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섭식장애)는 단순히 음식에 대한 영양학적 결핍 혹은 과잉에 대한 신체적인 질병이 아니다. 또한 다이어트를 심하게 했기 때문에 오게 되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 있어 거식증은 갑자기 다가온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이 고달프고 아파왔었는데 그것이 하나의 또 다른 모습으로 드러났을 뿐이었다.
똑같은 마음의 병이었다.
마음이 아픈 것이다.
마음이 소리치는 울부짖음이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으니 알아달라는 소리다.
식이장애, 특별히 거식증을 겪으면서 경험했던 심리적 증상과 관념들에 대하여 나누고 싶다.
몸무게를 여러 번 쟤 야만 할 것 같은 절박감
몸무게를 하루에 몇 번씩 쟤봤는지 모르겠다. 밥 먹고 한번 쟤고, 운동하고 와서 또 쟤고 스트레칭하고 나서 한번 더 쟀다.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가 올라가면 '다음 끼는 굶어야지.' 내지는 '적게 먹어야겠어.' 하며 또 식단을 제한하며 바로 고강도의 운동을 했다. 그러고 나서 목표가 되는 몸무게가 나오고 유지될 까지 얼마큼 먹어야 하고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하는지 그 양과 정도를 계산하려고 매 순간 심혈(?)을 기울였다. 예상했던 결과대로 몸무게가 나오면 마음의 안도감이 들다가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무언가를 먹고 나서 또다시 몸무게를 쟤고 다시 좌절하는 등 다시 말해, 몸무게로 나의 존재가치를 끝없이 상정해 나갔다.
운동 강박
하루에 한 번은 꼭 운동을 하지 않으면 얼굴과 턱살, 다리가 부어오를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아침저녁으로 운동과 얼굴 마사지를 했었다. 나름대로의 루틴이 있었는데 어떠한 상황 속에서 한 가지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미칠 것만 같았다. 몸이 파김치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꼭 운동은 해야만 했는데 그중에서도 정해놓은 동작 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그걸 하지 않아서 내 얼굴이 지금 이렇게 부은 거야. 왜 안 했어.' 하며 스스로를 채직하며 그다음 날에 두배로 더 열심히 했었다.
끝없는 바디체크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나서, 밥을 먹고 나서, 일 하고 나서, 운동하고 나서 등등 쉬도 때도 없이 거울을 보았던 것 같다. 거울에 비친 얼굴과 턱에 붙은 살, 다리 살들을 보며 스스로를 비난했다. 살을 도려내고 싶었다. '아니 이렇게 까지 살을 뺐는데도 얼굴살은 왜 이렇게 안 빠지는 거야? 더 운동하고 더 빼야지.' 하며 저 끝 모퉁이까지 나를 끌어내리려고 하였다.
칼 같이 칼로리 제한
일정하게 지켜야 하는 밥과 반찬의 양이 있고 이를 반드시 지켰다. 오랜 기간 그 습관을 갖다 보니 음식만 봐도 대충 몇 칼로리겠다 라는 게 자동적으로 계산이 되어버렸었다. 음식을 보고 '와 맛있겠다.'의 반응이 나오는 게 아니라 보자마자 바로 드는 생각은 '아 몇 칼로리겠다.'의 생각이었다. 또한 같이 먹는 상대방의 칼로리까지 계산을 했다. 너무나도 아프고 불쌍한 생각이지만 그 상대방의 칼로리보다 내가 적게 먹어야 뭔가 스스로가 이긴 것 같고 뿌듯하기 까지 했다. 300kcal로 한 끼를 맞춰서 먹으려고 하였고 만약 정해놓은 칼로리가 오버가 되는 상황이 오게 되면 바로 그다음 끼는 굶었다. 굶 고나니 꼬르륵거리고 밤새 배가 고파서 잠을 이룰 수 없어도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다음날 몸무게는 분명 더 빠져 있을 테니까.
정해 놓은 시간에 반드시 식사하기
아침 7시, 점심 12시, 저녁 5시 이렇게 세끼를 시간 맞춰서 먹었고 지켜지지 않는다면 저녁 8시 이전에는 반드시 식사를 강박적으로 지키려고 했다. 물론 저녁에 야식을 하는 것은 몸에 좋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병이 된다고 하듯 그 생각 자체가 집착으로 몰아갔다. 친구 약속 같은 것도 8시 넘어서는 잡지 않았고 만약에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경우라면 점심부터 쫄쫄 굶어서 간다거나 (그래야만 사람들에게 말라있는데도 잘 먹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아예 식사를 하고 간다.
