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올 첫 폭풍을 기다리며
그러고 보니 딱 네 나이네. 저들이 나이를 셀 때는 한국식 나이셈법을 쓸 때니까 열한 살에 만났다는 그들은 지금 너 만할 때 만난 거다.
엄마가 서울 다녀오며 친구에게서 선물 받았다는 노란 책을 들고 왔다. 어찌나 재미있는지 오는 중에 다 읽었다며 아빠에게 권했단다. 첫 페이지를 읽는데 어쩐지 술술 읽히더라. 남의 연애 이야기는 본래 재밌거든.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가는 부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났대. 만나서 설레고 서먹하고 데면데면하다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행복하고 투닥거리는 이야기가 담담하게 이어진다.
아빠 엄마는 사실 기다리고 있단다. 언제쯤 네가 연애를 시작하게 될까? 언제쯤 여자친구를 생각한다고 게임마저 잠시 뒷전으로 미루게 될까?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한다는 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화려하고 또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인 것 같아. 좋아하는 사람과 순조롭게 연애를 하거나 또는 이루어지지 않는 가슴앓이를 하더라도, 그 순간들과 감정들이 얼마나 너를 빛나게 할까 생각하면 곧 올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아빠는 네 첫 연애 소식을 기다리게 된다.
당장 이 책을 네게 권하지는 않아도 되겠어. 말했지만 이 책은 이미 나이 든 부부가 지난 사랑을 담담하게 회상하는 거잖아. 네가 마주할 사랑은 아마도 아빠가 짐작하기에, 이 책에 나온 것보다는 훨씬 더 폭풍 같지 않을까?
뭐 서두를 건 없어. 때가 되면 어떤 사람이 네 마음에 들어오겠지. 들릴 듯 말 듯 노크를 할지, 도끼로 내려치듯 네 마음을 부수고 올지 모르겠지만.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 / 옥혜숙 이상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