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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Jun 11. 2020

아빠는 왜 승진을 하지 못했을까

어린 시절,

아마도 내 기억에는 초등학생 시절.

그 당시 에게도 무리를 지어 친하게 지냈던 서너 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모여 살았기에 학교가 끝나면 이 집 저 집을 몰려다니며 즐겁게 어울려 다녔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중 한 친구가 물었다.


"너희 아빠는 회사에서 직함이 뭐야?
우리 아빤 과장님인데.."


그 당시 직이라는 말조차 낯설었던 나에게 친구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은 그런 나의 당황스러움과는 달리 이내 사장님, 과장님, 부장님 등등 자신들이 알고 있는 아빠의 직함을 읊어되기 시작했다.


"우리 아빠는.. 그냥 사원인데..
우리 아빠네 회사는 높은 사람일수록 빨리 그만둬야 한데.."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변명들로 얼버무리듯 대답하고는  이내 다른 이야기로 화젯거리를 돌렸다.


비록 20년도 지난 일이었지만 내 머릿속에 그런 기억들이 남아있는 건 그때 내가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창피함의 감정들이 마음속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어렸기에 블루칼라, 화이트칼라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몰랐을 때였다.


아빠네 회사는 나름 대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계열사 공장들 중에 하나였는데 매해 여름이면 큰 버스를 대절하여 직원들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나곤 했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차가 없을 때라 큰 버스를 타고 평소 가보기 어려운 휴양지에 놀러 간다는 것이 마냥 신나기만 했었는데 그렇게 휴가를 떠나게 된 어느 날, 그전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던 아빠의 회사를 한번 둘러보게 되었다.


즐겨보던 티브이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것처럼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넘기며 일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기대와는 달리 아빠가 일하고 계셨던 공간은 이런저런 설비들이 가득 들어차 있던 작은 컨테이너 같은 공간이었다.


그 안에까지 들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 나는 아빠가 내가 생각했던 그런 모습의 회사원은 아닐 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 그제야 잘 다려진 와이셔츠보다는 편안한 옷차림의 출근을 즐기셨던 아빠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빠의 직함은 정년퇴직을 하는 순간까지 그냥 사원에 머물러 있으셨던 것 같다.


 어릴 적 내가 친구들에게 했던 변명의 말처럼 아빠는 수많은 시련과 위기를 견디고 무사히 정년퇴직을 하시게 되었 이만큼 사회생활을 하고 나니 왜 평생 아빠의 직함이 사원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흔히 하는 얘기처럼 끝까지 버티고 견디는 자,  즉 존버가 진정한 승자라는 말처아빤 승진이라는 영광의 순간은 누리지 못하셨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진정한 승자이셨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직장생활 십 년 차가 넘어가는 나도 몇 년째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에 부딪혀 승진 누락이라는 인생의 이벤트에 이리도 마음이 상하는 순간이 많은데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일해온 곳에서 그러했던 아빠의 심정은 어땠을까를 짐작해보면 시리도록 마음이 아프다.


"아빠가 그래도  IMF 위기상황에도 끝까지 살아남고
그 덕분에 너네 대학까지 무사히 공부시켰잖아."


가끔 가족들과 모여 소주잔을 기울일 때면 힘들었던 직장생활도 이제는 그립다고 얘기하시는 짠한 아빠의 말에 나도 다시 한번 지금의 직장생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도 이 순간순간들을 버티고 나면 먼 훗날 남편과 딸에게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얘기들을 훈장처럼 하게 될까?


그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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