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은 언제까지 더러워야만 하는가
화장실은 더럽? The Love?
영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20분을 화장실에서 보낸다고 한다. 일주일에 2시간을 오롯이 화장실에서 지내는 것이다. 수명을 80세라고 가정하면 평생 동안 1년이 조금 넘는 13개월가량을 화장실에서 보내는 것이다! 당신은 '화장실'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가?
지저분하다 / 불쾌하다
냄새난다 / 가기 싫다
이런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면 정상이다. 사람은 하루에 6~7회 정도 화장실에 간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두 시간에 한 번꼴로 가는 셈이다. 왜 우리는 이처럼 일상적으로 가는 화장실에서 불쾌감을 느껴야만 할까?
화장실은 어떤 장소인지 잠시 살펴보자.
화장실, 나만의 휴식 공간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푸는 장소라고 부른다. 방광과 대장 깊숙이 묵혀두었던 용변을 마침내 세상에 내보내니 이처럼 시원할 수가 없다.
화장실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다.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가장 편한 장소로 화장실을 꼽기도 했다. 작은 칸 안에선 맘껏 남을 욕해도, 변기 위에서 쪽잠을 청해도 괜찮다. 용변을 보고 나오면 손을 씻고 양치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더럽다고 생각하는 장소에서 스스로를 깨끗하게 만든다. 그 후엔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고친다. 바쁜 일상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찰나의 휴식을 가지며 숨을 가다듬는다.
화장실, 만남의 장소
가장 아름다운 휴대폰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는 화장실 디자인에도 남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잡스는 픽사 스튜디오에 화장실이 딱 두 군데, 그것도 중앙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장실에서 만난 픽사 직원들은 손을 씻으며 멋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잡스는 직원들의 창조성이 만나서 섞이길 원했다. 그는 사람들이 단순히 화장실을 가더라도 서로와 어울릴 수 있는 디자인을 고안했다.
화장실은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직장에선 타 부서의 모르는 사람이라도 화장실에서 만나면 목례를 하거나 눈인사를 나눈다. 학교에서 여학생들은 종종 화장실에 함께 가며 친해진다. 평소엔 마주치기 힘든 다른 반 친구를 화장실에서 만나기도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화장실이 때론 뒷담의 공간으로 비치지만 그만큼 만남의 광장이라는 주요한 역할을 인정한 셈이다.
화장실은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환경에 살고 환경을 만든다. 화장실이라는 작은 공간에도 한 사회의 문화와 의식이 담겨있다.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 있고 나빠지는 곳이 있다. 오래된 건물이라도 화장실이 세련되고 깨끗하면 낡은 벽지마저 예스럽게 느껴진다. 지저분한 화장실에 대한 불만에 건축한지 몇 년이 흘렀는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주변 환경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의 문제다. 저렴한 액자 하나만 걸어놔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전구 하나만 바꿔도 환해진다. 조명, 청결도, 환기, 색깔, 음악, 천장 높이. 이 모든 것에 세세히 주의를 기울이는 건 괜한 낭비가 아니다. 환경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건 곧 그 안의 사람에게 관심을 표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지만, 반대로 머무는 자리가 아름답다면 사람도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 청결하고 밝은 화장실을 늘려나가는 건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의 공학관은 94년에 준공된 건물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공학관의 작고 낡은 화장실은 불친절하고 퀴퀴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종종 수고를 무릅쓰고 옆의 신축건물로 가서 화장실을 사용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이후 느껴지는 따뜻한 분위기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고작' 화장실의 작은 변화지만 아무래도 남은 학기 동안 학교를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