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오카 조각 여행기
외국에서 말문이 턱 막히는 경험, 해본 적 있는지? 일본 여행 입국 심사에서 시현과 내가 그랬다.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고맙다는 간단한 인사말이 자연스레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이거 너무 길지 않아? 고맙긴 한데 9글자나 말해야 되나?"
"그니까. 영어는 땡큐면 되는데…"
억지로 10년 이상 배운 영어를 제외한다면 일본어는 가장 친숙한 외국어다. 나는 일어를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접했고, 시현은 외고 일본어과 출신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는 과거에 같은 아이돌 그룹을 열렬히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이 일본에서도 활동했던 터라 얼떨결에 그 나라 언어도 함께 익히게 됐다. 비록 여행에서는 전혀 쓸 일이 없는 감성적인 노랫말들(‘언제까지나 곁에 있을게’, ‘너를 잊을 수 없어’...)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이런 훌륭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막상 상황이 닥치니 간단한 인사도 못해서 멋쩍은 웃음만 흘러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았다. 대충 바디 랭귀지를 섞어 이야기해도 어떻게든 소통이 가능하겠지만(일본 사람들은 한국어도 곧잘 알아듣더라), 어깨너머로 배워 알고 있는 일본어를 써먹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틀리면 어때. 외국인이 외국어 못하는 게 당연하지!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무 말이나 내뱉으면 얼추 맞을 때도 있었고, 틀리더라도 그 상황이 즐거웠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여행의 묘미였다.
마지막 날 저녁, 야키토리(닭꼬치구이)와 맥주를 먹기 위해 이자카야에 들어섰을 때 직감했다. 여기는 ‘찐’이다. 뿌연 담배 연기가 가득했고 정장 차림을 한 아저씨들이 회식 바이브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특히나 현지인 느낌을 좋아하는 시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때 직원이 다가와 일본어로 된 메뉴판을 건넸다. 한국어 메뉴는커녕 영어 메뉴도 없다는 말에, 다른 건 몰라도 주문은 자신 있다던 시현이 갑자기 크게 외쳤다.
"야키토리 타베타이! (닭꼬치구이 먹고 싶어!)"
아니, 그건 반말이잖아… 꼬치구이가 너무 먹고 싶은 나머지 다짜고짜 직원에게 반말로 명령을 해버린 친구를 보며 순간 웃음이 터졌다. 다행히 우리의 버릇없는 주문(?)을 들은 직원 분은 프로였다.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하이!” 대답한 뒤 메뉴판 한쪽을 가리켰다. 그 상황이 죄송하면서도 너무 웃겼다. 야키토리는 끝내주게 맛있었고 우리는 가게를 나와서도 한참 동안 깔깔 웃었다. 앞으로 살면서 ‘타베타이'라는 말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야.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사실 살면서 이런 멍청한 일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당장 3년 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만 봐도 매일매일이 실수 그 자체였다. 일식당에서 일할 때 참깨(sesame)를 빼 달라는 말을 사시미로 듣고 회를 다 뺀 도시락 정식을 서빙했던 민망한 실수담도 있다. (일식당인데…) 다만 그때는 여행자가 아니라 미래가 불투명한 외국인 노동자였고, 그래서 이렇게 내 실수에 관대하게 웃지 못했다. 하루 이틀 놀고 집으로 돌아갈 사람이 아니라 많은 걸 포기하고 여기에 온 사람이었으니까. 뭐든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늘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면 우울했고 사소한 실수에도 자책하곤 했다.
어쩌면 그때의 나에게 필요했던 건 영어 실력보다도 ‘여행자의 애티튜드'였을지도 모르겠다. ‘외국인이 외국어 못하는 게 당연하지!’라고 외치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는 바로 그 태도. 못하는데 뭐 어쩔 거야. 이렇게 하나 배우는 거지. 다른 사람들도 내가 어설프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너그럽게 웃어줄 것이고(라고 믿고) 이런저런 실수와 실패는 훗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니 가볍게 막 던져볼 것. 잘 되면 기뻐하고, 틀리면 웃고, 최선을 다해 즐길 것. 아마 이제 외국에서 살 일은 없겠지만, 내 자리가 어디든 매일을 그런 태도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