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오르지 못한 날개의 기억
중학교 때, 전교 석차가 학교 진입로에 붙어있었다. 내 이름도 3년 내내 그곳에 있었다. 새로운 성적표가 붙는 날에는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지만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내 이름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뿌듯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경쟁에서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보다 앞서가는 학생들에 대한 질투가 생길 때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주변에서는 모두 ‘잘하니까 더 잘해라’라는 식으로 격려했다. 내 기억에 누구도 경쟁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에게 공부는 경험치를 얻어 레벨을 올리는 RPG 게임일 뿐이었다. 공부 자체가 아니라 레벨을 올리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중학교 시절 유일한 즐거움은 농구와 음악이었다. 공부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거의 농구를 하거나 음악을 들었다.
중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한 나는 1회 신입생을 뽑았던 전남 외고와 비평준화 일반고였던 목포고 사이에서 갈등했다. 결국 신생 외고의 불확실한 입시 실적 나는 목포고를 택했다. 지역 유일의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녔던 나는 남자아이들만 있는 교실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곳은 말 그대로 야만인들이 사는 정글 같았다. 나는 남녀공학이었던 외고를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고1 첫 중간고사는 후, 교문에 붙어 있던 성적표에 내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충격으로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입학 성적이 좋아서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나는 절치부심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다른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에 썼다. 특히 수학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수포자가 되었다. 나는 서울대가 목표였지만, 수학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본고사라는, 역사상 가장 악랄했지만, 나를 위해 하늘이 준비한 시험 제도 덕분에 나는 수학 문제를 1문제밖에 풀지 못했지만 서울대에 합격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행복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이젠 다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길고도 긴 방황이 시작되었다.
1학년 1학기 학점은 4.3점 만점에 0.8점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업 자체를 듣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난생 처음으로 백지 시험지를 제출했다. 돌아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통쾌한 일이었다. 주변사람들은 선동열 방어율보다 낮은 학점이라며 놀렸지만 나에게는 그 말이 칭찬으로 들렸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군대가 가기 전까지 나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지만 공부만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일종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대학 시절 내가 가장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했던 활동은 노래패와 락밴드 활동이었다.
나는 대학 생활 내내, 음악을 하려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음악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읽거나,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밤새도록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술을 마셨다.
많은 일이 일어났으나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그 시절의 어느 순간에도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중고등학교 6년을 입시 경쟁에 갈아 넣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의미보다는 눈앞의 성적을 위해서 강박적으로 노력했고, 그 끝에 그대로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거라 믿었지만, 남은 것은 시답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나는 알을 깨기는커녕 알째로 구워삶어진 훈제 계란 같은 처지였다.
한국 교육의 모습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입시 제도와 시험 방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연고성서한이중경외시건동홍숙’으로 이어지는 인서울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학생들에게 여전히 가장 중요한 목표다. 내가 수업을 하고 있는 대치동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아이들은 자기보다 못하던 아이가 자기보다 빨리 영어나 수학 레벨 테스트에 통과한다는 사실에 고통받는다. 초등학생이 중학교, 심지어 고등학교 수학을 선행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공부했는지 들려준다.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가능하면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비교하지는 말라고 말해준다. 내 학창 시절 아무도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 하는 마음에, 경쟁하고 비교하려면 어제의 자신과 하라는 뻔한 조언도 해준다.
<날아올라>는 시험에 지친 아이들을 보고 만든 곡이다. 정확히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밴드를 했던 기타리스트 김성배와 연습실에 녹음했던 원곡을 기초로 만들었다. 노래를 만들면서 입시 지옥을 견뎠던 내 모습과 입시 지옥의 초입에 선 아이들이 자꾸 겹쳐 보여 우울했다.
얼마 전에 수업 시간에 권영상의 ‘그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라는 동시를 읽었다. 올챙이가 엄마에게 자기는 왜 물고기도 안 되고, 들판도 못 달리고, 황소처럼 무거운 짐도 못 옮기고 고작 물밖으로 깡충 뛰는 것밖에 못하냐고 푸념한다. 그러자 엄마 개구리는 그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라고 말해준다.
<날아올라>가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높이 올라가라는 의미로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날아올라>는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날마다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조언이자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다. 날아오르려는 시도,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