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멘ㆍ대왕곱창문래점ㆍ영일분식
30일부터 내달 9일까지 ‘문래아트페스티벌’
해물과 돼지뼈 육수의 환상적 조합 ‘로라멘’
문래동창작촌 초입 맛있는 곱창 ‘대왕곱창’
몇일 후면 6월이 시작된다. 새해 인사 나누고 봄이 오는 것을 기뻐했는데 어느새 여름 초입이다. 서울의 봄은 미술의 도시로 변신하는 계절이다. 각종 아트페어가 잇달아 열리면서 짧은 봄의 아쉬움을 채워준다. 봄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는 말이 실감 나는 계절이다.
서울을 대표하는 굵직한 아트페어인 ‘화랑예술제’와 ‘서울아트페어 2024’는 이미 끝났지만 잇달아 특색 있는 전시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 역시 끝난 행사지만 지난 23일부터 26일까지는 ‘조형아트서울 2024’가 서울 강남구 코엑스 B홀에서 개최됐다.
올해로 벌써 9회째 맞는 조형아트서울은 조각, 부조, 유리 등 입체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보기 드문 아트 페어다. 입체작품 시장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에 대한 활성화 방안으로 참가 갤러리에게 입체 작품 1점 이상을 출품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조형아트서울이 끝났다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달 30일부터 내달 9일까지는 서울 문래동의 철공소 골목에서 '문래아트페어(Mullae One & Only Art Fair, MOAF) 2024'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트필드갤러리 주최로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싱싱한 아트페어다. 서울 서남권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출품 작가들 편차가 크지만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작가와 관람객 모두에게 무료를 지향하고 있는 개방성이 강한 열린 아트페어다.
기존 아트페어와 모아프의 가장 큰 차별화는 공간이다. 상당수 저명한 아트페어는 코엑스나 벡스코, 세텍 같은 대형 실내 공간에서 연출되지만 모아프는 우리가 늘 지나다니는 골목이 전시장이 된다. 문래골목숲길 옆에 있는 각종 상가가 플리마켓, 인디 라이브 공연, 식음료 식당 등으로 변신해 관람객이 자연스레 공간에 스며들 수 있다.
이번 모아프에는 500명에 가까운 작가들이 공모해 심의를 거쳐 2.5:1의 경쟁을 뚫고 200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5월 31일, 6월 1일, 6월 5일부터 6월 9일까지는 오후 10시까지 즐길 수 있다. 30일에는 임지영 예술칼럼니스트, 김홍표 배우 겸 아트필드 홍보이사가 나와 강연하고 오후 5시부터는 인디밴드 라이브가 시작된다.
올해는 특별히 잇다스페이스의 정창이 작가가 ‘숲의 정령’이란 제목의 설치 작품 2점을 기부해 문래골목숲길을 풍성하게 했다. 작품은 강원도 강릉, 고성, 인제 등에서 일어난 산불에 의해 검게 타버린 나뭇가지들을 모아 만든 조형물이다.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와 같이 인간의 탐욕으로 훼손된 숲에 대한 성찰과 복원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 철공소가 사라지면서 먹거리 집으로 대체되는 문래동 골목을 음악과 그림 등 예술로 채우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트페어가 끝나도 철수하지 않고 골목길에 영구 보존된다.
‘사랑하놋다’ 연작을 선보이고 있는 한국화가 최지윤 작가가 이번에는 ‘받은 사랑 이후의 사랑’이란 주제로 나마갤러리에서 6월5일부터 25일까지 초대전을 연다. 나마갤러리와는 지난 4월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에 참여작가로 함께 한 인연이 있다. 이번 초대전으로 통산 31번째 개인전을 기록하게 된다.
최 작가는 독보적 색채의 산수와 꽃, 화려한 보석을 품은 각종 동물들, 절제된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이는 대표적인 한국화가다. 들꽃, 새, 산수 등 자연 속에서 얻는 소재와 이질적인 보석, 액세서리, 펜던트 등의 소품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사랑을 표현한다.
