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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리 Sep 14. 2022

그때 그여자가 바로 나였다


코로나에, 임신과 출산때문에 시댁에 가지 않은것이 어언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차로 한두시간 정도에 갈  있는 거리라면 한번쯤 시도라도 해봤겠지만 차로도 평소 너다섯시간은 잡아야 하는 먼곳이었기에 코로나를 핑계로, 애를 핑계로 선뜻 나서기 힘든길이 되어버렸다.




"기차표 예약했어."


남편도 오랜만 본가로 가는 기차표 예약이었을것이다.

명절이면 기차표 예약이 풀리자마자 바로 매진이 되는탓에 늘 한번에 성공해본적이 없는 기차표였음에도 이번에는 단번에 4인석이나 되는 좌석의 예약성공했다.


"우리 기차에서 괜찮겠지?!"


예약에 성공한 남편도 아직 어린 두딸들을 데리고 가는길이 쉽지 않을것이라 생각한듯 여간 자신없는 얼굴이었다.


"어쩌겠어.. 고생한다 생각하고 가봐야지."


남편의 물음에 나 또한 괜찮을거야라는 위로의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출발하는 날, 캐리어를 가득 메운 짐들사이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간식거리들과 놀잇거리들을 챙겨든 우리는 한 이는 안고 한아이는 손을 잡아 끌며 고단한 기차길에 올랐다.




"이잉.."


간식으로도 더는 달래지지 않는 순간이 오자 나는 아기띠를 매고 둘째를 들쳐안기 시작했다.


아무리 어린 아기의 어쩔수없는 잠투정이라 해도 요즘같은 예민한 시기에는 누군가의 눈총세례를 받기 쉬운일이었기에 둘째 연금이의 울음이 터지려는 순간 나는 아이와 함께 객실 밖 기차 출입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토닥토닥

자라자라 제발 좀 자라.'


입에 공갈 젖꼭지를 물린 연금이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혼잣말로 자라자라를 수십번도 넘게 중얼거렸지만 아이의 눈은 좀처럼 감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안은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자 아기띠를 맨 허리는 아파오기 시작했고  에어컨이 약한 출입구의 열기때문인지 얼굴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객실문 창가로 눈을 돌린 순간 나는 몇년전, 기차안에서 본 그녀가 생각났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처럼 아이를 들처안고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던 그녀.


대충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초췌한 얼굴.

커다랗고 편한 원피스를 입은채 피곤한 얼굴로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있던 그녀를 보며 참 힘들겠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또..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결혼도 하고 싶었고 아이도 낳고 싶었던 내가 그때 그녀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되는 얘기였는데..

그때는 그냥 그녀처럼 고단한 모습의 육아가 아닌 뭔가 편안하고 우아한 모습의 육아가 가능할것이라고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힘들지?"


아이를 필사적으로 달래고 있는 나를 향해 남편이 안타까운듯 자신에게 아이를 넘기라며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견딜만해."


남편에게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 후 닫힌 객실 창문사이로 비친 내 모습은 딱 그때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화장기 없는 지친 얼굴에 대충 묶은 머리사이로 파마가 풀려버린 곱슬머리와 흰머리가 뒹굴고 있었고 몸매를 가늠할수 없는 펑퍼짐하고 긴 원피스 치마가 아이를 들고 안느라 어느새 꼬기작 꼬기작 거리고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과는 너무 대비되게 바로 객실창문 안쪽에는 완벽한 메이크업 스타일리쉬한 옷을 입은채 편안히 기차 좌석에 앉아 여유롭게 휴대폰 기사를 검색하는 또 다른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그녀도 나를 보며 생각하고 있을까?

저 여자처럼 되지 말아야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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