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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Dec 11. 2022

사랑과 전쟁

지지 않는 것

아버지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이었다. 옛날에야 거의 모든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었다고 해도 사실일 정도라, 이렇게 말하면 '우리 아버지도 약주를 좀 하셨다'는 말을 종종 대답으로 듣는데, 이 분의 경우는 모든 외가 친척, 엄마 친구들, 경찰서를 비롯한 동네가 다 혀를 찼고 (친가 친척, 본인 친구는 존재하지 않은지 오래),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1년에 한 번은 병원으로 압송해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주변 사람들을 악질적으로 괴롭혔고,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대단한 것은 엄마였다. 돈을 벌고 생활을 꾸리셨다. 더 대단한 것은, 나, 종종 엄마들이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는다는 장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불평하거나, 화풀이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빠 흉을 보지도 않았다. 엄마의 절친께선 나를 보면 농담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니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한다. 아니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우리 친구들끼린 저건 사랑이 아니면 설명이 안된다, 이래 얘기한다. 맞재? 니는 이해가 되나? 사랑 맞재?


친구한테도 신세타령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체 어떻게? 폭언과 폭력을 당하고, 잠도 못 자고, 친구나 가족을 보러 나가는 것조차 구속당하면서도.


서너 살 때쯤? 아주 어렸을 때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집이 망해서 (다시 말하지만, 망할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망했는지 모르겠다) 경기도 산 몇 번지에 살 때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엄마가 도저히 안 되겠던지 내 손을 잡고 밤중에 집을 나왔다. 주변은 논밭이었고, 깜깜했다. 개구리 소리 들렸던 것 같다. 산길을 얼마쯤 걸었는지, 엄마는 비닐하우스 하나의 문을 열었다. 안은 잡초만 무성하고 비어 있었고, 공사 자재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엄마는 그중에 넓은 나무 판을 발견하고는, 여기서 자면 되겠네, 했다. 그다음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엄마 팔을 베고 잤다. 춥지도 않았고, 걱정도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있었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다. 그때 외가 친척들이 가까운 서울에 살고 계셨다. 큰 외삼촌도 계셨고, 엄마와 상경해서 고등학교 때 같이 살았던 작은 외삼촌도 서울에 계셨는데, 당시엔 사업이 잘 되었다. 아파트에 놀러 가면 요리 학원에 다니셨던 외숙모께서 과일을 예쁘게 깎아 주시고 한 살 많은 사촌 오빠가 피아노를 쳐 주었다. 엄마의 친구도 서울이었다. 핸드폰이 있던 시대가 아니라 밤늦게 연락이 불편하긴 했겠지만,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엄마 나이도 고작 서른 초반이었고, 상황이 오죽했으니 한밤중에 밖으로 나왔을 텐데, 무섭지 않았을까. 외가 친척들은 끈끈해서 택시비 정도는 내주셨을 텐데.


그런데 지금은 알 것도 같다. 왜냐하면 나도 정말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올 때까지는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스스로를 지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것보다 강하다 믿었고 나의 또는 다른 누군가의 말이 이 싸움을 더럽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선택에 따른 고통을 오롯이 책임지고 싶었다. 때로 버티는 것은 호구여서가 아니라, 미련하도록 자존심이 높아서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생 땐 무던한 엄마도 원형탈모를 겪었다. 자퇴하고 싶단 말은 안 할 걸 그랬지...


내가 스물이 넘은 후엔 엄마도 이혼을 고려한 적이 있고, 나와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 하지 않으신 이유는 재산 분할 문제가 컸고-조금만 더 참으면 남은 것을 온전히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앙갚음에 대한 두려움, 자식들 결혼과 취업 문제도 있었을 것이고 -내가 직장 생활할 때도 상사가 내 눈앞에서 얘는 경력도 좋고, 공부도 잘했는데, 부모님이 이혼했네. 아무래도 안 되겠지, 하고 이력서를 제는 걸 봤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중장년 여성이 기혼이 아니면 업신여기는 분위기... 그리고 또 하나 발견한 것이 있는데,


나는 간장 게장을 좋아한다. 딱딱한 껍질 속 투명한 맨살을 한 자리에서 쪽쪽, 소금기로 입 안이 쓰리고 얼얼할 때까지 먹는다. 그런데 호주에는 잘해봤자 얼린 것 밖에 없기 때문에 몇 번 사 먹고는 그냥 포기했다. 그래서 지난번에 한국에 갔을 때, 가자마자 게장을 몇 킬로나 주문했었다. 그런데 얄궂게도 나의 무던하지 못한 어떤 성향들은 - 엄마가 유난하다고 하는 부분들- 아버지로부터 온 것으로, 특히 어떤 부분들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식성이 좀 비슷한데, 아버지도 게장을 좋아하신다.


