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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Oct 15. 2021

Photo by Daniele Levis Pelusi on Unsplash



들이마신다. 공기가 몸으로 들어와 폐에 가득 차는 것이 느껴진다. 잠시 멈춘다. 손으로 입이나 코를 막을 필요는 없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 멈추려고 하면 멈출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내뱉는다. 공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바람, 이라는 말과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숨을 쉰다는 것은 나의 의지가 꼭 필요한 일은 아니다. 물론 의지를 통해 조절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필수는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혹은 숨을 쉬고 있다는 자각이 없어도 나는 숨을 쉰다. 그래야만 한다.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일. 하지만 최근의 세상은 숨을 쉬며 사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숨을 들이 마쉬면 필터를 거쳐 들어오는 공기가 있고, 그 공기는 내가 그 동안 마셔온 공기보다 아주 미세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닌 애매한 정도의 희박함을 가지고 가슴을 채운다. 상쾌하지 않다는 뜻이다. 먼지가 섞여있는 것은, 이제 좀 어쩔 수 없는 기분이 되고 말았다. 그것마저 얘기하기 시작하면 숨을 쉬는 것에 담겨진 스트레스가 너무 뾰족해져 버린다. 그저, 당장의 것에만 집중해도 충분히 답답하다.

들숨만 그런건 아니다, 날숨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살면서 내 호흡을 한 번 되새김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오랫동안 겪을 일이 또있을까. 내뱉은 숨이 (이것도 사실은 미세하겠지만) 일부 돌아오며 그 좁은 공간을 멤돈다. 나는 느낀다. 그리고 또 깨닫는다. 상쾌하지 않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보면 계속해서 내 숨이 깎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정도의 위태로운 상황임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곳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쓴다. 백신도 다 맞았다. 하지만 최근 이상하게 답답함이 커지고, 그로 인한 불안을 느끼기에 찬찬히 적어본다.


갑갑하고 답답한 것이, 단순히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압박으로 느껴지는데 당장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 굉장한 스트레스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상쾌함에 대한 목마름이 커진다. 가슴 끝까지 닿을 정도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배부르듯 공기를 삼킨 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는 북풍처럼 내뱉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말고 그냥 욕망의 형태를 짚어본다. 만질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공기처럼. 그냥 그러고 싶다고, 후우- 뱉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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