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대리 Jun 05. 2020

당신은 에이스인가요?

- 에이스라는 말의 무시무시한 의미


우리 회사는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으로 나누어서 개인의 업무량이라는 걸 평가한다.


그 평가로 정말 미미하지만 매년 승진인사에 반영하기도 하고 팀별 성과급의 차등을 두기도 한다.


아무래도 몇 건의 업무를 처리했다는 수치로 기재되다 보니 그 숫자들에 예민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수치로 자신이 열심히 일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어쩜 업무량이 높은 사람보다는 낮은 사람이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 개인별 업무량이라는 이름의 쪽지가 도달하자 나 또한 빼곡히 적힌 직원들 사이에서 내 이름을 찾아보았다.


규모가 작은 팀인 데다가 솔직히 열심히 일을 찾아 하진 않았으니 업무량이 높은 편은 아니었는데 그것 또한 아무 의미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한번 스치듯이 보고는 금세 파일 창을 닫아버렸다.


"어, 우리 @@씨가 이 분야에서는 업무량 3위네.

오~ 대단한데."


작년에 입사하여 나를 한때는 나쁜 선배로(저의 이전 브런치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로 만들었던 후배를 추켜세우며 팀장님께서 얘기하셨다.


팀장님의 말에 고령(?)의 막내 직원분과 차장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단하다며 상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소리치셨다.


때마침 업무량에 대한 공지가 뜨기 몇 분 전 그동안 고생했던 직원들을 독려하는 이사장님의 글이 올라왔기에 더 그런 얘기들이 쏟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팀원 모두가 후배를 치켜세우며 칭찬의 말을 건네었을 때도 입 한번 뻥끗하지 않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후배가 고생한 것은 진심으로 맞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후배의 노고나 노력을 단 하나도 비하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내가 팀장님과 팀원들의 후배에 대한 업무량 칭찬에도 입 한번 뻥끗하지 않은 건 그 업무량에 대한 칭찬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몇 년 전 가장 바쁜 팀에 배정되어 미친 듯이 일한 결과 업무량 1등이라는 결과를 얻고 상까지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회사가 나를 인정해준 것이며 그 모든 이력들이 나의 승진과 인사고과에 엄청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몇 년 후 내가 느끼고 깨달은 건 미친 듯이 일을 해서 업무량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보다는 미친 듯이 상사에게 아부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인사고과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형식적인 수치인 업무량이라는 이름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작년, 지금 일하고 있는 팀으로 인사이동이 났을 때 차장님께서는 다른 팀의 직원들이나 외부사람들이 등장할 때마다 나를 에이스라고 소개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겸손함 반 민망함 반의 마음으로 과찬이시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1년이 지나고 그 칭찬 같은 소개의 멘트가 지금의 후배에게 옮겨간 것을 깨닫는 순간 단번에 알았다.


여기서  말하는 에이스는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현재 가장 많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에이스라는 이름의 칭찬과 허울로 선의든 악의든 위에서는 밑의 누군가가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이곳에서 다시는 에이스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마터면.. 그만 들어가 보겠다고 할뻔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