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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미술관 올레와 함께 한 맛집

제주소ㆍ단골식당ㆍ귤밭사이로


이왈종·이중섭·기당미술관에서 박서보까지

올레매일시장 소머리국밥 전문점 ‘제주소’

만 원짜리 정식의 품격 보여 준 ‘단골식당’

메뉴구성이 좋은 돈가스전문 ‘귤밭사이로’     


이달 초순 제주도 일주일살기를 하고 돌아왔다. 그 사이 언론에서는 제주도의 살인적인 고물가로 인해 관광객 발길이 끊겼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잘 찾아보면 착한 가격의 보석 같은 식당이 꽤나 있다.      

내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제주의 고물가 탓만은 아니다. ‘슈퍼 엔저’로 인한 환율 때문에 제주 대신 일본으로 상당수 발길을 돌렸다. 이를 제주의 고물가와 등치 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여행객한테는 동가홍상, 즉 국내보단 해외 나들이란 이국적 경험에 대한 갈망이 크기 때문이다.      


걷기에서 찾은 제주 서귀포의 ‘뉴 매력’

4수 끝에 오른 한라산 정상에서 바라본 백록담.
칼바람 불던 한라산 정상.

첫날 새벽 비행기로 김포에서 제주로 향했다. 최근 세 차례나 정상 등정에 실패한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서다. 세 번 모두 시간제한에 걸려 백록담을 못 보고 발길을 돌렸다. 물론 한 번은 사라오름을 갔고, 또 한 번은 5.16도로를 따라 걸어보는 경험을 통해 백록담의 갈증을 달랬다.      


이번만큼은 각오가 달랐다. 일단 성판악이 아닌 관음사로 오르는 것을 택했다. 일찌감치 한라산탐방예약시스템을 통해 8~10시 관음사탐방을 예약했고 9시30분에 탐방센터를 통과했다. 십수 년 전 여름 성판악에서 올라 관음사로 하산을 했고 오르기는 처음이다. 결론적으로 관음사~성판악 코스는 잘한 선택이었다.      


3시간4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다행히 날이 맑아 온전히 백록담을 눈에 담았다. 정상은 확실히 기온 낮았다. 게다가 세찬 바람까지 불었다. 여벌옷을 챙겨가길 잘했다. 테크에서 10여분 정도 눈을 붙였다.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피곤했다. 상쾌한 쪽잠 후 성판악으로 하산 7시간의 한라산 등산을 마무리했다.      


버스로 서귀포로 이동했다. 예약해 둔 호텔에 짐을 풀고 올레매일시장 구경을 했다. 시장에는 고등학교 친구인 성해성 대표가 운영하는 제주특산물 선물점인 ‘또시’가 있다. 서귀포 관광객 필수코스인 올레매일시장은 친구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제주에 관광객이 안 간다는 뉴스는 과장됐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시장 안에는 먹거리가 넘쳐났다. 네거리롤카츠, 네이밍이 좋은 꼬치집 炙心(자심), 흑돼지철판구이, 불맛오징어버터구이, 제주해녀전복버터밥, 남매네흑돼지, 메밀치킨 등 열거가 힘들 정도로 쟁쟁한 맛집이 몰려 있다. 혼밥 하기엔 관광객으로 너무 붐비고 대부분 테이크아웃을 하는 곳이라 한적한 곳을 찾았다.      


가마솥에 소머리 삶는 손맛 좋은 식당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 있는 ‘제주소’는 가마솥에 소머리를 삶는 현지인 맛집이다.

 시장에서 딱 다섯 발자국 벗어나자 ‘제주소’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소머리국밥과 족찜 전문점인데 국밥이 1만원이다. 혼밥 메뉴로 가장 원만한 것은 역시 탕, 국밥이다. 벽에 어지러운 낙서가 그득하고 매장은 좁았지만 혼자 운영하기엔 딱 알맞겠단 생각이다. 60대 초 김선미 사장님 정갈하게 반찬을 먼저 내왔다. 김치, 깍두기, 부추에 간장고추냉이 양념, 새우젓, 양파와 고추, 쌈장 등 반찬이 외로운 여행객의 혼상을 가득 채웠다.      

뒤이어 나온 소머리국밥엔 갖은 소머리 살이 부위별로 골고루 들었다. 손님이 없었고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네이버 검색에도 나오지 않아서 스마트플레이스 등록을 해줬다. 심신이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손맛이 좋았다. 건강을 되찾아 음식을 만들면 손님들에게도 더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해 줬다.      


주방 안을 둘러봤는데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무쇠 솥이 펄펄 끓고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푹 곤 커다란 소머리가 김 사이로 보였다. 주방 가스 불 위에서는 우족으로 족찜을 하고 있다. 메뉴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곳으로 신뢰도가 급상승하는 순간이다. 제주소란 상호가 걸맞은 곳이다. 이곳은 아직 관광객에게 알려지지 않은 현지인 맛집이다.       


서귀포에서 꼭 해보길 권하는 미술관 순례

서귀포 미술관 투어의 시작점인 왈종미술관, 이중섭미술관, 기당미술관, 박서보미술관 조감도.(좌로부터 시계방향)

이튿날 서귀포시 강정읍으로 숙소를 옮기기 위해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비흡연자에게 오션뷰가 가장 좋은 꼭대기 모퉁이 방을 제공해 준 신세계호텔에 감사를 전한다. 하루 더 묵고 싶었지만 이미 예약이 찰 정도로 가성비가 좋고 인기가 많은 곳이다. 호텔방에서 훤히 내려다  보이던 새연교를 건너 새섬을 한 바퀴 둘러봤다. 이곳에서는 좌로는 나무가 많은 섶섬, 정면으로는 아무것도 안 자란다는 문섬, 우로는 범 모양의 범섬이 보인다.      


