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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Jul 18. 2022

내 '전' 시집 이야기

가족에서 친구로

결혼했던 사람이 비한국인이었던 이유로, 나는 한국에서 얘기하는 시월드를 경험한 적이 없다. 그도 물론 부모님이 계셨고, 무려 사 남매의 막내였다. 심지어 그의 아버님은 재혼하셔서 새 시어머니도 계셨지만... 내가 그 분들을 시댁이라고 생각하는가? 전혀.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인지 그저 친구같은 느낌으로, 사실은 지금까지도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시부모님 이름을 부르다니, 물론 우리는 이미 탐과 제인을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시월드란 문화적 맥락을 생각하면 더 낯선 경험일 수도 있겠다. 나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에 한국어로 그들을 지칭할 때 참 낯설다. '시아주버님' 이라던가 '시누이', '동서'... 음, 남편의 누나의 남편이 뭐더라?


세 분의 시부모님은 나를 아껴주셨고, 나는 그들의 수양딸 (심청에 나오는 승상 부인처럼) 같은 존재였는데, 친부모처럼 어리광을 부리거나 할 순 없었지만 힘든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부담 없이 연락 드릴 수 있는, 좋은 분들이셨다. 이민자가 갑자기 전화해 도움을 요청할수 있는 사람이란 너무나 귀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좋은 시부모는 참으로 감사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 분들과 나는 너무나 사이가 좋았던 나머지, 후에 결혼이란 서류가 무의미하게 되어 우리의 가족 관계가 해소될 때 쯤엔, 아이 아빠가 자기 가족은 본인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지금도 전 시어머님-A는 가끔 애 아빠를 도와 아이가 아빠와 있는 날 그들을 방문해 밥도 해 주시고, 숙제도 챙겨주시고, 애를 데려다 주실 땐 그의 건강이라던가 상태에 대한 이런저런 상황을 전해 주시며 공동 육아의 보이지 않는 한 축을 담당해 주시는데, 그 기저엔 당신께서 남편이 해외 근무를 하는 동안 혼자 일을 하며 아이들을 전담해 키웠던 경험이 있으시다. 이혼에 대해 처음 말씀 드렸을 때,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혼할 때, 동서가 뭐랬는지 아니. "우린 더이상 가족은 아니지. 이젠 베스트 프렌드가 된 거야. 그러니 힘들 때면 꼭 연락해." 너도 마찬가지야. 언제든 연락해라."


아들, 또는 남자들의 육아의 못미더움을 체험하신 A는 전 시누이 L의 아이들이 물려준 옷을 내게 직접 전달하시기도 하는데, L 과도 바쁜 와중에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다.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 역할과 자기 사업을 동시에 잘 해내고 있는 강인한 여성으로, 날 보는 그녀의 표정엔 안타까움, 대견함, 감사 같은 것이 느껴진다. 애 아빠와 많이 닮은 그녀를 보며 애 아빠가 누나 같았음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주에 사시는 전 새 시어머님 B (전남편의 아버님이 재혼하신 분)는 근처에 오실 때면 항상 만난다. 이런 저런 근황과 안부를 나눈 후에는 항상, 아직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다, 애들은 금방 크니 네가 인생을 같이 할 사람을 어서 만들라는 독려가 이어진다. 역시 이민자이신 그 분과는 종종 이 나라 놈들 흉도 보면서, 전화와 문자로 안부와 아이 사진을 주고 받는다. 그 분의 며느리 (전 시아버님과 재혼하기 전에 낳은 아들의 부인) C와도 가끔 연락을 하는데, 그녀는 점심으로 맨날 김자반을 싸 가는 김자반 매니아로, 작년엔 우리 애 생일 선물을 부쳐줬다.


이혼 얼마 후, 전 시아버님 D는 호주에 온 우리 엄마와 만나셨다. 엄마는 그동안 날 돌봐 주셔서 감사했다고 말씀하셨고, D는 애들은 헤어져도 언제나, 항상 나를 돌봐 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물론 엄마는 가끔 전화로, 얘, 손주는 니가 다 보는데 애 할아버지가 너한테 돈을 좀 주셔야 하는 거 아니니? 라고 말씀하시곤 하지만- 두 분이 마지막으로 만나 서로 눈시울을 붉히셨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분은 약속을 지키셨고, 같은 주에 사는 동안 이사짐을 싸는 것이나 아이 픽업을 도와 주셨다. 작년 내 생일, B와 D 님은 우리 집에 꽃을 보내 주셨다.


타국에서 만난 가족, 이젠 가족이 아니게 됐고, 명절을 같이 보내진 않지만, 나는 이 인연들을 항상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결혼이나 국적, 그런 종이 쪽지는 관계의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가족으로 지냈는데, 갑자기 남이 되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닌지. 무슨 무슨 관계가 됐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게 이상한 일 아닌지. 관계란, 세간이 정해 놓은 기준을 최소로, 그 이상을 계속해서 발명해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사실혼이 워낙 당연한 나라라 사람들이 그런 생각에 더 익숙한 지도 모른다. 생각난 김에 여행 중이신 D와 B 님의 페북에 안부라도 남겨야겠다.




*사족: 서구권 시댁도 이상한 분들 많습니다... 인종차별을 한다던가 등등. 성급한 일반화는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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