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i Mar 21. 2021

쫄보는 어떻게 타투를 하게 됐을까?

'하고 싶은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

타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망설이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인 것 같다.

(1) 나이 들어서 후회하면 어떡하지?

(2) 아프면 어떡하지?


내 경우엔 1번은 별로 상관없었다. 타고난 성격 덕분에 후회를 잘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언제 사건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아이돌,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애인 같은 걸 새길 정도로 바보는 아니니까. 그런 걱정보다는, 오히려 여름옷을 입었을 때 간간이 멋진 타투가 드러난다면 얼마나 간지 날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내가 아직도 이렇게 철이 없다.


하지만 2번은 다른 이야기다. 신체적인 고통은 싫다. 아무리 멋져도 굳이 아픈  견뎌내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세상에  정도로 중요한 일은 독립운동 정도이지 않을까. 솔직히 내가 그런 대단한 일을  자신은 없다... 여하튼 나는 2번의 이유 98% 정도로 타투를 '언젠가는 해보고 싶은 ,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용기가 없는 ' 정도로 분류해두고 잊고 있었다.


그래서 그 용기를 어떻게 냈냐고? 놀랍게도 얼떨결에 했다. 그 점이 참 나다운 것 같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셋이서 와인 2병을 해치웠던 어느 날. 타투해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술도 오르고 흥도 오른 나머지 그 자리에서 친구가 타투샵을 예약해버린 것이었다. 마침 최근에 알게 된 타투이스트 지인이 있었고, 그 사람이 저렴한 가격으로 해주겠다고 영업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내가 얼마나 취했냐면,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클럽하우스 앱을 켜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방에 들어가 손을 들어 스피커로 참여를 했다.)


다음 날 술이 깨고 나서도 타투를 예약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친구가 보낸 문자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이번 주 안에 무슨 모양 할 건지 미리 보내달래!" 충 to the 격.... 사실 처음엔 취소하려고 했다. 너무 술김에 지른 것 같다, 역시 무서워서 안 되겠다, 미안하다,라고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떠올리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누가 하라고 등 떠밀 때도 안 하면, 혼자서는 평생 안 하겠다는 생각. 지금도 이 나이에 멋지겠다고 타투를 하는 게 살짝 주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더 못하겠다는 생각.


어차피 나중에 곧 사라질 욕구라면, 그냥 지금 좀 참고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옷이 사고 싶어 미칠 것 같아도,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을 거야. 라면이 미친 듯이 먹고 싶은 밤이지만, 꾹 참고 내일 아침이 오면 안 먹길 잘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생각이 옳을 때도 많고, 그런 선택도 충분히 존중한다. 그래도 나에게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순간'이 좀 더 소중하다. 나는 아무런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 무기력과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그걸 놓치지 않고 잡고 싶다. 저지르고 싶다. 나중에 후회하거나 우스워지더라도 그때의 궤적을 남겨 놓고 추억하고 싶다. 그런 이벤트가 없으면 인생은 점점 더 재미없어진다.


그래서 그냥 이왕 예약한 거 하기로 했다. 모양도 웬일인지 쉽게 정했다. 역시 모든 일은 마감기한이 있어야 진행이 되는 건가? 그저 막연하게 예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여름, 바다, 태양 등에 어울리는 타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키워드로 도안을 검색해보니 그중 야자수가 눈에 띄었다. 너무 귀여운 척하거나 쉽게 질릴 것 같은 도안들 빼고, 이파리를 하나하나 섬세하게 그린 시원한 야자수가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할머니가 된다고 해도 야자수나 여름휴가를 싫어하는 팍팍한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갑자기 야자수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갑자기 야자수를 혐오스럽거나 창피하게 느낄만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된 거 아닌지.


물론 이렇게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해도 '고통'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죽을 정도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이건 진짜 타투 하기 전의 전까지도 나를 괴롭혔다. 당일에는 친구와 함께 난리를 쳤다. 여기 아플까요? 여기가 더 아플까요, 저기가 더 아플까요? 받으면서 울기도 하나요? 마취 크림은 왜 안 쓰나요? 처음에는 우리의 과한 호들갑에 웃던 타투이스트도 나중에는 좀 질린 것 같았다.... (아참, 여러분. 마취 크림은 의료용이라서 타투 시술에 쓰이는 것은 불법이라고 합니다. 흑. )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면, 타투는 아프다. 하지만 부위에 따라, 사람에 따라 고통의 정도가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다. 나는 오른쪽 팔 안 쪽(팔꿈치 아래)에 약 7cm 정도의 크기로 야자수를 새겼는데, 40분 정도 걸렸다. 내가 느낀 고통을 10점 척도로 매긴다면 3점 정도? 아무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럽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수준. 느낌을 묘사하자면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이고 처음에는 생소하지만 몇 분만 지나도 곧바로 적응한다. 30분 이상 받는다면 지루함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내가 받은 부위가 가장 아프지 않은 부위에 속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종합해보면 살이 연하고 얇고 부드러운 부위일수록 더 아픈 듯하다. (예를 들면 목, 쇄골 근처, 갈비뼈 쪽 옆구리, 발목, 팔꿈치 위쪽의 안쪽 팔뚝살 등.)


약 2주 동안 연고를 잘 바르고, 최대한 그 부위에 비누칠을 빡빡하는 등의 자극을 가하지만 않는다면, 타투는 잘 자리 잡는다. 운이 좋았는지, 타투이스트가 실력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덧나지도 않고 정말 깔끔하게 잘 아물었다. 야자수 모양도 아주 마음에 들어서, 심지어 일하다가도 한 번씩 내 팔뚝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곤 한다. 빨리 야자수가 있는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



+) 아, 한 가지 빠트린 게 있다. 고통이나 미래의 후회 같은 것이 아니라, 당장의 부모님의 등짝 스매시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남의 가족사에 내가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지만... 하지만 보수적인 부모님 때문에 타투를 망설이는 여자분들에게는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 당신이 여자라면, 특히 장녀라면, 부모님은 되도록 빨리 실망시키는 편이 낫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건 버리기 연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