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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 Sep 18. 2019

‘존버’의 진정한 의미

일을 시작하자마자 그만두고 싶다


일식당 웨이트리스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 시드니에 왔을 때는 너무 겨울(비수기)이었고 어학원 다니기도 벅찼기 때문에 3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첫 잡을 구한 것이다. 시드니가 사람이 많은 대도시이긴 하지만, 호주에서 일한 경력도 없고 영어도 잘 못하는 아시안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당장은 현지에서의 경력을 쌓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인잡(사장이 한국인, 주로 코워커들도 한국인이다)부터 지원하기 시작했다. 일을 구하기까지 한 달, 길게는 두 달까지 예상했지만 운이 좋게도 두 번째 지원한 곳에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영어를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다는 마음에 키친이나 청소가 아닌 웨이트리스를 선택했지만 바로 그 영어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한인잡이지만 코워커들은 대부분 외국인이고, 손님들은 100% 로컬(현지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일이든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처음이니까 실수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영어로 의사소통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가끔 나를 정말 멍청이(!)로 만들곤 한다. Can I have a fork? (포크 좀 가져다주세요)의 fork를 four로 잘못 알아듣고 4개는 안 된다고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No sesame(참깨)를 No Sashimi(사시미)로 듣고 아니 일식당에 와서 사시미를 빼 달라는 바보가 다 있어.... 하며 갸웃거린 적도 있었다. 정작 바보는 나였는데... 게다가 호주는 한국과는 다르게 특정 식재료에 알러지가 있는 손님이 많고 뭔가를 더 넣어달라던지, 빼 달라던지 하는 커스터마이징 주문도 많다. 손님 말을 두 번, 세 번 되물을 때면 어쩌자고 이런 수준의 영어로 외국에서 일을 하겠다고 덤빈 걸까 싶어 기가 죽고 만다.


당연한 말이지만 체력적으로도 고되다. 서비스업이나 서빙 경험은 대학생 때 용돈을 벌기 위해 간간히 했던 아르바이트가 전부다. 하루에 8시간, 9시간을 회사에서 앉아서 일하던 사람이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일을 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온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한다. 간절히 부정하고 싶지만, 나이와 체력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마음 한 구석에서 ‘내가 이러려고 이 먼 곳까지 온 게 아닌데’하는 자괴감이 계속해서 든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 5년을 일했다. 그런데 그 회사를 자발적으로 때려치우고 최저 시급보다 적은 시급을 받으며 (즉 불법으로) 식당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맛있다고, 고맙다고 웃어주는 손님들을 보면 종종 뿌듯하긴 하지만, 요식업이 나의 오랜 꿈도 아니고 가끔씩 이게 뭐하는 짓인가 허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마음이 너무나 한국인스럽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짜증이 난다. 번듯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면서 결혼하고 집을 사는 것만이 올바른 인생이라고 믿는 한국이 싫어서 여기 왔는데, 결국엔 나도 별 수 없이 한국인이라는 것. 그 사실을 매 순간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매일 한국행을 생각한다. 외국 생활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은 더 이상 없고, 영어는 1년 안에 절대로 늘 것 같지 않고, 이렇게 우울한 상태로 계속 이런 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한국에 가서 하루빨리 재취업 준비를 하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 출근 전 식당 근처 벤치에 앉아서 그냥 들어가지 말까 한참을 망설인 적도 있고, 너무너무 가기 싫어서 버스에서 눈물이 찔끔 난 적도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실수를 하고 있고 그럴 때마다 오늘 일 끝나고 그냥 그만두겠다고 말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물론 정말로 퇴근 시간이 되면 그냥 집에 가기 바쁘다.) 하지만 다 포기하고 싶어 질 때마다 내 무모한 선택을 응원해 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맞더라도 내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고 다짐하던 내 얼굴이 떠오른다.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른 누가 아니라 그때의 내 얼굴을 다시 마주할 면목이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결론을 늘 같다. 일단 오늘은 하자. 내가 무단결근할 정도로 책임감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 일단 출근하자. 비가 오니까 손님이 많지 않을 거야. 오늘만 해보자. 그래도 첫날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잖아. 가보자.... 온갖 이유로 나 자신을 설득하고 오늘 하루치의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내일은 모르겠다. 다음 주에도, 다음 달에도 이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지니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방법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알 수 없고, 언젠가 도저히 단 1초도 더 버틸 수 없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벌써부터 굳이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친구들과 대화할 때 종종 쓰던, ‘존나 버티는 것’의 의미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버티는 게 능사인 것도 정답인 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가치는 있다. 하기 싫은 일을 바로 놓아버릴 수 없는 데에는 지금은 나도 잘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내고 내 마음을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일단 시간을 버는 거다. ‘아 모르겠어 그냥 때려치울래!’보다는 ‘이 일은 이러저러해서 못해먹겠구나. 역시 그만두는 편이 좋겠다.’쪽이 좀 더 성숙한 어른답지 않은가요? 아... 아니라고요? 마음이 답답해지니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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