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다이어리 28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겨울을 최대한 즐기고 싶은데, 그러다보면 겨울은 좀 다른 것에 신경을 빼앗겨 금세 지나가버리는 기분이 든다. 신년도 있고 크리스마스도 있고, 설날도 있고 말이다. 그것과 비교하면 여름은 바캉스, 휴가를 품고 있는 아주 여유로운 녀석이다. 그러니 이렇게 마음껏 절절 끓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름이 더욱 길고 끈적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탓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아, 이런 생각을 얼마만에 하는 걸까.
이런 생각? 이라고 하면 그게 딱히 뭔지 알 수 없어서 혼자서 골똘히 생각 주변을 헤맨다. 이도저도 아닌 어떤 것들을 정확히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의 마음에 드는 순간, 혹시나 누군가에게선 멀어진게 아닐까 걱정한다. 걱정도 팔자다. 마음이란걸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잘 몰라서 알고 싶어지는 것이고 힘들어서 좋은 것들이 있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르고 힘들고 헤매는 순간을 마냥 즐기기란 쉽지 않다.
최근 이노세 고헤이라는 일본 인류학자가 쓴 ‘야생의 실종’이라는 책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무척 덥고 바쁜 날이었다.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억지로 갔다. 억지로라는 건, 가기 싫은데 갔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어서 갔다는 뜻이다. 그 전까지 책도 다 읽지 못해서 괜찮을까 싶었지만 왠지 이끌리듯 발길이 향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무척 좋았다.
무엇이 좋았냐고 한다면 뭐라 말하기 어렵다. 아니, 말할 순 있으나 그게 정확할지는 모르겠다. 이노세 작가는 나와 초면이 아니다. 한 15년도 더 전에 한국의 어떤 포럼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청년의 입장이었고 이노세 씨는 연구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여전히 그는 연구자로 살고 있고, 그 사이에 코로나도 올림픽도 다 지나가버렸다.
이노세 씨의 형은 정서적 장애를 지니고 있다. 그러다 가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질주’할때가 있는데, 그 뜬금없는 질주는 가족들에게 형의 ‘실종’으로 다가온다. (일본어에서 질주와 실종은 발음이 같다.) 이노세 씨는 동생으로서, 그리고 연구자로서, 형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가도 자꾸만 그 손을 벗어나는 형을 보며 인간이란 결국 서로의 이해를 벗어나는 범주에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 아닌가, 하고 깨달았다.
삶은 언제나 사람을 배반한다. 힘들어서 죽겠다는 시절이 지나면 갑작스레 평안해지고, 그러다보면 갑자기 영문을 모르겠는 일들이 생겨난다. 사람과 삶, 발음이 닮은 이유가 그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지경이다. 우리는 (나를 포함한)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노세 씨는 이야기한다, 사람이란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이해가 가능한가? 이해해야 하는가? 불가능한 걸 노력하는 것이 인간성이라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먼저 인지한 뒤에서야 가능한 이야기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매우 자연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
쓰여진 언어는 옮겨지는 동안, 그리고 해석되는 동안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오배송의 가능성을 염두해야된다고 말했던게 데리다였던가 들뢰즈였던가. 여하튼, 결국 그 오배송의 가능성이 우리를 유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오해 속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사실 이야기라는 건 늘 기계처럼 착착 들어맞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그 톱니바퀴가 어느 순간 어긋나는 시점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 인정하고 납득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그냥 그런 거구나. 그런 일들은 수시로 생겨난다. 그리고 조금 안다고 생각했을 때, 마치 다 잡았다고 생각할 때, 보란듯이 예측과 이해를 벗어난다. 그때마다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때마다 힘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중요한 건, 그런다고 내가 잘못되거나 내 인생이 잘못된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 결국 또 겨울이 오고 여름이 올테니까.
삶도 일처럼 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좋은 걸 먹고, 몸을 움직이는 일들이 그렇다. 시간 나면 해야지, 라고 생각하면 결국 못하게 된다. 아주 치열하고 열심히 해내야만 하는 것들. 다 미뤄놓고 나면 나중에 결국 부채가 되어 돌아올 것들. 소중하게 여겨야하는 것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요즘이다. 물론 점점 더 바빠질 스케줄을 들여다보다보면 숨이 턱, 하고 막혀버리고 말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