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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행고래 May 22. 2016

다시 사랑을 시작하던 날,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사랑을 하던 어느 푸르른 계절에

보고싶어

 오늘은 내가 속해있는 봉사동호회에서 시립요양원으로 봉사를 가는 날이었다. 난 몇명의 동호회 사람들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1층의 노인분들보다 몸이 더 불편하거나 치매가 진행되고 있는 노인분들이 있는 생활관이었다. 내가 올라가자마자 한 할머님이 날 붙잡고 서럽게 우셨다. 난 울고있는 할머님을 안아드렸다.


 "봉사자님, 오늘은 아무것도 안해도 되시니 이 할머님만 1:1로 잘 보살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요양 보호사님이 나에게 간곡히 부탁하는거 보니 오늘은 꽤나 힘든 봉사가 될 것 같았다. 할머님은 치매가 많이 진행중이셔서 한 시도 가만히 있지않고 이리저리를 돌아다니셨다. 특히 이 방 저 방에 들어가 이불을 정리하고 물건을 재배치 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남의 방에 들어와 남의 물건을 만지는 것이니 적잖은 미움을 받는 분이셨다. 그리고 할머님은 틈만나면 우셨다. 그것도 아주 서럽게 말이다.


 "할머니, 왜 우세요?"

 "엉~엉~~보고싶어, 엄마가 보고싶어."


 할머니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눈물을 훔치는 여인이 아닌, 마치 사람이 북적거리는 시장에서 엄마의 손을 놓쳐버린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우셨다.


 '난 왜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날까?'

 할머니의 우는 모습에 난 두 달전 새벽, 갑자기 열이 40도 가까이 오른 내 몸을 밤새도록 시원한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던 엄마가 떠올라서, 그리고 '아이고 내 새끼가 아파서 어쩌나'라는 엄마의 말에 숨죽여 울던 내 모습이 떠올라 코 끝이 찡해졌다.


 "할머니, 왜 우세요. 할머니가 우니깐 저도 눈물나잖아요."

 난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드리고 함께 손을 잡고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많은, 하지만 깊지 않은 이야기를 하였다. 봉사가 끝날 때 까지 할머니는 정확히 네 번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우셨고, 난 할머니가 엄마 생각이 나 눈물을 보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나지 않록 최대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럴때마다 할머니는 흐르려던 눈물을 금방 멈추고 묵묵히 나를 따라오셨다.



 봉사가 끝나고 후배 조군의 차를 타고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우리는 길을 잘못들어 빙빙 둘러서 가게 되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차도 많이 막혔다. 난 푸른 빛과 뜨거운 햇살로 가득한 창밖을 바라보며, 음질 좋은 후배차에서 흘러나오는 슬픈 노래들을 들으며 머릿속으로는 할머니의 우는 모습을 생각했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보고싶은 건 당연한데, 엄마가 생각나는 건 당연한데 왜 억지로 할머니의 기억속에서 그리운 사람을 난 왜 지우려고 애썼을까? 단지 나도 똑같이 슬퍼서? 울면 시끄러우니까?


어떻게 보면 그녀도 얼굴에 새겨진 짙고 깊은 주름살만큼이나 힘든 삶 속에서 남편과 자식들을 챙기며 살아왔을 것이고, 결국 삶의 끝자락에서 치매라는 병으로 모든 것이 기억에서 희미해졌을 때 더욱 또렷히 생각나는 것이 그녀와 같은 삶을 살아갔던 엄마이지 않을까.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엄마를 기억하는 순간조차 내가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밥 먹고 바로 가야지, 영화보러 가야돼."

 신호를 기다리던 조군이 말했다.

 "영화?"

 "응! 오늘은 엄마랑 데이트 할꺼야, 영화'곡성' 보려고."

 "그거 호불호가 꽤 나뉘던데.."

 "알어, 엄마가 되게 그 영화 보고 싶어해서."

 "어머니 데리고 장미축제도 가봐."

 "응, 안그래도 오늘 가려고 했는데, 영화보고 하면 많이 늦어질까봐."


 그의 말에 '사실 어제 우리 엄마도 나에게 장미축제 가자고 했는데, 내가 귀찮아서 안갔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항상 느껴왔던 거지만 오늘 그의 마음이 더욱더 예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모든 것이 나보다 어른같은, 오빠같은 그와는 다른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친구랑 여행가는 계획은 즐겁게 짜면서 어제 엄마가 장미축제가자고 말했을 때 귀찮아하는 내 모습 위로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무서운 영화를 보고 있을 조군을 생각하니 마음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 게 언제였더라?"



 날씨가 너무 청아해 걷고 싶었다. 오늘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랑을 하고 있었다. 새롭지도 않고, 설레지도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그런 사랑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집에 있는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

 "고스톱 게임 한 판 치고 있어."

 "나랑 드라이브 하러 갈까?"

 "좋지~"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어디든 좋아."



난 그렇게 아름다운 계절의 한 가운데에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항상 가까이 있어서 그리고 계속 내 옆에 있을 것만 같아서, 신경쓰지도 않았던 사람이 누군가에겐 애처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자신 스스로가 너무 바보같아집니다.


지금부터라도 사랑할테니 그냥, 그냥 늦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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