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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Nov 11. 2019

첫차는 옴짝달싹, 가벼워졌습니다

[마음을 담은 편지] #14

차 키를 볼 때마다 아까웠어요. 비싸게 산 건데 세워져만 있습니다. 혹시 몰라 시동을 걸어봐도 돌아오는 건 무시하는 냉대뿐, 주차장에 버리다시피 세워놨으니 삐진 듯 뱃터리가 방전됐습니다. 쓸 일이 있으면 매번 긴급서비스를 불러야 했죠.


회사가 멀어요. 출근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오고, 퇴근시간보다 더욱 늦게 가야 막히지 않아 대중교통으로 다닙니다. 주말도 볼 일이 주로 시내에 있어요. 차를 가져가면 막히고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오히려 불편합니다. 무엇보다 운전하는 게 귀찮습니다.


주행 거리를 따지니 1년 평균 1000Km도 안되네요. 일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운 곳 정도만 운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차를 유지한 건 언젠가 사용할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차를 소유한지 6년, 볼 때마다 울컥거렸고 생각날 때마다 답답했습니다.


작년부터 차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팔려니 사회적 눈치가 보였습니다. 제 나이에 차 한 대는 있어야 될 거 같았죠. 언제 이성을 만날지도 모를 일, 귀가길은 책임져야 젠틀맨이 될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 신사 품격에 누를 끼치는 것처럼 여겼습니다.


손에 쥐어지는 건 매년 떨어지는 자동차의 감가상각, 보험금, 그리고 세금뿐이었죠. 세금과 보험료 낼 때는 공돈이 나가는 거처럼 아까웠습니다. '언젠가 필요할 지 몰라', '이 나이에 차 한 대는 있어야지' 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했습니다.


2주 전, 중고차 견적을 받았어요. 딜러를 만나는 아침, 먼저 긴급서비스를 받았습니다. 뱃터리가 완전 방전이었죠. '기사님 혹시 뱃터리 교체도 가능한가요?', '추가 비용 있는데요?', '얼마죠?', '13만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교체해주세요' 중고차 가격을 좀 더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새걸로 교체했어요.


가격이 반토막났습니다. 자동차 상태를 꼼꼼히 검사한 후 딜러는 제가 몰랐던 흠집까지 찾아냈어요. 게다가 뒷바퀴 부근 휀다는 언제 찌그러졌는지. 전반적인 보존 상태는 좋아 견적을 많이 준거랍니다. 본전 생각이 났어요. 돈 뿐 아니라 고민하며 발품팔아 샀던 정성까지 말이죠.


아까웠습니다. 하지만, 1년 넘게 고민한 걸 10분만에 결정했어요. 팔기로. 더 망설여봐야 고민만 더할 뿐, 빨리 마음이 편해지고 싶었어요. 인감증명서가 필요해 동사무소를 다녀 오는 길, 초등학교 때 애지중지 키우던 고양이를 어머니가 팔았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학교 갔다 와서 없어진 걸 알고 뭔가 툭 떨어진 기분, 그 느낌이 들었어요.


구입한지 얼마 안돼 스크레치 내고 호들갑 떨었던 일, 올림픽 도로에서 갑자기 시동이 꺼져 멘탈이 나갔을 때, 성악을 배우며 차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던 기억도 났습니다. '좀 더 가지고 있을까?', '귀찮아도 주말에 가지고 다니면 되잖아?' 


억지로 쓸 일을 만들고자 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죠. '아니야', 차가 필요한 라이프 스타일이 됐을 때 다시 사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남들에게 있어 보이려는 허례허식도 이번에 같이 버리자고 여겼어요. 차량 가격처럼 마음도 반토막난 듯 허전했지만 가벼워졌습니다.



안녕, 내 첫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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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왕마담 드림

http://wangmad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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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어렵게 샀던 첫차, 하지만 쓸 일이 많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급기야 배터리는 방전되기 일쑤였어요. 차를 별로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에 옴짝달싹 첫차는 짐이 되고 있었습니다.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일년! 막상 중고차 딜러에게 넘기려니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결국 가벼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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