내한공연이었던 2017년 1월 11일 고척 스카이돔으로 향했죠. 몇 년 전 개봉했던 <메탈리카 스루 더 네버>를 보면서 '직접 라이브 들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현실이 되려고 했습니다. 한 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말이죠.


고객사 서비스 Open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연락입니다. 여기저기 전화가 빗발쳤어요. 가볍게 무시했습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그런데 곧 문자로 '대신 연구소장님과 개발팀원이 고객사 들어가니 지원 요청합니다'라는 사업부장님 메시지는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온갖 생각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때처럼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어요. 연구소장님과 개발팀원은 이미 고객 사이트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맡기고 빠질까 싶은 유혹은 메탈리카 음악처럼 강했어요. 가지 않았는데 혹시 심각한 문제라면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커질지 짐작됐습니다.


화가 치밀었어요. 내일 처리해도 될 일을 굳이 그 밤에 들어오라는 고객, 그 정도 일도 무마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일을 키워버린 영업사원, 개인 사정도 챙겨주지 못하는 상사들..... 곧 펼쳐질 무대를 기대하며 분위기가 고조되다 못해 들끓는 만팔천여명이 모인 그 곳에서 외톨이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공연 시작 10분을 남기고 나오는 길, 좋아했던 그들의 음악이 떠올랐어요.


아이러니한 건지 모르겠지만,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자 절박했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등 뒤의 스카이돔에 그때 추억이 있는 거 같았죠. 다시 가지 못할 순간들처럼. 그리고 일터에서 집에 간 건 새벽 4시였네요. 헤비메탈같은 일상이었습니다.



그날 찍었던 단 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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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왕마담 드림

https://brunch.co.kr/@jisang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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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메탈리카 내한 공연을 코앞에서 놓쳤습니다.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쉬워요. 비싼 티켓값도 한 몫 하지만, 사회에 처음 발을 디딘 후 느낀 불안하고 답답했던 추억을 함께한 밴드이기에 더했습니다. 하필 고객사 문제는 그럴 때만 터지는 걸까요? 그에 비해 다음날에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던 일이기에 화까지 났어요. 다시 우리나라 올거지? 메탈리카? 꼭.


https://youtu.be/Mg661sxjFdc 

(메탈리카의 'Orion', 헤비메탈하면 떠오르는 과격한 사운드와는 좀 다르니 들어보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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