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달리기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깨달은 것들
2020년에 나이키런 앱을 처음 깔았다. 여자 아이돌 몇 명이 함께 달리는 예능 <달리는 사이>를 보고 처음으로 러닝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늦어서 뛰는 것 말고는 제대로 달려본 적 없는 나는 단 1분을 뛰는 것도 힘들었다. 다들 3km, 5km는 거뜬히 뛰는 것 같은데 1km도 못 뛰는 내가 창피했다. 기록이 쌓이는 것이 좋아 앱은 켜뒀지만, 산책하듯 조금 뛰고 대부분 걷는 일을 반복했다. 그마저도 일 때문에 바쁘고 정신이 없을 때는 한 번도 나가지 못하고 지나가는 달도 많았다. 다른 운동이 그랬듯 달리기도 이렇게 몇 번 하다 말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퇴사를 하니 시간이 많아졌고, 주변에 러닝을 하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친구가 정말 금방 느니까 한 번 쉬지 않고 10분, 15분씩 달려보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러니까 대단한 기대 없이, 시간도 많고 손해 볼 것도 없으니까, 속는 셈 치고 달려봤던 것이다. 그날 처음으로 1.7km를 쉬지 않고 달렸고, 조금 멈췄다가 다시 0.5km를 더 달렸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이 숨이 막혔지만 얼굴까지 벌겋게 올라오는 열이 ‘자식, 이제야 진짜 운동을 했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10분 넘게 달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제대로 달린 것이 올해 3월이다. 이제 3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고, 시간은 20분 정도 걸린다. 이 기록을 단축하는 것에는 아직 집착하지 않고 있다. 내게는 다른 것보다 처음으로 운동에 재미를 느꼈다는 게 중요하다. 매일 같은 풍경을 보며 두 발로 뛰기만 하는 데도 이상하게 재미가 있었다. 추운 날도 뛰면 무조건 땀이 나고, 더운 날도 뛰면 조금이나마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뜨거운 해장국을 들이키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어느 순간 이해되는 것처럼, 덥고 땀이 나는 동시에 속까지 시원해지는 그런 기분을 알았달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간 하루가 한심하게 느껴져도 딱 목표한 만큼 뛰고 나면 견딜 만 해진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숨이 찬다는 것 외에는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지는 것도 좋다. 이 모든 것들이 얽혀, 달리기를 하러 나가고 싶어 진다.
올해가 되기 전까지 내가 자주 달리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것도 억지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미지근한 시작을 한 후 2년 가까이 뜸을 들인 결과 러닝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 일이라는 건 참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허무하고 답답해서 자조적으로 이 말을 내뱉었다면 지금은 앞을 알 수 없어서 좋다고, 오히려 기대된다고 고쳐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어느 순간 앞에 성큼 다가와있고, 그게 기쁘고 반가울 때가 있다고.
매일 비슷한 하루가 흘러간다. 확실한 변화도, 눈에 띄는 성장이 없더라도 분명 오늘도 무언가 뜸을 들이고 있을 것이다. 밀도 높고 성실한 하루를 보내면 더 좋겠지만 조금 느슨한 하루도 괜찮다. 천천히 시간을 채워가다 보면, 언젠가 예상치 못한 재미와 행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시간이 흘러 언젠가 만날 또 다른 내 모습이 기대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