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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Dec 10. 2020

다.. 딸기 때문이었다

"엄마 나 딸기가 좋아."

"엄마는 초콜릿 케이크 나는 딸기 케이크 만들어줄게."


다섯 살 딸내미는 쉴 새 없이 내 앞에서 조잘거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딸아이의 입에서 자주 오르락내리락하는 이름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딸기였다.


딸아이는 과일을 좋아했다.

딸아이를 가졌을 때 이런저런 과일들을 많이 먹 은덕분인지

과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했다.


그렇기에 딸기도 딸아이가 좋아하는 과일 중에 하나였다.





"영원아 뭐해?!"


아이와 가까운 등산로라도 산책할 요량으로 남편과 함께 아이의 손을 잡고 나섰다.


등산로 입구가 있는 공원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었지만 우린 자주 시장이 있는 길을 애용했다.

평소 시장을 갈 때면 수조 안에 물고기들이 가득한 생선가게가 딸아이의 시선을 멈추게 했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과일가게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는 한참을 서성거렸다.


"무슨 과일이 먹고 싶어?"


나의 질문에 아이는 그저 배시시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섯 살이 된 딸은 웬만해서는 뭔가를 사달라거나 먹고 싶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길거리에서 떼를 쓰거나 우는 일도 드물었다.


늘 마음속에는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쉽사리 내뱉지는 못하고 배시시 웃거나 가지고 싶은 것에 시선을 맞추기만 했다.


그런 딸이었기 때문인지 나는 평소 딸아이가 하는 말들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미리 챙겨서 사주곤 했다.


그럼 딸아이의 얼굴에는 금방 화색이 돌았고 그 물건을 사서 가는 내내 좋다는 표현을 연신 하곤 했다.


"딸기가 먹고 싶어??

영원이 딸기 좋아하잖아."


나의 말에 딸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아이의 반응에 우선 등산로를 산책하고 내려오는 길에 사주기로 약속부터 하고 곁눈질로 딸기의 가격표를 살폈다.


한팩에 만원.

비싸다는 건 알았지만 아직 완전한 제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스무 개 남짓한 딸기가 들어있는 작은 팩은 평소보다 비싼 느낌이었다.


딸아이의 손을 잡고 등산로를 향하는 내내 마음속으로 고민이 들었다.

맛있게 먹는 딸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당연히 사주는 게 맞는데 만원이라는 가격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그냥 딴 거 사주던가."


남편은 한팩에 만원이라는 가격에 다른 과일을 대신 사줘도 좋아할 거라며 얘기했지만 그래도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나는 그 먹음직스러운 커다란 딸기를 사서 들고 왔다.


오는 내내 딸아이는 딸기를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계속해서 집에 가자마자 딸기를 꼭 달라며 몇 번이나 반복해서 얘기했다.


고 작은 접시에 예쁘게 담긴 딸기를 내밀자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우물우물 입안 가득 딸기즙을 내뿜으며 씹어대는 딸아이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연말이 되고 또다시 인사철이 다가오자 마음속에 깊이 품어놓은 사직서가 다시 팔락거렸다.


예전처럼 승진이 안돼서 자존심이 상해서 회사가 싫어서가 아니라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너무 안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겨우 꾹꾹 누르고 있던 사직서의 얼굴이 고개를 내밀었다.


십여 년을 넘게 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어불성설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늘 생각해왔던 것이 오늘은 더 확고하게 느껴졌다.


"야 존버 모르냐?

애도 있는데 존버 해.

존버 하다 보면 좋은 일 온다."


아직도 마음이 힘들다는 나의 투정에 브런치에 몇번  언급하기도 했던 친한 팀장님이 존버라는 말로 위로를 대신했다.


"진짜 존나게 버티는 존버 말고요.. 

존중해서 버티는 존버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우스갯소리로 마음속에 숨겨놓은 진심을 털어놓자 팀장님은 애는 잘 크냐는 말로 에둘러 얘기를 돌리셨다.

그리고..그 순간 딸기를 맛있게 먹던 딸아이의 모습 떠올랐다.


만 원짜리 딸기를 행복한 얼굴로 우걱우걱 맛있게 넘기던 딸을 생각하니..

그래도 내가 존버라는 걸 하면서 여기서 버티고 있으니

 많이 고민하지 않고 아이의 입에 딸기를 넣어줄 수 있었던 것 아니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 다 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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