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꼬박꼬박 먹는 것도 큰 노력이며 칭찬받을 일이다.
패닉어택을 겪고 우울과 무기력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정신과에서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매일매일 같은시간에 복용하기 시작한 지 약 세 달이 조금 안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세 달간 느낀 항우울제의 효과와 나의 변화에 대해 기록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요약하자면,
항우울제는 넘어져 일어날 힘도 없는 날 일으켜 세워줬지만,
다시 달리게까지 해주지는 않았다.
겨우 일으킨 몸을 한 걸음씩 떼게 한 것은 결국,
두려움을 마주 하기 위해 질끈 감은 내 눈과,
내 손을 잡아준 다른 이들의 도움이었다.
지난 세 달간 내가 복용해 온 항우울제는 다음과 같다.
프로작 (Prozac)이라는 플루옥세틴 (fluoxetine) 성분의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 (SSRI)를 첫 주에는 10mg으로 시작하여 20mg로 증량하여 복용해 왔고.
두 달 차부터는 웰부트린 (Wellbutrin)이라는 부프로피온 (Bupropion) 성분의 도파민 재흡수 억제제 (NDRI) 약을 150mg씩 복용해 왔다.
두 약 모두 항우울제이지만 작용기전이 다르다.
프로작은 체내의 세로토닌 농도를 높이게 하는 반면, 웰부트린은 체내의 도파민 농도를 높인다.
두 항우울제의 공통점은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고 2-4주는 기다려야 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프로작만 복용한 첫 달에 느낀 변화는
생각과 감정의 회로의 한가닥이 차단된 느낌이었는데,
평소와 비교했을 때 불안을 야기할만한 '생각'이
불안한 '감정'과 불안에 의한 '몸의 증상' (두근거림, 손떨림, 가빠지는 호흡)으로 잘 이어지지 않았다.
불안할만한 상황과 생각에 무뎌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난 무기력함을 느끼며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렇게 두 달 차부터는 무기력 개선을 도와줄 웰부트린을 추가해서 복용하기 시작했다.
웰부트린을 복용하기 시작한 후의 변화는 기력의 회복이었는데,
낮잠을 자는 빈도가 확실히 줄어들고 몸을 움직일 힘이 난다고 느꼈다.
안정과 각성이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간다고 느꼈다.
항우울제 복용 후 감정적 & 신체적 변화를 체감했지만,
내 생각을 지배하는 인지적인 부분은 스스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패닉어택의 매우 불쾌한 경험은 내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정말이지 날 지독하게도 괴롭게 했다.
패닉어택을 또 겪을 것만 같은 두려움(예기불안)에 마비가 되어버린 듯 많은 것들을 하지 못했다.
논문을 쓰다 패닉어택을 겪었기에, 논문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엄습해 일을 손에 잡지 못했고,
패닉어택과 유사한 신체적 증상 (두근거림, 손떨림,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커피를 마시는 것과 격한 운동도 할 수 없었다.
약을 먹고 증상이 나아지는데도 계속 징징대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기까지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끔찍한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고자,
매주 한 차례씩 심리상담을 병행하며 부정적인 생각은 비워내고 상황을 다르게 보려고 애를 썼다.
패닉어택은 몸이 날 보호하고자 하는 증상일 뿐 그 자체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키려 노력했고,
특히, 뭐 하나라도 했을 때 내 스스로를 다독여보려고 애를 썼다.
약을 꼬박꼬박 먹는 것만으로도 나아지려고 노력한다며 날 칭찬했고,
집을 나와 산책을 하면 몸을 움직였다며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토닥였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기가 두려울 때는 두려움을 메모장에 털어놨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웠지만 믿을 수 있는 선배에게 용기를 내어 나의 힘듦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늘 고마운 아내에게 안기며 위로를 얻었다.
침대와 집을 벗어나 카페에 앉아 하루에 한두 시간,
애초에 불안과 우울을 증폭시켰던 내 정체된 졸업논문을 꺼내어
잘쓰자는 욕심은 내다버리고 엉성하기 그지없는 몇 줄씩 내뱉는 것만으로도 잘했다며 날 다독여보려 노력했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아침을 마주하는 것이 덜 끔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