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금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쌩전 May 21. 2024

님아 그 강을 건넜잖아요

산책과 커피 : 독립 마케팅 스튜디오의 넋두리 다이어리 2

저녁에 짧은 산책을 했다. 사실 더 길게 하고 싶었는데, 산책을 시작했을 때와 다르게 걷다가 컨디션이 조금 안좋아졌다. 어지럽고 머리가 지끈한 느낌. 그런 느낌이 들 때면 확 불안감을 느낀다. 혹시 감기가 오는게 아닐까? 몸살이라도 걸리면 어떡하지? 순간적으로 당장 해야할 일과 내일 처리해야할 기획안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아프면 안돼, 라는 말에 웃음기가 사라진 순간 내 몸이 가진 가치의 방향이 어딜 향해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이미 밤을 넘어섰지만, 이건 5월 20일 월요일에 대한 다이어리다. 오늘은 위로와 좌절의 순간이 계속 오갔던 하루였다. 넋두리가 결국 징징거림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하기도 했고, 작업물에 대한 비난에 가까운 비판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나의 소심함 탓이기도 하고 부족한 능력 탓이기도 하다. 분명히 변명거리도 있고 관계적인 문제도 있다. 어쩌면 과정 중에 그런 순간을 지나는 건 보통 다들 겪는 일일 수도 있다. 내가 그런 것에 좀 더 예민한 것일 수도 있다. 왜 자꾸만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을 두려워하고, 관계적인 문제에 자꾸만 힘들어하는 걸까.


잘하고 싶은 마음보다 못하기 싫은 마음이 더 크다.


이게 지금까지 나의 삶을 지탱해 온 근간이기도 하고, 나를 괴롭히는 마음이기도 하다.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기 보다는 잘못하지 않기 위해서 애쓰면서 버텼던 것이다. 사실 뭔가를 잘하는 일은 어떤 면에선 부족하거나 못하더라도 한 곳을 뾰족하게 다듬어서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경계를 뚫고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만 할 뿐, 나는 실천하지 못했다. 못하지 않는 방법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그쪽으로 한발 더 나아가거나 먼저 행동하는 편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보다, 남들에게 비난을 덜 받는 방향으로 여기저기 발빠르게 움직이기만 했고 그 안에 ‘내가 원하는 것’ 같은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늘 하티핸디의 꼽힌님에게 캠페인 런칭을 축하하며 메시지를 드리며 짧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감사하게도 또 영감을 얻었다. 꼽힌님도 다른 분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했는데, 일이 힘들 때 비전을 잃고 타협할 거면 그만 하고 꿈을 잃지 않을 거라면 더 하라고 제대로 하라는 말. 무릎을 탁! 쳤다. 맞아, 나는 계속 타협만 해왔으니까 소모된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어제는 제이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결국 내 책임이 될 수 있는 상황의 중심에 있으면서, 내가 이끌어갈 수 있는 권한은 없으니 자꾸 불안하고 불만만 쌓이게 되는 거라고.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내 것인데, 과정을 주도할 수 없는 기울어진 구조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게 대체 무엇인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이런 고민을 해야만 하는 시기인 것 같기도 하고.


독립의 일이라고 했을 때, 늘 고마운 사람들이 여럿 있다. 그 중 당연히 가장 손에 꼽는 분 중 하나가 동유 대표인데, 독립하기 전부터 가끔 일을 주기도 했고 독립의 발판을 마련해준 가장 주도적 은인이다. 가만히 있을 법한 나를 전부터 이끌어준 분이고 벌써 안지도 1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보고 있으면 늘 굉장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부서질듯 넘어질듯한 상황을 자신이 쟁취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어 리딩하는 에너지가 상당하다. 능력있는 AE이기도 하고 뛰어난 CD이기도 한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일에 관련해서는 툭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인데, 그러다보니 이번 시기에도 이래저래 넋두리와 약한 소리를 좀 했다. 나로써도 지치고 힘든 탓에 그런 것이긴 한데, 지금 돌아보니 안그래도 바쁘고 어려운 사람을 붙들고 힘빠지는 소리를 했던게 아닌가 싶어 반성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저녁이 되자 결국 나의 상황을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해주었기 때문이다.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난 뭐라고 이렇게 감사한 사람들 주변에서 어울리지 않게 어리광을 부리며 살고 있는 걸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너는 너 하고 싶은 거 잘 하면서 살잖아.’ 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은 적 있다. 한 10여년 전만해도 그런 얘길 듣는게 싫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좀 이상하게 꼬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게 뭔데? 내가 하고 싶은 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었는데, 그게 뭔가 좀 더 자기욕망에 가까운 선태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 지점이 나는 좀 신기하기도 하고 아리송하기도 했다. 나는 내 주관에 따라서 삶을 만들어가기보단, 그냥 매순간 가장 긍정적이고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하며 나아갔을 뿐인데 왜 그렇게 보였을까. 어쩌면 그게 모두가 그럴 듯한, ‘평범’해보이는 선택은 아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 ‘평범’한 시장 안에서는 경쟁력이 있지 않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내 안에 불안 때문에 그저 좀 더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판단을 했을 뿐인데,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평가가 그랬을 뿐이었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말이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나도 사실은 나 하고 싶은 거 더 하고 싶은데, 나도 헌신하고 희생하며 사는 거 같은데, 자꾸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아서. 괜히 발끈하기도 하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삶이 뭘까 상상해보기도 하고 그랬다.


삶이란 사실 예측하지 못하는 일의 연속이다. 마음대로 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당장 하루만 해도 그렇다. 오전에 짧게 필요한 일들을 쳐내고, 미팅에 가면서 택시 대신 버스와 지하철을 타려고 했는데 버스를 타기 직전에 클라이언트에게 전화가 왔다. 급하게 수정해줄 것이 있다면서, 지금 바로 가능하냐고. 결국 지하철 역 벤치에 앉아 컴퓨터를 열고 얼른 작업을 했다. 지하철을 한 다섯대 정도 그냥 보냈다. 내가 혹시 이 컴퓨터를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면 안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삶이 이토록 매걸음마다 무거워지는 건 그렇게 좋은 신호는 아닌 거 같다고, 혼자 생각했다.


어떤 선택이든 누군가 책임을 져야한다. 하지만 그 책임도 결국 지나기 마련이다. 내게 남는 감정도 언젠가는 다 흘러갈 것이다. 어제도 결국 글을 쓰고, 은석 감독이 댓글을 달아준 덕택에 결국 근본적인 것을 깨달았다. (늘 답은 내 안에 있다!) 이 모든 상황도 내가 다 자처한 일이란 사실. 하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힘든건 힘들다고 인정하되, 나아갈 건 나아가야 한다. 성장은 안전한 시간 속에서 이뤄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흔들리고 때로는 기존의 규칙들이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나아가게 되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믿을 수 밖에 없다.)


이미 강은 건넜고, 지나온 강 건너를 보는 것은 의미없다. 발걸음이 닿는 곳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새로운 길이든, 누가 이미 만든 길이든, 나아가다보면 또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될테니까.


참 길고 긴 산책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대로 계속 가는 게 맞는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