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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쌩전 Oct 15. 2024

나의 게으름이 가장 두렵다

넋두리 다이어리 20

어떤 밤에는 문득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의지가 타올라 뜨끈해진다. 열정? 의지? 무슨 말이든 어울리고, 무슨 말이든 부족하다. 그런 게 찾아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눈을 반짝이며 다짐한다. 이 순간의 이 마음을 잊지말겠다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겠다고. 그렇게 잠이들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저녁의 의지는 바쁨에 치여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두렵다. 이렇게 나약해서 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매순간 패배하고 포기한다. 포기와 패배는 거의 동시에 이뤄진다. 포기하는 순간 패배하고, 패배의 순간 포기한다. 기권은 패배가 아닌걸까? 모르겠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패배와 승리로 단칼에 잘라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감정이란게 있기 마련이다. 나는 패배와 포기 사이에서 진동하며 하루하루 산다. 그 삶이 어쩔 때는 만족스러운 형태가 아닐 때도 있다. 아니, 대부분 만족스럽지 않다. 대체 자신의 삶을 만족한다는 건 어떤 걸까?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러니 나는 패배하고 포기하는 것이다.


택시를 자주 탄다. 어제였나? 아니, 한 사흘 전인 것 같다. 시간이 가는 것도 이제 중구난방이다. 각설하고, 택시 탄 이야기로 돌아가겠다. 택시를 타면 어떤 기사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크게 좌우되기도 한다. 대부분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경우가 많지만 어쩔 땐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왠지 좀 성질이 급해보이는 택시였다. 그런 건 카카오택시 앱을 통해 목적지로 올 때부터 느껴지기도 한다. 뒷좌석에 앉자마자 나에게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었다. 왼쪽으로 가요? 오른 쪽으로 가요? 내가 탄 곳은 동네 골목이라 사실 어디로 가든 큰길로 나가는 건 비슷하고 큰 차이도 없다. 나는 길도 잘 모르겠거니와, 크게 신경쓰지도 않기 때문에 대부분 네비 따라 가주시면 된다고 대답한다. 그랬더니 기사님이 아니, 여기 사시는 거 같은데… 라면서 말을 흐렸다. 왜 굳이? 나는 살짝 기분이 별로였지만, 정해달라고 한다면 처음처럼과 참이슬 중에 처음처럼이요, 라고 고르는 것처럼 그냥 아무거나 정하면 되니까 그럼 오른쪽으로 가시죠,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왼쪽으로 목을 길게 빼고는, 저쪽이 큰길 같은데? 하고는 핸들을 크게 왼쪽으로 돌렸다. 당연히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다보면 필요한 말을 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때가 있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이 어떤건지 약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를 버리고 대화를 선택하게 되면 그 시간은 즐거울 지언정 뒤돌아서서 왠지 후회가 되기도 한다. 왠지 나를 넘어선 이야기를 한 것 같기도 하고, 거짓말을 한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에 대한 이야기할 때가 참 그렇다. 나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허접한 사람도 아닌데 어중간한 사람으로 보이긴 또 싫은 것이다. 애매하지? 사람의 삶이란 게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 때로 삶을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 최근 같은 콘텐츠 범람시대에는 수많은 콘텐츠들이 생겨나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에게도 가끔씩 순서가 돌아오기도 한다.


최근에 그런 기회가 있었다. 나는 모 연예인과 모 브랜드 채널에서 나오는 영상에 패널로 출연하여 ‘프리랜서’와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뭐, 나는 아주 작고 소박한 역할이기 때문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떠들다가 왔는데,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상하게 아쉬움이 남은 이야기가 있었다. 프리랜서든, 사업자든, 뭐든간에 결국 자기 삶의 고충에 대해서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할 때, 남의 군대를 다녀본 적은 없으니 결국 고생 자랑만 늘어놓다가 답 없는 레이스를 소모적으로 하게 되는 것처럼, 결혼 생활이나 일도 마찬가지다. 하고 나면 남는 것은 없고, 그렇다고 남들이 다 힘들다고 고생이라고 하는데 입 꾹 닫고 있으면 잘난척한다고 하고, 참 어려운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개인의 삶이 누가 더 힘들고 어떤 선택이 덜 힘들고 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본다. 모든 것은 단 하나뿐인 선택이고, 그 외에 삶은 살아볼 수 없기 때문에 오롯이 외길로 후회없이 가야한다. 삶의 형태가 다양할 수록 사람들은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고 여러가지 방식을 꿈꿀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어차피 우리의 삶이 길어지고 사회의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먹고 사는 문제도 다양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프리랜서, 개인사업자, n잡러, 같은 말은 모두 그런 다양성 안에 포함된 요소일 뿐이다. 회사 안다니고 어떻게 살아? 회사 안다니고도 어떻게든 살아. 그런게 당연해진다면 좀 더 폭넓은 세계관이 생겨나 많은 삶의 모습을 포용할 수 있을거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니 회사원이라고 덜 힘들고, 더 힘들고 이런 ‘힘듦’의 경쟁이 아니라 그냥 저렇게 다른 삶도 있구나,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보는 것이다. 너도 살고, 나도 살고, 그래야 좀 사람답게 사는 것 아닐까?


때로 내가 아는 어른들의 안좋은 소문을 들을 때가 있다. 그분이 그럴 분이 아닌데 그렇더라, 사실 함께 일해봤는데 좀 그런 면이 있더라, 이런 얘기를 들어도 사실 나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래도 나는 그분이랑 좋은 기억이 있는데, 나한테는 괜찮았는데, 하면서 말을 아끼거나 내가 뭔가 다르게 느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에서 약간 초월했다. 그에겐 나빠도 나에겐 안나쁠 수 있고, 사람이란게 예전에 저지른 일 때문에 평생 원죄에 시달려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누굴 용서하거나 받아들이거나 하는 권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내가 뭐라고? 그냥 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아, 저 사람은 소문이 안좋고 저 사람과는 사이가 안좋구나, 에서 끝나는 거지 그걸 내가 더 확장해서 그러니까 내 인생에 얼씬도 못하게 해야지, 라거나 소문을 내서 더 안좋게 만들어야지, 같은 생각까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가 맞는지는 모른다. 아직까진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의 쾌거는 떠올릴 수록 가슴에 설렌다. 내가 한강 작가의 책을 얼마나 가지고 있거나 얼마나 읽었거나 얼마나 감동을 받았거나 하는 건 다른 얘기다. 국뽕은 BTS의 노래를 들어본 적 없어도 별안간 찾아오는 선물 같은 것이다. (단순 국적만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다니!) 하지만 전세계에 ‘한글’을 쓰는 유일한 민족으로서, 그리고 독서를 그나마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서는 감동을 지울 수가 없다. 뭐랄까. 어떤 의미인지 아직 새기진 못하겠다.


어떤 이야기들은 삶에 소화되어 형태를 이룰 때까지 머릿속을 헤매고만 있기도 하는 것 같다. 계속해서 행동하는 것만이 삶에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는 걸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헤매는 것은 비단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여기서 줄인다. 결국 이것도 게으름 때문이라고, 수초 전에 나는 또 탓한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열심히 살겠지? 기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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