30여 년의 작품 활동을 정리한 도록도 곧 있으면 출간된다. 전시 작품 위주로 한 섹션과 1989년부터 2022년까지 작품 이야기로 나눠 98쪽에 달하는 도록이다. 독립큐레이터인 김숙경 씨가 한 세대를 풍미했던 작가의 작품 변화와 여정을 글로 풀었다.
김 씨는 독일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쿤스트독 갤러리, 각지 비엔날레 등에서 큐레이터를 맡은 큐레이터다. 최 작가는 경희대 미술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경희대와 성균관대 겸임교수, 경기대 초빙교수 등을 지냈다.
문래동을 필자는 ‘스틸타운’으로 부른다. 문래아트페어가 열리는 ‘스틸타운’ 문래동은 근현대사의 다양한 시층을 가진 공간이다. 영등포구에 위치한 문래동 조선시대에는 갈대밭 지천이었다가 1930년대 방직 공업지대로 형성됐다. 일제 강점기에는 종연방직, 동양방직 등 군소 방직공장이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에 의해 사옥동(絲屋洞)이라 불렸고 해방 후 실 짜는 도구인 물레에서 이름을 따 문래동이 됐다.
지금은 철공소와 금속가공공장들이 남아있는 산업단지인 동시에 예술가들의 유입으로 예술 창작촌이 공존하고 있다. 동시에 노후된 공장을 개조한 상업 시설이 늘어나면서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핫한 공간도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 계획적으로 개발된 대규모 주택단지인 영단주택의 흔적을 볼 수 있고 해방 이후 1960년대 경인로를 중심으로 철재상가와 공장들이 모여들어 철공소 밀집지를 이뤘다. 문래동3가 지역은 국군영화제작소가 설치됐다가 빠져나간 자리를 1979년 상인 80여 명이 부지를 매입하면서 철재상가 단지가 생겨났다. 도심권정비에 밀려난 금속제조상들이 새로 둥지를 튼 것이다.
80년대 중반부터 소규모 철강제조업 경기가 시들해지고 IMF 여파로 2000년대에는 공장들이 도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공간이 비게 됐다. 남은 공장들이 1층을 주로 사용하고 2, 3층 빈 곳에 90년대 중반후반부터 예술가들이 유입되면서 문래창작촌이 형성됐다. 이들은 가까운 홍대나 대학로에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튕겨져 나온 예술가들이다.
도시재생 과정 대부분이 문화예술인들이 먼저 들어와 거리와 골목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사람들이 모인다. 자연스레 먹거리와 패션 등 상업시설이 생겨나고 다양한 형태의 시공간이 공존하는 핫 플레이스가 된다.
지금도 한쪽에서 불꽃이 튀는 용접과 쇠를 자르는 기계소리가 요란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인디밴드의 음악이나 조용히 클래식, 재즈를 들으며 수제맥주와 와인을 즐기는 하이브리드 한 공간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던 문래동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영등포가 공업도시가 되고 서울로 편입되면서 노동자들이 몰리면서부터다.
한편 영단주택은 총 200동 659세대가 지어졌으며 갑·을·병·정·무로 면적을 달리 해 일본인과 한국인들에게 구분해서 분양했다. 대지는 건평의 3배 이상, 하루 4시간 이상 채광 가능, 외관은 일식이지만 방 한 개는 반드시 온돌이라는 조건으로 지어진 한일 절충식 주택이다. 영단주택이 들어선 문래4동 지역을 ‘오백채’라고도 불렀다.
문래동의 역사를 조금 접하고 나서 골목을 누비면 아는 만큼 보인다. 그 옛날 영등포 공업단지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의 안식처였던 영단주택. 그들의 귀가 길을 좇아 골목 깊숙이 접어들면 문래동 변신의 랜드마크인 ‘올드문래’가 나온다. 밤 열 시에도 자칫하면 웨이팅이 걸린다. 낮엔 커피, 밤엔 맥주(호프)가 주력이다. 옛 공장건물을 리뉴얼한 공간이 주는 매력이 큰 곳이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설명을 생략한다.
