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비 Sep 28. 2022

아이는 섬에 삽니다만,



마루의 여름방학이 끝나간다. 방학 동안 하려고(해주려고?) 했던 일 중에 남은 것들을 추려보다가 어제는 김녕에 다녀왔다. 직접 돛을 움직이며 타는 딩기요트 체험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사실 마루보다 내가 훨씬 좋아하는 스포츠인데, 3년 전 등록해서 초급 코스를 배우고 그 뒤로 코로나 때문에 요트학교가 문을 닫았다. 이번 여름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이웃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수업에서 마루는 아직도 어린이 대접이라, 정식 수강을 할 수는 없었다. 대신 3년 전보다 많이 자라서 이제 함께 타는 작은 요트 앞자리가 더 이상 무섭지 않다. 오후 한나절을 요트, 카약, 패들보트까지 부지런히 타고 작은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마루는 엄마 뱃속에 있는 동안 상하이에 있다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생후 50일에 상하이로 돌아갔다. 그리고 세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유모차 생활을 시작한 아이는 눈만 뜨면 산책 나가자고 보챘고, 아내는 오전 오후 저녁까지 마루를 태우고 집 앞 공원을 걸었다. 생각보다 산책이 짧았다 싶으면 다리 한쪽을 유모차 밖으로 턱, 내걸며 더 돌아야 한다고 무언의 시위를 했다. 아이가 두 살 때쯤 이사한 곳은 아파트 1층이었는데, 하필 왕복 6차선과 8차선 도로, 또 고가도로가 만나는 곳에 있었다. 습기 많은 상하이의 1층. 지하실을 임시 작업공간으로 쓰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게 아이에게 미칠 영향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2년쯤 살았을까? 아이는 기침이 많아진 듯했고, 고열로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여러 이유가 겹치기는 했지만, 제주행을 결심하는 큰 동기가 되었다. 

나도 아내도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둘 다 그때의 기억이 좋고, 가능하면 마루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주에 도착해서 처음 몇 달은 빈자리가 없어서 어린이집을 구하지 못했다. 한참만에 겨우 찾아낸 곳은 매일 차를 태워 통학해야 하는 곳이었고, 어린이집 쪽에서도 거리가 먼데 다닐 수 있겠냐고 재차 확인했다. 대안도 없었고, 어린이집에 대한 평도 좋아서 무조건 가겠다고 하고 그때부터 차로 통학하는 날들이 시작됐다. 통학은 번거로웠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그곳은 한담 바다 근처여서 마루는 어린이집이 끝나면 해가 질 때까지 작은 모래톱에서 바다를 만지며 놀았다.


우리가 사는 마을 장전리는 중산간에 있는, 새벽은 이르게 시작하고 저녁은 조금 일찍 끝나는 작은 마을이다. 이름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해가 지고 나면 마을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우리는 마루가 제주에서 자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루는 상하이에서 있었던 일들은 기억 속에 남은 것이 거의 없어서 어디와 비교해서 제주가 낫고 못하다는 비교가 어렵다. 몇 년 전, 어쩌다가 늦은 저녁에 아랫마을 하귀에 나갈 일이 있었다. 하귀 마을이라고 해봐야 아파트 단지가 있기는 하지만 읍사무소도 아니고 리사무소가 있는 작은 곳이다. 조명으로 가득 찬 시내의 모습이 신선했을까. 아이는 대뜸 물었다.


아빠, 여기가 도시예요?


제주에서, 그중에서도 시내권이 아닌 읍면 단위에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자주 듣는 이야기는 교육에 대한 걱정이다. 무심하게 있으려고 해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이렇게 키우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이에게 너무 못해주는 것은 아닐까? 정답은 없다지만 작은 불안까지 떨칠 수는 없다. 아무래도 도시의 아이들과 비교한다면 조금 부족할 수 있다. 도시에서 생활했다면 주변의 사교육을 따라가느라 찢어지는 가랑이를 부여잡아야 했을 수도 있겠지만, 대신 이곳에서 가능한 것들을 많이 해주려고, 같이 하려고 노력한다. 마당과 산, 바다에서 아이의 놀이에는 공식도 답도 없다. 요즘 아이들의 장난감 중에는 정답이 정해진 것들이 많아 보인다. 블럭도 설명서에 있는 모양대로 만들면 완성이어서 그대로 보관하고, 게임도 공략집이 있고 끝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살면서 만나는 많은 문제들은 답이 없는, 어떻게 해도 실패라고 말할 수 없는 나름의 결론에 닿는 것들이었다. 자연을 뛰어다니며 매일 답 없는 질문과 마주해야 하는 제주의 아이가 그 질문들 앞에서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있지도 않을까 기대한다. 

꼬박 12시간 가까이 걸어야 했던 한라산을 다녀오며, 마지막 남은 구간에서 아이는 거의 관성대로 걷는 기계처럼 초점 없는 눈빛으로 내려왔다. 새벽 4시 반부터 깨어서 하루 종일 걸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겨우 내려와서 차에 탄 아이는 말했다.


아빠, 새로운 기술을 익혔어요.

응, 뭐?

유체이탈이요.


아이는 항구 빈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배우고 오솔길에서 산딸기를 따 먹으며 여름에는 바닷가 웅덩이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해수욕장 대신 동네 포구에서 다이빙을 하고 눈으로 덮인 오름을 힘겹게 오른 후 눈썰매를 타고 질주하며 내려온다. 생일을 맞은 친구를 아빠의 사진관으로 초대해 직접 사진을 찍어주고, 엄마와 함께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도시와 다른 방식이지만 아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단단하게 자라는 중이다. 마루가 그린 그림으로 만든 엽서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다.


답 없는 질문 속에서 매일을 여행하는 모든 아이들을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몸에 새긴 시간을 찍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