사실 집에 가면 웬만하면 아버지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밥상에 앉는다. 그가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점점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분도 대체로 '있기만' 하진 않는다. 싸우느니 내외하는 것인데, 집에 가는 게 몇 년에 한 번뿐이니 엄마가 다 같이 먹자, 를 주장하시면 별 수 없이 한 자리에 앉을 때도 있고- 그게 엄마가 이때껏 견뎌온 수많은 것에 대한 보상이라면 못할 건 또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그때, 엄마가 게딱지를 아빠 자리 앞에만 딱 놓더라. 그 안에 밥 비벼 먹는 게딱지. 노란 알이 차 있고 쉽게 떠먹을 수 있는 살이 가득한... 아직 주문한 게는 많이 남아 있었는데, 내 앞에는 다리뿐이고.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구나. 그리고 그것이 말할 수 없이 섭섭했다. 왜냐하면, 참 이상하게도, 엄마가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 생각나서.


엄마는 그냥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생활과 아빠를 감내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이고 죄송해서. 그런데 아빠가 자연재해가 아니라 나와 같이 엄마의 손가락 중 하나라고 생각하자, 마치 편애하는 자식 옆의 안 보이는 자식이 된 것 같았다. 엄마는 아빠를 맡길 곳이 없어서 내가 아이를 낳을 때도 와 주지 못했고, 당시에도 알코올로 망가진 아빠의 여기저기 때문에, 내가 앞두고 있던 수술에 무신경한 말을 했다. 한국에서 수술을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냥 호주로 돌아왔다. 비행기 타기 전에, 엄마는 내 앞으로 들어놨던 보험이 만기 됐다며 목돈을 쥐어 주셨는데, 난 일부러 그걸 차에 두고 내렸다. 


그래도 섭섭했단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엄마는 역시 대단하기 때문에.  아버지 혼자였으면 금방 망했을 사업을 수습해 밤에는 학대를 당하고, 낮에는 일을 해서 자식 둘을 학원에, 대학에 보냈다. 은퇴 준비도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알콜성 치매로 자신과 주변인을 그렇게 괴롭히던 그 '유난함'이 없어지고, 글도 잘 못 읽게 되고, 그러나 감사하게도 스스로의 몸을 수습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보전되어 어머니는 결혼 후 가장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계시다. 그거면 됐다. 엄마는 엄마가 선택한 전장에서 지지 않았다. 버티는 것은 그녀의 전략이었고,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었. 그녀 아래  모두 살아남았다. 그러니 섭섭함을 따질 건 또 뭔가. 인생에 '다시'는 없는걸. 


나는 내 업보나 걱정할 일이다. 원가정에서 반면교사와 모범 예동시에 보며 자란 덕에 웬만한 큰 일은 남에게 티 내지 않도록 새기며 살아왔지만, 피곤하면 아이에게 예민하게 굴기도 하고, 힘들 때 소리 없이 우는 모습을 들킨 적도 있다. 그때 아마 그 애는 두 살인가 세 살쯤. 못 본 줄 알았는데, 봐도 이해 못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는지, 몇 년이나 지나 그때 엄마 왜 울었냐고 물어 가슴이 덜컹했다.


몰라도 된다, 대답한다. 엄마도 슬플 때가 있다고. 그건 사실이지만, 미안하다. 아무렇게나 마구 부딪혀도 괜찮은 어른 못되어 주어서. 그건 어린 시절만의 권리인데. 언젠가는 아이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리 앞에서 총알을 막는다 해도 화약 냄새까지 막아줄 순 없어서, 결국엔 알게 될 것이다. 그곳이 사실은 전장이었다는 걸. 사실은 자기도 버티고 있었다는 걸. 화약 냄새가 당연한 것인 줄 알고.


그때에, 아이는 자신의 냄새가 어디서 왔는지 깨닫고 씁쓸해할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어쩌면 이렇게 업보를 쌓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때에, 아이 부모를 용서해 줄까. 내가 선택한 전장을 이해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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