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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안 May 23. 2021

하여간 옛날 사람이야 우리 신랑

외롭더라도 씩씩하게. 홀로 살림하게 되더라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어김없이 돌아오는 주말. 이번 주도 무사히 네가 온다면, 나는 수요일부터 설레어 만사를 제치고 그때 할 일을 적을 거야. 등산부터 쇼핑, 미뤄둔 독서까지. 하지만 불행히도 금요일 저녁부터 몸이 무겁다. 평일에 뛰어든 고된 몸뚱이 덕에 이번 주도 보람찬 주말은 글렀다. 나는 이제 침대와 한 몸이 될지어다. 5일 치의 자아가 이틀 내내 찾아와 온몸을 짓누르니, 누워있는데도 눕고 싶다. 허나 피곤이 밀려드는 순간에도 활발히 움직이는 이가 있으니, 바로 위장. 아침 점심 저녁, 때 되면 울려대는 배꼽시계를 잠재우기 위해 온 가족이 고민에 휩싸인다. 무엇을 먹을지, 또 누가 요리를 할지. 그간 쌓인 서로의 피로가 존중받는 동시에 눈치 게임이 시작된다.      


“나는 피곤해서 잠이 더 필요해.”      

집안의 유일한 직장인인 내가 선수를 친다. 이 말은 당장 잠이 시급하지만, 그렇다고 끼니를 거를 만큼은 아니라는 뜻을 내포한다. 대신 감성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직장인의 노고. 한 마디로 ‘죄송하지만 저는 너무 피곤하기에 식사를 책임질 여유가 없습니다.’라는 의미다. 한편, 아버지는 몇 시간 째 안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시기를 따져보니 KLPGA 시즌. 퇴직 후, 유일한 낙이 된 골프 경기 중계 시간에는 아빠를 찾지 않는 것이 집안의 암묵적인 규칙이 되었다. 고로 마지막 남은 구성원인 엄마. 그가 마지못해 부엌으로 들어간다.     


“다들 아주 배고프단 소리 하기만 해 봐!”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부엌에서 시작된 이국적인 향내가 거실에 퍼져 방 안까지 스며든다. 알싸하면서도 톡 쏘는 듯한 특유의 향. 동시에 기름진 고기 냄새가 올라온다. 향신료와 고기의 조합. 이건 분명 카레다. 네모난 깍두기보다 좀 더 큰 크기로 숭덩숭덩 썰어진 감자, 양파. 그리고 당근이 카레 국물에 졸여진다. 고기와 채소가 모두 익어갈 즈음, 엄마만의 재료가 또 들어간다. 바로 토마토. 토마토는 짠맛을 중화시키기도 하지만, 국물의 양을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자박한 소스보단 국처럼 떠먹을 수 있는 카레를 선호하는 엄마답게 국물 카레를 완성한다.     



김치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는 소리가 들리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아빠와 내가 부엌에 들어간다. 이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나는 수저를 세팅하고 아빠는 물과 반찬을 식탁으로 나른다. 엄마의 찌릿한 눈빛을 피해 최대한 빠르게, 엄마의 동선과 겹치지 않도록 스무스하게.     


“근데, 갑자기 웬 카레?”      

카레 국물에 찬밥을 넣고 비비던 엄마가 질문에 대답한다.


“국물 없으면 밥도 잘 못 드시는 느이 아빠 때문이지.” 

“점심때 비빔밥 먹을 때도 밥에 토마토 넣어 먹는 거 봤지? 귀찮아서 국 안 만들었더니 말없이 토마토 넣잖아. 목멘다고.” 

“으휴, 하여간 옛날 사람이야, 우리 신랑.”     


요리를 못하는 아버지는 차마 자신이 국을 끓일 순 없으니, 눈치만 보셨나 보다. 귀찮은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점심을 준비하는 엄마에게 무언가 더 요구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역시나 그런 아빠를 간파했다. 점심을 먹는 동안 밥 먹는 속도가 점점 늦어지는 남편을 보며,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밥하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해 눈치만 보고 있는 아빠의 마음을.     



아빠는 요즘 엄마가 요리할 때면, 식사 준비를 도와주신다. 요리를 배우는 대신,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아내의 수고를 덜어 주는 것으로 타협을 본 듯했다. 채소 씻기, 나물 정리, 마늘 빻기, 고기 굽기, 식사 후엔 설거지까지. 퇴직 후, 엄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빠는 조금씩 엄마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책임져온 가족의 평화를, 우리가 누린 편의를 깨달았다고.      



사실, 아빠의 반성 속엔 엄마의 숨은 노력이 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엄마는 줄곧 아빠에게 살림을 알려주고 있었다. 자녀가 둘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건 결국 서로이니. 둘이서도 잘 살아야 하고, 혼자가 되더라도 마지막까지 잘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아빠의 일상 곳곳에서 느낄 자신의 부재를 걱정했다. 혹시 모를 자녀가 안게 될 부양에 대한 미안함에 더해 때론 자신보다 더 여린 아빠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있던 것이다. 외롭더라도 씩씩하게. 홀로 살림하게 되더라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엄마의 일상을 아빠의 삶에 넣는 중이다. 그렇게 딸이 직장에 있는 동안, 두 분은 따로 또 같이 노후를 준비하고 계셨다.      



카레가 조금 남게 되자 엄마는 라면 사리를 삶았다. 걸쭉한 카레 소스에 면을 비벼 먹는 것 또한 카레를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다. 밥으로 충분히 배를  채운 나는, 사리 추가 대신 카레 라면을 드시는 부모님을 지켜봤다. 아빠는 엄마가 먹을 양을 계산해 그릇에 덜어 주었고,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김치를 좀 더 내어왔다.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짝꿍, 나의 남편 나의 아내. 반려자가 없을 나의 삶보다 자신이 없을 상대의 삶을 더 안쓰러워하는 부모님의 인생에 언젠가의 일은 되도록 천천히, 아주 느리게 찾아왔으면 좋겠다. 나눠 드시는 라면처럼 길게 길게, 오래도록 서로 사랑하며 건강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이 못난 딸내미도 어서 독립 준비를... 

나야말로 부모님이 안 계신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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