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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행고래 Apr 03. 2016

그녀의 문자

기억의 편린, 그때 우리는

축하해


 봄비가 내리는 고요한 저녁, '띵' 휴대폰 소리에 스르륵 감기던 눈을 번쩍 떴다.

미안하고 보고싶은 그녀, S양의 문자다.


"나 지금 취리히 가는 비행기 안이야, 도착하면 사진 보낼게."

"응 정말 축하해^^ 조심히 갔다와~"


 그녀는 어제 결혼을 하였다. 그동안 자주 보지는 못했어도 그녀의 결혼식은 꼭 가고 싶었는데 회사때문에 축의금만 보냈더랬다. 카톡으로 받은 결혼식 사진 속에는 수줍어하는, 하지만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그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는 그녀가 보였다. 익숙한 S양과 B양의 모습에 문득 그때의 우리가 떠올랐다. 나는 책장을 뒤져 2010년의 다이어리를 꺼냈다.



 S양과 B양은 캐나다에서 만난 인연이다. 난 2010년 휴학을 하고 캐나다로 어학연수길에 올랐었다. 그때 어학원에서 그녀들을 만났다. 처음 만났는데도 어색함이 없이 잘 지냈고 우린 그 후로 어딜가든 함께 붙어있게 되었다. 한동안 학원-도서관-홈스테이 생활을 전전했던 나에게 있어서 그녀들은 큰 의미였다. 보기보다 겁도 많고 숫기없는 나에게 그녀들은 새로운 친구들도 소개시켜주었고 예쁜 곳도 구경시켜주었다. 또한 맛집탐방이 우리 캐나다생활의 큰 즐거움이었다. 스탠리파크로 가는 길에 위치한 '킨타로' 라는 일본라멘전문점, 삼겹살 덮밥이 일품이었던 'Donburiya', 싼 커피와 도넛이 맛있었던 '팀 하튼' 카페...


캐나다의 모든 추억이 담긴 나의 다이어리


 그러다 홈스테이 계약이 끝나갈 무렵, 우연치 않게 S양과 자취를 하게 되었다. 우리 둘다 태어나서 처음해보는 자취생활이었지만 우린 걱정보단 설레임이 앞섰다. 맛나는 음식도 해먹고 일주일에 한 번씩 대청소도 하고 밤 늦게까지 수다도 떨고 하루하루가 즐거웠었다. 웃음많고 장난끼많은 그리고 연애한 번 안해본 여자 둘이 모여 있으니 안봐도 비디오지.


그런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여 어엿한 가정을 가졌다. 항상 우린 철없이 그때의 마음으로 살아갈 줄 알았는데 둘 다 어른이 되는 과정을 밟아 나갔다. 오늘 그녀의 문자가 아니었다면 난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듯 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 TV를 보며 그리고 월요일이라는 크나큰 절망감을 안고 잠에 들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들여다 본 나의 2010년도 다이어리 속에는 장난기많고 철없던, 그러나 어찌보면 참 부러운 나의 그때가 있었다.


 시간에 쫓기며 또 많은 의무적인 것들에 쫓겨 우리는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을 단숨에 살아냈다. 그 다음 6년은 또 얼마나 빠르게 흘러갈까.

 한번씩 캐나다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우리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쉬운 모든 것을 기억 저편으로 남겨두고 현실을 살아간다. 더욱더 열심히.


그때의 소중한 추억만큼 더 소중한 것들이 지금 내옆에 있기에.



오늘처럼 한번씩 과거의 추억에 갇혀 아련할 때가 있어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때의 많은 것들이 미련과 후회가 되어 마음속을 콕콕 찌릅니다. 하지만 과거에만 머물러있을 순 없겠죠.


하루하루 내 걱정만 하는 가족

내가 걸어가야만 하는 길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

나의 등 뒤에서 우산이 되어 지켜주는 사랑하는 그사람


과거만큼이나 아니 과거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우리 옆에 있으니 힘내서 다시 일어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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