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다이어리 16
오랜만에 글을 쓰더라도 오랜만에 쓴다고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지양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왜 그런 말이 쉽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뻔한 것과 반복되는 것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게 벗어나다보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든다. 제대로 반복하는 것도 없지만 제대로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럼 괜히 찝찝하고 때로는 쎄하기도 하다. 모든 것은 경험을 통해 육체에 새겨진 감각일 것이다. 피해야하지만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찝찝하거나 쎄하고 만다.
흔히, 쎄한 감각은 통계라고도 한다. 살아가면서 경험했던 수많은 일들이 쌓여서 뭔가 이상하다거나, 피해야할 것 같은 감각을 전해주는 것이다. 그건 온몸으로 무언가를 거부하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가끔 쎄한 것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쎄한 감각을 느끼더라도 그걸 고스란히 제대로 반응하기는 어려운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대로 하는게 쎄하지만 그대로 할 수 밖에 없고, 이대로 진행하면 안될거 같은데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 상황이 다 지나가고 나면 찝찝함이 남는다. 분명히 문제가 될 것 같은데, 분명 잘 안될 것 같은데, 그러다보면 현실은 예견했던 그대로 벌어진다.
그럴 줄 알았어.
소용없는 말이다. 다 지난 뒤에서야 내뱉는 재채기 같은 말은, 사람들에게 침을 퍼뜨리듯 해롭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저 말이 자꾸만 내 안으로 파고든다. 그럴 줄 알았는데 왜 그랬어? 나는 처음으로 나의 물음에 하나씩 답변을 해본다.
사람들이 불편할까봐 그랬어. 그런데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졌잖아. 사실 내가 불편해서 그랬어. 뭐가 불편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 맞다고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거기서 내가 브레이크를 걸고 다른게 맞다고 말하는게 불편했어. 네 역할이 그거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네 말이 맞아, 내 역할이 그거였는데 사실 그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했을 때 꼭 잘되리란 보장도 없잖아. 두려운거 아냐? 맞아 사실 두려운거야.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구체적인 상상이 부족했는지도 몰라. 그럼 도망친거네. 맞아, 도망친거지. 그럼 네 잘못이고. 그래, 내 잘못이고.
쉬운 건 하나도 없다. 심지어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다. 삶은 당연한 어려움의 반복이다.
누군가와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어른들을 모시고 여행을 가면 뭐가 불편하다 어색하다 낯설다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걸 다 듣고 있기가 괴롭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여행이 늘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다. 물론 전체적인 여정을 다 둘러보고 돌아온 뒤에 회상했을 때 여행의 순간에 대부분이 기억에 남고 즐겁긴 했지만, 그 하나하나 다 만족스러울 순 없는 거다. 그건 당연하다. 모르는 나라에 가서 말도 잘 안통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겠다고 낯선 세상을 뚫고 하루하루 일상을 관광하는 일이 쉽고 간단하고 편할거라 생각하는 건 너무 오만한 일 아닌가? 여행은 힘든거다. 다만, 그 힘든게 의미가 있으니까 즐겁고 새롭고 뿌듯한 것이다. 힘들지 않은 여행을 기대할바엔, 그냥 집에서 유튜브로 여행 채널을 보면 된다. 모든 것은 인과율에 의해서, 결과를 위해 명백한 원인을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 삶이 힘든 것, 여행이 낯선 것, 괴로움을 이겨내야만 하는 것들 말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에서 멀어지고 외면하게 된다. 괴롭고 싶지 않고 걱정하고 싶지 않고 불편하고 싶지 않으니까. 늘 모호한 기준 속에서 명확한 것을 잡으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사람들은 다 자신이 아는 것들을 늘어놓는다. 아, 이렇게 하니까 부자가 되더라. 아, 이렇게 하니까 유튜브 채널이 백만이 되더라. 아, 이렇게 하니까 성공하더라. 하지만 모두가 뭔가를 안다고 떠드는 와중에, 아무리 들여다봐도 심연의 중심으로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내면이다. 거시적으로 확장되는 세상을 바로볼 수록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내 안으로 파고드는 내면도 마찬가지로 점점 더 깊이들여다볼 수록 알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아는 것을 포기한다. 나는 왜? 라는 이유를 나의 감각과 반응을 통해 실존적으로 바라본다. 나는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느끼는 찝찝함과 쎄함을 관찰해야한다. 그것이 진짜 통계학적으로 쌓여서 느낀 감각인지, 아니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어떤 잘못된 단계에서 생겨나는 감각인지는 모르지만, 중요한건 그걸 ‘내가’ 느꼈다는 것이다.
‘당연’에도 조건은 필요하다. 그것은 ‘시간’과 ‘주체’에 대한 것. 결국 ‘나에게 당연’한 것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당연함 마저도 (힘들지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