새섬을 나와 서귀포성당을 지나 왈종미술관으로 향하던 길에 제주가 낳은 붓글씨 명필 소암 현중화를 기리는 ‘소암기념관’을 들렀다. ‘서(書)의 향기, 고전의 깊이’라는 소암기념관 소장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모든 서체에 능했다는 소암의 서체 중 전서체가 가장 마음에 닿았다. 서복기념관은 빠트릴 수 없는 곳이다. 다만 너무 중국색이 강해 특별한 감상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소낭머리와 자구리공원을 갈 걸 뒤늦게 후회했다.       


본격적인 미술관투어 코스는 왈종미술관~이중섭미술관~기당미술관~서귀포예술의전당~박서보미술관(미개관) 순이다. 서귀포예술의전당은 미술보다는 음악에 방점을 두는 곳이라 기획전시 일정을 살펴야 한다. 입장료가 1만 원인 왈종미술관은 일단 제 값을 한다. 다채로움 속에 이왈종 작가의 해학과 일상, 그리고 제주가 녹아있다. 미술관 앞 아트숍에는 다양한 굿즈가 있는데, 여름이라 손부채 두 개를 샀다. 커피를 내려 준 아르바이트 여직원의 상냥함이 기억에 남는다.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의 미술관은 범섬이 내려다보이는 JW메리어트 제주리조트&스파 내에 지어진다. 설계는 스페인 건축가 페르난도 메니스가 맡았다. 미술관은 제주 경관을 담으며 지상 1층, 지하 2층으로 건립된다. 올여름쯤 개관한다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박 화백은 미술관 오픈을 보지 못한 채 지난해 10월 명을 달리했다.      


정갈함과 푸짐함을 겸비한 밑반찬 인상적 


만한전석이 부럽지 않은 ‘단골식당’의 1만 원짜리 정식.

계획하지 않았던 새섬 일정 때문에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났다. 금강산도 식후경 타임이 된 것이다. 마침 서복기념관 건너편에 ‘단골식당’이란 정감 있는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유리창에 ‘정식 1인 됩니다’라고 써 붙여 놔 당당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정식은 1만 원. 홀로 걷는 이들이 쉬 들어올 수 있게 1인 정식도 가능하다고 써 붙인 배려가 돋보이는 곳이다. 정식 한상을 받아보면 한번 더 놀란다. 적당량의 정갈한 반찬이 한 쟁반 가득도 모자라 몇 개는 2층으로 쌓았다. 고등어 반 토막은 집에서 냄새 때문에 생선구이가 어려운 식객에겐 철갑상어알 보다 반갑다.         


고등어 한점, 제육 조금 덜어 상추에 올리고 볼 터지도록 한 쌈 야무지게 싸면 만한전석이 부럽지 않다. 반찬은 모두 우리가 아는 본연의 그 맛이다. 맛과 양이 적정해 몽땅 싹 비웠다. 반주로 곁들인 3000원짜리 제주막걸리는 가격도 맛도 매력적이다.      


단골식당은 가족이 운영하는 듯 팀워크가 좋았다. 손님들이 들고 날 때 박력 있는 목소리로 환대하고 환송하는데 가식적이지 않고 몸에 밴 느낌이다. 똘똘 뭉쳐 장사하는 모습이 보기도 좋았지만 밥맛을 돋운다.        


귤밭 사이서 고소함을 느낄 수 있는 곳  

귤밭 사이에 들어앉아 고소한 맛을 전하는 수제돈가스 전문점‘귤밭사이로’

왈종미술관에서 공사 중인 박서보미술관을 지나 숙소인 강정마을까지 가려는데 어느새 저녁때가 됐다. 강정동 초입 이어도로 대로변에 ‘귤밭사이로’라는 수제돈가스 집이 눈에 들어왔다. 아담한 독립 건물이 정말로 귵밭 사이에 쏙 들어앉았다. 대로변 놓인 엑스배너에 수제돈가스가 1만원이라고 써놔서 무조건 스며들었다.    


깨끗한 실내와 나가면서 봤지만 주방도 정갈하다. 오너 셰프와 홀 서버 모두 젊은 여성이기에 청결 수준을 뛰어넘어 반질반질하다. 자리에 앉아 테이블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니 수프가 나온다. 갑자기 옛 경양식 식당 감성이 식욕을 돋운다. 돈가스 한 접시에는 모닝빵 하나가 함께 나온다.      


세프 샐러드 바에 딸기잼이 왜 있나 싶었는데 옆 테이블을 보니 궁금증이 풀렸다. 모닝빵에 딸기잼을 바르고 돈가스를 크게 잘라 야채샐러드와 넣으면 돈가스햄버거가 된다. 따라서 해 먹어 봤는데 최고의 조합이었다. 이 식당은 모든 것이 다 무료 리필이 된다. 심지어 돈가스까지 말이다. 한 번 더 가보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곳이었다.       


지인들이 하는 지중해 요리전문점 ‘바다마르마레’, 모슬포항 현지인 회 맛집 ‘해리네’, 제주시에 있는 ‘중종흑돼지’, 여전히 정갈한 옥돔구이정식 ‘화수분’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서귀포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술의 도시라는 새 매력이 있다. 아울러 이번에 소개한 1만원자리 메뉴가 주력인 식당은 1만원 이상의 가성비가 느껴지는 매력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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