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 보이저와 나

뒷걸음치며 들어가는 미래

by 심원

초등학교 1학년 때, 2층집에 세 들어 살던 우리 가족은 어느 여름날, 옥상에서 수박 파티를 했다. 옥상에 놓인 평상에 누워 올려다본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하늘에서 반짝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인공위성인지 비행기인지를 두고 말다툼을 벌였다. 아마 인공위성으로 결론이 났던 것 같다. 그런데 인공위성은 맨눈에 보일 리 없으므로 우리는 오답에 도달하기 위해 헛짓거리를 한 셈이었다.


나는 한참 후에야, 내가 태어난 1977년에 보이저 호가 발사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꽤 오랫동안 나는 이 우연의 일치에 관해서 노래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다. 보이저는 태양계 외부 탐사라는 낭만적이고 원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1977년 9월 5일 발사되어 지금도 비행 중이다. 그러나 아직 출발조차 못한 나는 지구의 중력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50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대비는 상당히 그럴듯했다.


사춘기 이후부터 나는 허무주의적 태도를 유지해 왔다. 어느 정도는 지적 허세도 있었고,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이탈을 시작한 것도 한몫 거들었다. 나는 세상에 주어진 의미나 목적이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삶의 의미나 목적 대신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대학 입학을 목표로 삼았다. 결국,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지만 그 기쁨은 2시간이 채 가지 않았다. 이 괴상한 경험은 나에게 목표 달성이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그때부터 허무주의적 태도는 나에게 하나의 정서가 되었다.


모든 인간은 찰나의 순간 우연히, 단 한번 깜빡이고 마는 하찮은 존재다. 우리는 짧고 하찮은 삶을 버티기 위해서 삶의 의미나 목적 같은 것들을 찾는 시늉을 하지만 대부분 그냥 살던 대로 살다가 관 속으로 들어간다. ‘1977, 보이저와 나’는 이 허무주의적 사실에 관한 인식에 관한 노래이다. 보이저처럼 된다는 것은 도전적이고 원대한 목표를 이루는 삶을 산다는 뜻이 아니라 결국 사라지는 존재임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나와 당신과 보이저는 결국 우주의 먼지로 사라진다. 우리는 모두 열심히 뒷걸음질 치며 미래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뒷걸음치며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가사 중에서 “뒷걸음치며 미래로 들어가”라는 표현은 폴 발레리의 “우리는 뒷걸음질로 미래에 들어간다”(‘폴 발레리의 문장들’에서)를 차용한 것임을 밝힌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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