뒷골목을 헤집으면 영단주택 흔적이 남은 초입에 아담한 전형적인 일본식당 외관을 한 라멘집이 나타난다. 4년 전에도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는 맛집이다. 당시는 대기 없이 편안하게 입장이 가능했는데 요즘은 맛집으로 소문나서 줄을 꽤나 서야 한다.
쿄카이돈코츠라멘이 대표 메뉴다. 쿄카이(魚介)는 바다에 사는 생물을 의미하는 일본어다. 카츠오부시, 소우다부시(카츠오의 일종으로 좀 더 라이트 한 버전), 사바부시(고등어), 니보시(멸치) 등의 해산물을 섞은 국물이다. 여기에 돼지뼈, 닭뼈 등의 육수를 혼합해 부드럽거나 매콤한 맛을 낸다. 로라멘에서는 어패류 국물을 섞는다. 4년 전엔 매운 돈코츠라멘에 챠슈(돼지고기)를 추가했던 기억이다.
닭과 사골 베이스의 맑은 육수에 소금 간을 한 토리시오라멘, 고흥유자즙을 넣어 시원상큼한 풍미를 자랑하는 유즈토리시오라멘, 30여 가지 재료를 넣은 나고야식 비빔라멘 마제소바가 인기 메뉴다.
영등포구청에서 문래역을 지나 문래예술창작촌으로 들어오는 초입에 제법 맛있는 곱창 전문점이 있다. 근처에 수요미식회 등에 나온 곱창집이 있지만 대로변 초입이라는 장소가 좋아 맛집으로 선전하고 있다. 선전의 요인이 위치 덕도 있지만 푸짐한 곱창과 맛에 있다.
1, 2차 초벌을 해 오기 전까지 속을 달래라고 선짓국과 간처녑을 내온다. 이 정도만 해도 술을 곁들이면 취하고도 남겠다 싶다. 곱창, 대창 모두 잘 손질된 맛이고 대창 기름을 잡기 위해 감자에 더해 식빵을 썼다. 개인적 애정하는 감자가 깔려 있어 맘에 쏙 든다.
부추와 숙주를 곱창기름에 지글지글 볶아 내 곱창과 함께 먹으면 입술이 번질번질해진다. 곱창 곱이 아쉬우면 대창을 섞으면 아쉬움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 살짝 진저리 쳐지는 기름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창 기름은 몸에 그다지 바람직하진 않다.
무쇠바람 몰아치는 문래동 뒷골목 ‘영일분식’도 핫플이다. 허름한 분식집 외관이지만 웬만한 기다림의 인내심이 없으면 쉽게 맛볼 수 없는 곳이다. 온종일 쇳가루와 싸우던 주머니 가벼운 철강 노동자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던 칼국수 한 그릇의 추억. 영일분식은 여전히 솥단지가 철철 넘치도록 끓여대는 칼국수는 인심 좋은 사장님의 마음이 겹쳐 보인다.
지금도 도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맛집으로 대기 줄이 장사진이다. 칼비빔국수라는 독특한 메뉴가 인기가 좋다. 푹 삶아낸 면을 커다란 양푼의 담고 채소를 넣은 후 양념장을 넣고 맨손으로 쓱 쓱 비벼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입안에 침이 한껏 고인다. 새콤할 것 같지만 매콤함이 앞서고 딱딱할 것 같은 면발은 한 없이 부드럽다.
칼국수, 소면국수가 주력이고 이들 모두 비빔면으로 해준다. 면 추가는 달라는 대로 원 없이 더 준다. 이들 모두 8000원, 만두 7000원으로 요즘 외식물가를 감안하면 가성비, 가심비가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