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를 대표하는 고등학교는 누가 뭐래도 전주고등학교다. 1919년 기미독립운동이 계속되던 해 6월에 관립 전주고등보통학교로 개교했다. 지난 2019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했고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만난 소위 ‘전고’(全高) 나온 동문들의 자부심은 높았고 연대감은 견고했다. 관내 지역에서든 전국 어디든 그들의 결속력은 남다르다.
흔히 우리나라 마초(Macho) 집단은 고려대 동문회, 해병대 전우회, 전남 향우회 등이 입에 오르내린다. 이들의 지나친 단합력에 대한 우스갯소리지만 부러움도 담겨 있다. 필자는 전주고 동문들의 끈끈함도 결코 이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매해 전주를 다니면서 이들을 옆에서 지켜본 결론이다.
이런 전주고가 우리나라 고교 야구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지난 1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경기상고를 6-3으로 꺾고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사실 고교 야구는 관심 영역 밖의 일이다. 게다가 모교도 아닌 남의 학교기에 더더욱 눈길조차 가지 않았던 뉴스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전주고 야구부 후원회장을 역임했던 김생기 나래코리아 대표와 만나 식사를 하면서 엊그제 있었던 우승 소식을 접하게 됐다. 동시에 몇 해 전 전주를 방문했을 때 전주고 교정을 안내하면서 자신이 심은 소나무 한그루를 보여줬던 기억이 났다. 야구부 후원회장 명의의 기념식수였다.
전주고는 지난 7월에는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도 우승했다. 1977년 창단 이래 한 해 두 개의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지켜 든 것은 처음이다. 39년 전 황금사자기를 우승한 이후 쾌거다. 예향과 미식도시 전주가 음식만 훌륭한 게 아니라 야구도 ‘맛집’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올 100회를 맞은 고시엔대회에서 우승해 한글 교가를 공영방송을 통해 일본 열도 전역에 울려 퍼지게 한 교토국제고와 야구 교류 통해 우호를 증진시킨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김생기 대표는 “올해는 10월 말까지 양교가 전국체전 등 일정이 있어서 내년에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주는 자칭 타칭 예향의 도시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음식창의도시((UNESCO Creative Cities of Gastronomy)이기도 하다. 이는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일환으로 음식 문화와 관련된 창의성을 통해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도시를 지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04년에 시작됐다. 음식 외에도 문학, 영화, 음악, 공예와 민속예술, 디자인, 미디어아트 등의 분야에서 창의적인 발전을 이룬 도시들을 지정하고 있다. 음식창의도시로 지정된 도시는 음식 문화를 통해 도시의 경제, 사회, 문화적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
음식창의도시가 되려면 우선 고유하고 독창적인 음식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음식 문화가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다른 유네스코 창의도시와의 협력과 지식 교류를 통해 글로벌 음식 문화 발전에 이바지도 해야 한다. 이런 측면을 모두 충족시키는 곳이 전주다.
전주는 2012년에 음식창의도시로 지정됐다. 이에 앞서 2006년에는 한국전통문화 중심도시, 2010년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전주는 흔히 한식 본고장으로 회자된다. 전주비빔밥과 같은 전통 음식을 통해 한국 음식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는 도시다.
전주는 후백제 도읍이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이다. 흔히들 조선왕조 발원지라고 한다. 그런 역사를 오롯이 담은 곳이 사적으로 지정된 경기전이다. 전체 공간은 사적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보물로 지정된 정전에 국보로 지정된 조선태조어진이 봉안돼 있다.
역사적으로 전주는 전라도의 ‘전’ 자를 상징할 정도로 전 지역을 총괄하는 전라감영 수부(首府) 역할을 담당했다. ‘온전한 고을’의 뜻을 지닌 전주는 지리적 영향으로 고유한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동쪽 산간지대와 서쪽 평야와 해안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하고 풍부한 식재료들의 유통이 전주에서 대규모로 이뤄졌다. 음식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쌀이 생명이던 시대 대규모 농지를 가진 지역 부호들의 고급 입맛과 지역 아낙네들의 손맛이 어우러진 고유의 음식 문화가 축적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맛뿐만 아니라 멋을 즐길 줄 아는 풍류까지 더해져 예향의 도시로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전주시는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 미식도시로서 관광자원 발굴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음식관광 육성을 지원하고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인 '음식관광 창조타운‘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음식관광 창조타운'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서부내륙권 광역관광개발사업의 일환이다. 전주시 지난 5월 공모전을 통해 길종합건축사사무소이엔지에게 사업 설계권을 부여하고 창조타운 조성에 본격 돌입했다.
타운은 전주시 경원동에 대지 면적 2830㎡, 연면적 9643㎡ 규모로 들어선다. 건물 내엔 음식관광 복합문화공간, 음식 창의 진흥공간, 음식 창업·체험 공간 등이 들어선다. 총사업비는 435억 원이 들어가며 2027년까지 공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을 통해 전주는 미식문화와 관광 등 명실상부한 음식문화를 선도하는 도시로 발돋움한다. 오는 10월에 펼쳐지는 ‘전주페스타’는 이를 시연하는 일종의 시금석 같은 자리다.
전주에서 음식 메뉴별 원톱을 손꼽으라면 매우 어렵다. 대부분이 평균 이상은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전주시가 추천하는 맛집을 찾으면 된다. 전주 음식의 대표주자인 전주비빔밥은 가족회관, 성미당, 풍남정, 고궁, 갑기원, 종로회관, 한국관 등을 추천한다.
콩나물국밥은 콩나루콩나물국밥, 신뱅이, 삼일관, 왱이콩나물국밥집, 한일관, 풍전콩나물국밥, 삼백집 등을 시는 추천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미가옥과 현대옥을 더한다. 특히 칼럼에 소개한 바 있는 미가옥은 분위기와 맛, 주류 콜키지 등 재미있는 요소와 결합해 특별한 기억을 남긴 곳이다.
오모가리탕은 옥정호뿐만 아니라 한옥마을 끄트머리에 해방 전부터 영업한 화순집을 비롯해 한백집, 남양집 등을 추천한다. 오모가리탕은 모래무지를 이용한 민물고기 매운탕이지만 지금은 쏘가리, 빠가사리, 메기, 피라미, 새우 등을 사용한다. 돌솥밥은 호림이네, 반야돌솥밥, 한정식은 만성한정식, 궁, 전라회관, 배번집, 전주백반은 감로헌을 시가 추천하고 있다.
전주는 매년 적어도 한번 이상 다닌다. 전주국제영화제 전야음악회를 매해 참석하고 있다. 예향과 미식도시로만 알다가 이젠 전주고 야구부로 인해 고교 야구 명문도시로 새삼 바라보게 됐다. 부디 한국 야구 발전의 요람이 되길 응원한다. 아울러 미식 문화와 관광이 잘 결합된 음식관광 창조사업의 멋진 출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