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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철단골 Oct 05. 2019

마녀_5

신규사업

브러시 직원들은 늘어갔다. 20명이 될 때 구성은, 지수, 수진 외에 4명의 기획MD, 2명의 피팅 모델 겸 디자이너, 은진 외에 4명의 웹디자이너 및 프로그래머, 2명의 주문 및 배송 관리, 2명의 인사 및 총무, 1명의 홍보, 2명의 영업사원, 그리고 이지가지 잡다한 일을 하는 막내가 있었다. 지수는 인사 총무 직원을 뽑을 때 처음으로 '내가 뭔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직원들 관리를 위해 직원을 뽑다니, 첫 월급을 줄 때는 솔직히, 아주 조금,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브러시 의류는 나름 차별화된 포인트를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어깨 절개선이 어깨보다 살짝 밑으로 떨어지고, 체형의 단점을 잘 가려주지만, 그렇다고 임부복처럼 풍성한 옷은 아니었다. 그 이상한 경계를 잘 파악하는 것이 지수의 안목이었고, 지수 밑으로 들어온 기획 MD들은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수의 안목을 잘 반영한 옷들을 잘도 바잉하거나, 디자인했다.


정작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건 수진이었는데, 수진은 되려 테크니컬한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지수와 적당한 균형을 이루었다. 그래도 중간 보고라서 직원들은 수진에게 1차 컨펌을 득해야 했는데, 새로 들어오는 직원이 있으면 수진은 마르니와 라프시몬스 컬렉션북을 쥐어줬다. 긴가민가 할 때는 이 두 컬렉션을 보면 된다고 했다. 중저가 브랜드에서 일한 경험, 브러시의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완벽히 파악한 수진은 패션에 대한 자신의 이상향보다는 상업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런 상황에서 은진의 웹팀의 인원도 늘어나 은진은 세명의 팀을 거느렸다. 하지만 아무래도 회사는 기획 MD들을 위주로 돌아갔다. 기획 MD들이 옷을 디자인하고, 사진을 찍으면, 그걸 받아서 일하는 에이전트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원래 다녔던 화장품 회사에서도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은진은 수진과 같은 친구인데, 주도적으로 회의를 리드하는 수진과 지수의 모습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든건 아니었다. 포털을 통해서만 판매하던 브러시의 전문 샵을 내자는 아이디어는 은진이 개진했고, 그러면서 은진의 팀도 커졌다. 그 때 새로운 동기부여를 느꼈으나,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런 은진에게 화장품 사업으로 확장은 단비와 같았다. 은진이 두고 있는 직원들로 이미 기본 운영은 되고 있던 상태였다. 지수는 모든 일을 은진, 수진과 함께 상담했다. 마치 서로 끈끈해야 오래 가는 아이돌 그룹처럼, 자기도 겸손한 마음으로, 이 둘을 놓지 말아야 이 회사가 오래 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화장품 사업을 하기로 한 날 지수는 은진을 따로 불렀다.


"은진아, 화장품 사업 시작하려고 하는데, 알다시피 우리 회사 직원들이 화장품 전문가가 없잖아. 풍문으로 들어본 적도 없고. 그래서 상품 개발일을 네가 맡아줬으면 하는데, 어때?"

"지금 우리 팀은 사실 급한 오퍼레이션들은 팀원들로 대충 굴러가게는 만들어 놨어. 나는 가이드 주는 역할이고. 물리적인 시간을 묻는거라면.. 할 수는 있을 것 같아. 나도 사실 재밌을 것 같고. 그런데 네가 알다시피 내가 화장품 회사에 있을 때도 상품 개발을 한 건 아니라서."

"그렇지, 그래도 그나마 너가 제일 잘 아는거고. 어찌 될지도 모르는 사업인데, 덜컥 사람 뽑는 것보다는 일단 너가 기획하고 개발 진행해주면서 필요한 사람을 뽑아가는 그림으로 하면 어떨까? 이제 우리 회사도 사대보험 다 해줘야 되는 규모라서, 좀 조심스럽기도 하단 말이지."

"그래, 일단 해야지, 해보면서 이런 저런 사람이 필요하면 그 때 다시 얘기하자."

"어차피 이 일 시작하면 처음인만큼, 의류보다는 뷰티 쪽으로 더 많이 손이 갈 거고, 나도 더 관여하게 될 것 같아."


알겠노라고 했지만, 은진은 내심 좋았다. 회사가 패션과 뷰티 두 개 사업을 하고, 수진과 자기가 두개 사업을 리드하는 사업부장 같은 구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예전 직장 동료 상품 개발자들과 연락을 했다. 은진은 매우 협조적인 편이었기 때문에, 인간 관계가 좋았다. 더구나 화장품 회사에 있다 나가서 온라인 패션 브랜드로 잘 되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전 직장 동료들은 은진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싶어했다. 직장인이 너무 행복한 사람은 없는지라, 자기들도 혹시나 사업으로 풀릴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무슨 노하우라도 있을까 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전 직장 친구들을 만나서 회사의 새로운 사업 방향성을 얘기해주며, ODM사들 연락처를 받았다. 은진이 일했던 화장품 회사는 1,000억원대 정도 매출을 하는 회사여서, ODM사들도 '지인의 지인'이라는 개념으로 친절하고 싹싹하게 대했다. 그 무렵, 뷰티 인플루언서들이 패션을,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뷰티를 시작하는 것도 흔한 일이어서, 제조사들 입장에서야 어느 브랜드라도 터져 주면 감사할 일이었다. 제조사들 중에서 그래도 너무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 노하우가 있는 회사가 필요했다. 너무 규모가 크면 브러시가 고객으로서 가치가 떨어지고, 너무 규모가 작으면 품질이 우려가 되었다. 이런 저런 것들을 고려해서 은진이 먼저 컨택한 제조사는 코스모인터였다.


코스모인터에서 브러시를 담당하는 사람은 김종찬 과장이었다. 친구들에게 조언을 받긴 했지만, 어쨌든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매우 막연한 일이어서, 일단 다짜고짜 미팅 부터 잡았다. 은진은 담백했다. 자신의 회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쇼핑몰에서 같이 팔 뷰티 제품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종찬 과장은 평범한 학벌의 화학과를 졸업했지만, 뛰어난 영업맨이었다. 은진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지수의 인스타그램을 보더니, 출시 한달에서 두달 전쯤부터는 개발하고 있는 제품을 샘플부터 사용 후기까지 포스팅해주는 것도 좋은 마케팅 방안이라고 까지 제언했다. 은진에게 패션 브랜드이고, 브러시라는 이름도 있고 하니, 메이크업과 클렌징 제품 위주로 출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은진은 김종찬 과장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세련되진 않지만 갖춰진 복장이었고, 말투 하나 하나에서 회사와 자신을 대하는 정성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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