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명작선. 미운 오리 새끼의 재해석
미운 오리 새끼, 그러니까 제 동생이 있기 전에 사실은 제가 먼저 태어났지요. 그래요. 미운 오리 새끼에게는 형이 있었어요. 원작에서는 제가 다소 나쁘게 표현되어 있는데 오늘은 그럴 수밖에 없던 저의 입장을 한번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 들어봐 주실래요?
동생이 태어난 날 싱그러운 여름 바람에 구름 마차 둥둥 타고 날아갈 것 같았어요. 저에게 동생이 태어난다니요. 남몰래 평생 꿈꿔왔던 걸요. 동생이 생기면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을 매일 밤하늘의 별들로 크레파스 삼아 하나씩 그림을 그리며 상상해놓고 있었다고요.
그런데 동생의 모습을 본 엄마는 놀람을 금치 못하고 심각해졌어요. 그러니까 저희들과 생김새가 달라도 너무 달랐거든요. 원래의 이야기에서는 못생겼다고 동생에게 타박을 주었지만 솔직히 얘기하면요. 동생은 해님과 함께 손 마주 잡고 아름답게 빛나는 흑색과 회색이 잔뜩 섞인 털, 단단해 보이는 검은 빛깔의 부리 그리고 저보다 조금 더 큰 날개를 가지고 있어 정말 예뻤죠. 경외감을 줄 정도였으니까요. 모습은 참 많이 달라도 동생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아요.
동생에게 잘하고 싶었지요.
그런데 동생이 태어난 그때부터 엄마의 모든 사랑은 동생에게 가게 되었어요. 서로 다르게 생겼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 바로 배척하고 미움받는 것이 오리 사회의 현실이랍니다. 엄마는 ‘동생이 혹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무리와 지내며 밥은 잘 챙겨 먹을 수 있을까. 공부는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아주 끊이지 않는 고민 속에 빠지게 되셨지요.
조금이라도 저를 생각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곧 새 학기가 시작되고 반이 새롭게 바뀌게 되면서 친구들과도 멀어지게 되었어요. 잠이 오질 않아서 뜬눈으로 별님과 달님에게 인사하고 며칠밤을 은하수 다리에 근심과 걱정을 실어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지요.
제가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거든요.
엄마는 오늘도 어김없이 동생 걱정뿐이네요. 잘 헤엄치고 있는지 살펴보고 오래요. 며칠 전 터인가 분명 혼자서도 잘 헤엄을 칠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셨음에도 불안하고 신경이 쓰이셨나 봐요. 동생의 흑 빛의 털이 노란빛 털로 바꿔지게 하는 특식 요리를 준비 해 놨대요. 엄마는 아름답게 빛나는 동생의 털이 마음에 들지 않나 봐요. 단지 다른 무리 속에 함께 있어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 보통 오리였으면 하셨겠죠. 대단히도 뭔가 이상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으니까요.
아무튼 저에게는 그런 특식 같은 것은 주지도 않았는걸요. 그날부터 동생처럼 흑색 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엄마가 조금이라도 저를 예뻐하지 않을까 해서에요.
푸드덕.
초라한 몸짓으로 노란빛 털의 날개를 펼쳐보며 물속으로 첨벙 들어갔어요. 동생을 찾아보지만 찾을 수가 없네요. 사랑하는 동생인데 왜 자꾸 미운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흑진주같이 빛나는 고급스러운 털의 윤기를 닮고 싶은데 힘없이 고불거리며 푸석거리는 저의 노란 빛깔 털들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동생이 싫었어요.
호수 수면이 깊은 곳으로 이끄는 손짓을 따라 다가갔어요. 왼쪽 느티나무 아래 연꽃이 하나 피어있었는데 무리들 속에서 둘러싸여 놀림을 당하고 있는 동생을 발견하였어요. 동생의 이름을 부르자 모두들 저를 쳐다보았지요. 잘 살펴보니 앞으로 새 학기 때 함께 할 친구들이네요. 저에게 동생이냐고 물어봤어요. 심장이 빠르고 급하게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지요. 이상한 동생을 두었다고 저와 놀아주지 않으면 어떡해요? 저 또한 놀림의 대상이 되기는 싫었어요.
‘난 모르는 애야.’
하고 휙 고개를 돌리는 순간 느티나무 초록빛 이파리 색깔이 동생의 작은 눈망울에 비추어 슬프게 저를 바라보았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엄마가 동생에 대해 물어보면 물장구치느라 정신이 없어 곧 돌아온다고 말해야지 다짐했어요. 거짓말한 것이 들통나면 엄마가 혹시 저를 미워하게 될까요?
그때, 물속의 굵은 해초 줄기들이 뒤엉켜 제 발목을 잡으며 헤엄을 치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왜 그랬어. 왜 모른 척했어. 넌 나쁜 형이야. 형이 될 자격이 없어.’
생각의 구렁텅이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지만 나올 수가 없었어요. 물갈퀴로 거세게 물을 차고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은 계속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지요.
해초 줄기가 온몸이 휘감긴 채 겨우 집에 왔어요. 과연 엄마는 동생에게 주는 특식을 저에게 주실까요? 엄마는 저의 모습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신 채 동생이 어디 갔냐고만 반복해서 물어보셨어요. 여러 번 연습했던 거짓말을 이내 까먹어버리고는 모른다고만 얘기하고 방문을 쾅 닫아버렸지요.
날개가 축 처진 채 고개를 숙이며 엉킬 만큼 엉켜버린 해초 줄기를 부리로라도 떼어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해보아도 혼자서는 풀어지지 않았어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지요.
입안에 침들이 걷잡을 수 없이 고이기 시작했어요. 뱉지 않으면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안에 있는 침과 함께 헤엄치며 삼켜버렸던 모든 토사물들을 컥컥하고 토해내려고 무진장 애를 써봤어요.
왠지 모르는 서러움과 분함이 목구멍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