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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Jul 31. 2023

디펜드를 아시나요?

[마음을 담은 편지] #25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간병인을 두지 않아도 됐고 둘 수도 없어요. 하지만 간호서비스가 먼저라 항상 옆에서 돌봐주는 건 아닙니다. 환자가 덜 불편하려면 보호자가 옆에서 도와줘야 했어요. 무엇보다 대소변 해결이 난제였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뇌경색 환자라 성인기저귀 디펜드가 필요했어요. 아침은 간호사님, 점심엔 집에서 도와주셨던 요양보호사님이 병원까지 오셨어요. 저녁엔 제가 퇴근하고 갔지만 볼일봤다고 말씀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인분 냄새를 숨길 순 없죠. 병실 특유의 소독약 내음과 겹쳐 코끝이 알싸했습니다.


제가 있어도 대소변 받는 건 간호사님 도움을 받았어요. 기저귀에 볼 일을 보면 갈아입혀 주는데, 간호사님이 바쁘면 찝찝한 채로 2~3시간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내가 하면 됐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민망하기도 했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거 같습니다. 그 정도까지 간병해야 한다는 걸. 미안했습니다.


이때까지 디펜드가 뭔지 몰랐었다



일반식을 잘 넘기지 못해 죽을 먹었어요. 연하곤란 2단계입니다. 병원밥도 밍밍하니 맛없을텐데 오죽했을지 꼭 남겨요. 환자가 밥을 남기니 보호자 입장에서 속이 탔습니다. 좋아하는 호박죽이나 팥죽, 요플레와 같이 먹기 편한 군것질을 따로 사와서 떠먹여주면 남기진 않더군요.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 검사나 치료가 있으면 회사에 있다가 바로 가야했습니다. 이동할 땐 병상에서 휠체어로 옮겨야 하는데, 환자가 다칠 수 있으니 무척 신경쓰였죠. 처음엔 무작정 들어서 옮기니 힘들더라고요. 나중에 남자 간호사가 요령을 좀 알려주어 조금씩 수월해졌습니다.


하루는 집에 간다고 짐 챙기더군요.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몇 일째 저만 보면 가자고 졸랐거든요.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집에 어떻게 가냐며 윽박질렀습니다. 좀 조용하다 싶었는데, 이번엔 담배피러 가자고 떼썼습니다. 응급실에 실려오고 나서는 한 번도 피지 못했거든요.


아픈 사람이 그것도 뇌경색 환자가 뭔 담배냐고 화를 냈어요. 담당의 선생님께도 부탁드려 담배피면 안된다고 회진때 주의를 주었습니다만 하루 이틀을 못갔습니다. 하루에도 한 번 이상 그렇게 보채니 성내고 다시 죄송스러워지는 것도 지치더라구요. 


퇴근하고 즐기던 취미나 카페에서 책읽고 글쓰는 좋아하던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차도가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 졸이고 답답해하다가 다시 화를 삭히고 달래고 잘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느끼니 저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회색스럽게 답답했어요.


귀찮을땐 병원에서 먹던 저녁밥



그럴 즈음 담당 전공의가 저를 찾았습니다. 다짜고짜 '죄송합니다' 하더라고요. '네? 뭐가요?', '다름이 아니고 어머니 뇌경색 추적 검사를 하던 중 가슴 쪽에 혹을 하나 발견했어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습니다. '네? 혹이요?', '네, 그런데 혹이... 정확한 건 더 검사해봐야 알겠지만 암일거 같습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잠시 시간이 지나서야 '암이요?'라고 물어봤습니다. 다시 담당 전공의는 사과하셨어요. '죄송해요. 좀 더 좋은 소식을 드려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죠?'


신경과에서 흉부외과로 전과를 하게 될 것이며, 폐암이 확실한지 받아야 할 검사들을 설명했습니다. 들으면서 점차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설명이 끝났지만 병실로 가서 어머니를 뵐 자신이 없었습니다. 병원을 나섰어요. 마침 친구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아니 제가 전화를 했던 건지 잘 모르겠어요.


안부 인사 한 두 마디하고 결국 울음이 터졌습니다. 제가 진정되기를 기다려 자초지종을 듣고 다독여준 친구 덕분에 마음이 좀 정리됐어요. 하지만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병실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병원 근처를 맴돌며 어떻게 설명할지 떠올렸지만, 


얼굴을 뵈며 부딪혀야 할 그 순간을 어떻게 마주쳐야 할지...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때만큼 짐을 같이 짊어질 형제가 많은 지인들이 부러웠던 적이 없어요. 저는 오로지 혼자의 몫이었어요. '엄마, 가슴에 혹이 하나 있는데, 내일부터 검사를 더 해야 된데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좀 떨렸습니다. 지쳤던 마음, 짜증나고, 답답하고, 화나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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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2018년 8월에 있었던 일이니 벌써 5년 정도 됐네요. 이제야 그때 마음을 꺼내봅니다. 담담해진줄 알았는데 초안만 쓰는데 3주 이상 걸렸네요.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에 들었던 관념들만 견고하게 남아 있는지 모르겠네요. 혼자가 익숙하고 편한데 겪어보지 않았던 짐을 홀로 메어야 했던 그 순간들은 외로웠습니다. 2019년 12월 30일에 썼던 철렁했던 응급실의 하루에 이어지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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