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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철단골 Oct 16. 2019

마녀_11

생활균형

준협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수진의 퇴근 시간은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황상무가 뷰티 브랜드 출신이기도 하고, 의류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니어서, 수진은 업무상 크게 겹치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 날은 약손명가에서 디톡스 마사지 예약이 있었다. 평소처럼 퇴근하려는데 황상무가 다가 왔다.


- 수진 팀장님, 퇴근하세요?

- 네, 오늘 마사지가 있어서요.

- 어머, 마사지 너무 좋다. 프랑스에 있을 때는 잊고 있었는데, 나도 마사지 받아야겠네.

- 네, 하실 말씀이라도..?

- 아니,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미팅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 아 네, 저희는 패션 기획 쪽이라서, 기획하고 넘기면 지수 대표님이 인스타에 올려주는 것 외에는 딱히 하는게 없어서요. 홍보 쪽에서 협찬하는 것도 사실 거의 진행하지 않구요. 에디터들은 대부분 브랜드 옷을 좋아하다보니, 저희에게 맞는 꼭지가 많지는 않았어요.

- 아니 아니, 제가 디자인도 같이 봤으면 해서요.

- 디.. 자인을요?

- 네, 그럼요. 제가 CMO잖아요. CMO가 우리 브랜드에서 뭐가 나오는지 모르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죠.

- 아 네, 그러시면 FW에 나올 거 한 번 보여드릴게요.

- 나올 거..?

- 네, 대부분은 거의 발주가 들어가는 타이밍입니다.

- 아니, 그럼 마케팅 본부에서는 상품 기획 다 된 걸 마케팅만 하는 건가요?

- 말씀드린 것처럼 지수 대표님 인스타에 올리는 정도였는데요.

- 저희가 대행사도 아니고 같은 회산데 처음부터 인볼브가 되지 않으면 매우 힘들어요.

- 지금까지 업무 방식은 그랬는데요, 새로운 프로세스가 필요하시다면 같이 논의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정말 죄송한데, 지금 출발해야 해서, 내일 얘기해도 될까요?

- 인비테이션 보내주세요.

- 네?

- 그룹웨어 인비테이션 부탁해요. 아니 회사가 작긴 하지만 어씨 하나가 없어서 일정 관리도 제가 다 해야 해서요.

- 네, 일단 내일 저도 시간 보고 연락 드릴게요.


수진은 서둘러 가방을 들고 나오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곱씹을수록 기분이 좋지 않았다. 딱히 공격적인 말투는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는 듯한 말투가 싫었다. 사회 초년기에 패션 회사에 다닐 때, 꼭 그런 식으로 말하는 유관부서 사람이 생각났다. 그냥 이야기해도 되는데, 왜 이렇게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태도인듯한 느낌이 나는 걸까.


자동차 시동을 걸면서 은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응, 퇴근 안했지?

- 아직 정리할 게 좀 있어. 다음 주에 FW 컬렉션 최종 컨펌 해야 해서 내용 좀 정리하고 있어.

- 아니 나 방금 황상무랑 얘기 했는데, 황상무랑 일 얘기 많이 했어?

- 아무래도 지수가 원한게 뷰티 쪽에 더 많은 인풋을 주라고 한 걸테니까, 같이 회의 몇 번 했지.

- 어땠어?

- 무슨 일 있었어?

- 아니, 방금 나한테, 패션 디자인을 보고하라는 식으로 얘기하는거야. 근데 그건 좀 아니지 않냐? 우리는 협력 부서지, 황상무가 내 상사는 아니잖아.

- 상사는 아니지.

- 자기네 부서가 마케팅 본부라질 않나, 자기가 CMO라질 않나. 아니, 우리 회사 스무명 꼴랑 있는데 무슨 CMO야. 그럼 우리는 상품 개발 하니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냐?

- 무슨 느낌인진 알 것 같애. 근데 처음이니까, 그렇다고 크게 책잡힐 말 한거 아니면 좀 두고 보자.

- 두고 보긴 뭘 봐. 할꺼면 초장에 잡아야지. 아니 나 결혼준비 때문에 안그래도 너랑 지수한테 미안한데, 일 도와주라고 뽑아놨더니, 상전 노릇할라고 하는 것 같애. 좀 이상해.

- 그래,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건 아니야. 일단 오늘 약손명가 가는거지? 마사지 잘 받고 일단 쉬어. 결혼 준비 하는데 좋은 생각만 해야지.

- 으이그 물러 터져가지고. 내가 두고 볼 거야. 이상하면 바로 지수랑 같이 얘기하자. 우리가 지수한테 월급 받고 있지만 창립 멤번데 굳이 우리 회사나 다름 없는데서 월급 주는데 뭔가 단단히 착각한거 같애.

- 알았어, 무슨 소린지.


수진은 전화를 끊어도 분이 가시지 않았다. 이상하게 당시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생각할 수록 열 받는 일이었다. 당시에 화가 나지 않았던 이유는 은진의 말처럼 딱히 크게 책잡힐 만한 말을 하지는 않아서였다. 그래서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났고 황상무가 얄미웠다. 디톡스 마사지는 팔 밑살과 뱃살을 아주 세게 눌러서 아팠다. 평소 같으면 몇 번이나 안마사에게 살살 해달라고 했을텐데 그 날따라 아프지 않았다. 내일 미팅할 때 시비라도 걸어봐라 어떻게 대답해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니 통증도 없었다. 마사지를 다 받으니 안마사가 정리하며 말했다.


- 오늘따라 되게 잘 참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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