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대리 Jul 04. 2020

자화자찬, 제가 한번 해볼게요

- 최대리, 이번 포상에 최대리를 추천했어. 그러니까 보내준 양식에 맞춰서 이거 작성 하나만 해줘.


뜬금없는 관리팀 차장님의 메시지에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잠시 왜 나를?이라는 의구심이 들었다가 그래, 상 준다고 할 때 덥석 받아보자는 심정으로 감사하다는 답변을 남긴 후 차장님이 주신 추천서 양식을 펼쳐 들었다.


대략적인 인적사항을 기재하는 부분을 지나이 사람이 왜 수상을 해야 하는지를 기재하는 양식들이 덩그러니 빈 공간으로 남겨진 채 얼른 채워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일명 나는 이렇게 잘난 사람입니다 그러니 내가 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요에 대한 근거를 적어달라는 그 빈칸들을 마주하고는 한참을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모니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통은 본인이 아닌 추천하는 상사가 작성을 해주는 것이 관례라고는 했지만 몇 장이나 되는 양식들을 팀장님이나 그 누군가에게 대신 작성해달라고 선뜻 부탁을 하기는 애매해 보였다.


그래서 잠시 숨을 고르고는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사실 솔직한 심정으로 내가 추천받은 상은 내가 받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고 보기에는 스스로 생각해도 애매한 듯 보였고 특히 포상을 추천받은 영역은 내가 살짝 발을 담근 정도일 뿐 대부분의 업무는 결재자인 차장님이 담당하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팀의 차장님이 나를 추천한 건 우리 팀이 그 분야에 대한 상반기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 때문이었고 아마 그 영향으로 차장님은 나를 생각해내신 듯 보였다.


거기다 마침 내가 승진의 문턱에 걸려있다 보니 상이라는 의미가 누구보다 더 값질 것이라는 판단에 나를 더욱더 추천하신 듯 보였다.





"차장님.. 근데 이거 제가 추천받아도 되는 거예요?
이 분야면 저보다는 다른 직원이 더 맞을 것 같은데.."



하루 내내 비어져 있는 양식을 어떻게 적어낼까를 고민하던 나는 다음날 조심스러운 말투로 나를 추천하신 차장님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최대리가 적절한 것 같아서 추천한 거야.
그리고 뭐 다들 본인이 한건 더 크게 부풀려서 쓰고 안 한 것도 한 것처럼 그렇게 적당히 꾸며서들 내더라.
그냥 최대리도 부담 갖지 말고 잘 적어봐."


몇 장에 걸친 추천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차장님은 이미 알아차리기라도 하셨는지 나에게 부담도 고민도 가질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나에 대한 추천글을 작성하면서 나는 자꾸만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내가 한걸 부풀리기에는 너무 유난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안한걸 한 것처럼 꾸미기에는 왠지 양심에 찔렸다.


결국 인사팀장님을 통해 이전에 똑같은 상을 받은 사람들이 작성한 추천서를 얻어 비슷하게라도 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 언제나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고..

주변 팀원들과의 협력정신과 좋은 성품으로 선후배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는..


추천서에 있는 내용들을 읽으며 그 추천대상이 된 직원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은 틀렸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꼬박 이틀 가량이 걸렸다.


작성까지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가량이었지만 계속 붙잡고 있는다 해도 더 좋은 미사여구가 떠오르지도 업무에 방해가 될 것도 같았다.


솔직히 추천을 받았다는 얘기에 잠시 욕심이 났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추천서를 쓰는 내내 그 욕심은 나도 모르게 스스럼없이 마음속에서 내려졌다.

그저 되든 안되든 빠른 시일 안에  이 추천서에 마침표를 찍고 싶을 뿐이었다.


스스로를 추천하는 글을 이틀 가량 고민하면서 나는 나의 십여 년가량의 직장생활이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비록 이전 사람들이 쓴 추천서 내용을 내 생각대로 수정하고 덧대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왠지 모든 사람들의 추천사와 그저 다를 것이 없을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그냥 이걸 계기로 나의 직장생활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최대리는 너무 티를 안내.

열심히만 하지 말고 티 좀 내."


작년 말 회식자리에서 이전 팀장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셨다.


칭찬처럼 들릴 수도 있었겠지만 꽤나 뼈가 있는 조언이기도 했다.


아마도 요즘 같은 자기 PR시대에 입을 다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제대로 자화자찬.. 한번 해볼까 했는데..

다 작성된 추천서를 메신저로 전송하는 순간..

한숨부터 흘러나오는 건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쿨하지 못해 미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