얼굴과 다리살에 집착하였던 나였기에 얼굴에 살이 없거나 턱에 살이 없는 사람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 크기, 턱살, 볼살, 다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밖에 옷가게들 앞에 통유리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증오심과 열등감에 시달렸다. 예를 들어 점심에 기름진 볶음밥 같은 것을 먹었다면 먹고 난 후 지나가면서 얼굴에 살이 없거나 다리가 얇은 사람들을 보고 난 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아 역시 기름진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그새 이렇게 부었네. 저녁엔 클린 하게 토마토만 먹어야겠어.'로 마음을 굳힌다. 어쩌다 누군가가 나에게 '얼굴에 살이 좀 붙었다?.' 이런 말들을 하는 그날엔 이를 갈면서 아예 하루를 굶어버리거나 운동을 했었다.
하루 종일 음식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식사를 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다음끼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자책하고 미워하고 그 굴레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하며 살아갔다. 그 생각은 나에게 마치 중독적으로 파고들었고 다음 끼에 뭘 먹을지 정해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만약 그 생각했던 음식을 먹지 못하면 왠지 모르게 분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이런 상태에서 다른 취미를 갖거나 일을 열심히 하거나 하는 등 뭔가를 하는데에 마음을 쏟을 수가 없었다.
워낙 민감한 체질이었으나 거식증에 한참 시달려 있을 때는 왠지 모르게 잘 긴장하고 불안했다. 앞서 신체적인 증상에서 언급했었지만 거의 매 순간을 각성상태로 있으면서 안절부절못하며 예민함의 극에 다 달았었다. 주변으로부터 어떠한 약한 자극이 오더라도 그 자극이 해결될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별일 아닌 것처럼 웃으며 넘길 수 있었던 것들이 쉽지 않게 되었다.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어 편집증적인 의심의 생각들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이루어져 있어서 몸이 허하면 마음도 어딘가 모르게 허하다. 그전부터 우울과 외로움, 공허함은 친구처럼 3종 세트로 나를 따라다녔었으나 거식증을 앓았던 그 당시에 마음이 더 쉽게 요동쳤고 정확히 얘기해서 우울하고 공허함, 외로움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힘' 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날씬하고 마른 내 모습을 보며 오히려 '몸매 관리를 잘한다. 옷 핏이 너무 예쁘다.'라는 코멘트들을 들을 때마다 그 순간엔 어깨가 으쓱해지며 우월감을 느끼다가도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마음은 텅 비어있는 빈 껍데기 같았다. 또한 거식 증적인 습관들이 몸에 배어 있고 이를 사람들에게 숨기면서 있었으니 그 사이에서의 괴리감이 많이 들었으며, 이는 외로움, 공허함과 같은 감정들을 더 증폭시켰다.
외로움이 확 몰려올 때마다 감자칩을 씹고 뱉었다.
어떠한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고 그저 먹는 것에만 집착하는 나. 끊임없이 스스로를 증오하고 채직하며 죽여가는 자신을 보는 것이 지겹고 스스로 그 어떤 것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살고 싶지 않아 졌었다. 나의 식이를 조절해가면서 나도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굉장히 건강하지 않은 성취감을 가지고 있다가 그로 인해 몸이 다 망가질 때로 많이 망가져버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니 안 그래도 살고 싶지 않았던 세상, 그만 하고 싶었던 마음으로 가득 찼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해. '다시는 이런 식으로는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 정말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 진정한 내 마음이었다.
그 외에도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해진다, 성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어진다 등의 마음의 변화들을 경험했었다.
내가 경험한 이 모든 심리적 증상과 관념을 하나로 얘기해본다면 '나는 사랑하지 못하였다'라고 하고 싶다.
자기 사랑.
self-love.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던 것이다.
내 안에서는 계속적으로 '나를 알아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줘.'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내가 세상의 소리와 사랑, 관심, 찬사가 그리도 고픈 나머지 정작 들어야 할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묵살시키고 오히려 그 목소리들에게 나무라고 있었다.
우리의 존재가치는
숫자에 불과한 몸무게 따위가 정해 줄 수 없다.
잘 봐야 한다.
잘 생각해보고 깊게 생각해보라.
우리의 아름다운 그 존재 가치가
정녕 숫자로 개념 지어지는 것일까.
본 내용은 전문적인 의학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닌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증상이며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식이장애와 관련하여 다양한 증상에 대해서는 관련 전문가 및 의사와 상의하시길 권장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