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런저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룸펜 Oct 04. 2019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노장의 사자후

wriiten by 토니 주트

  톨스토이는 말했다. “인간이 적응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은 없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조건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는 말이다.”라고. 이보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비정규직들은 파리 목숨같은 자리라도 유지하기 위해 비굴해져야하고, 정규직들은 언제 잘릴지 불안해하며 펀드와 주식으로 대박을 꿈꾼다. (여러분! 부자되세요!) 대학생들은 그 어머어마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허리가 휜다. 다들 재수 없는 직장상사와 오르지 않는 주식을 안주삼아 술 한 잔 걸치며 무지막지한 세상을 저주한다. 그러다가도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체념하기 일쑤다.       


  책을 읽는 내내 그렇지 않다고, 이 잔혹한 현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호소하는 토니 주트의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책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를 그런 마음으로 쓴 것이 아닐까. 남은 인생의 불꽃을 태워 병마와 싸우며, 젊은이들에게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간곡히 부탁하는 심정으로. 그래서 이 책의 언어는 간절하고 절박하다.     




  토니 주트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구절로 책을 시작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그는 빈부격차와 불평등으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되고 있는 모습에 분노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 때문이라고 역사적 사례들과 통계자료들을 제시하며 조목조목 비판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생의 목적은 부자가 되는 것이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은 조소의 대상이었다’는 구절은 놀라웠다. 아, 그 때는 사람들이 지금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했구나! 역사학자답게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이후 케인즈와 그 후예들이 어떻게 고삐 풀린 시장을 규제하고, 복지국가를 건설하였는지를 자세히 분석한다. 또한 그렇게 잘 돌아가던 복지국가가 어떤 계기로 몰락했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그는 몰락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복지국가의 혜택을 받은 전후 ‘68혁명세대’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관료화되고 경직된 복지국가 체제를 비판하며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했는데, 이것이 국가가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데 부정적인 우파들이 득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과거의 복지국가와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비교 분석한 후, 그는 현 상황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이며, 젊은이들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그 시발점으로 삶의 의미를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 고민해보는 공적 대화를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또한 미래 사회의 대안으로써 사회민주주의 혹은 복지국가의 빛나는 역사를 되돌아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평생을 이 분야에 천착한 대가가 쓴 글답게 복지국가/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주요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또한 서구 사회에서 양자가 어떤 식으로 논쟁을 벌이고 헤게모니를 장악해왔는지를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소모적으로 흐르고 있는 복지국가 논쟁에 유용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하지만 국가가 복지를 제공한 전통이 전무하고, 유럽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을 지닌 우리나라에서, 그가 제시하는 복지국가 모델이 얼마나 현실적합성을 가질 지는  의문이다. (재정건전성을 위해 세금을 올리자는 합리적인 의견조차 빨갱이로 몰아가는 이 나라에서!)     


  그럼에도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는 여전히 강력하다. 그것은 이 책이 대한민국의 현실을 끊임없이 직시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토니 주트가 보여주는 미국과 영국의 지난 30년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영국의 철도 민영화는 인천공항 매각을 둘러싼 논쟁을 떠올리게 하고, 미국의 ‘빗장공동체’는 얼마 전 폭우로 잠긴 서울의 어느 부자 동네를 생각나게 한다. 그렇게 이 책은 역설적이게도 다른 나라의 예를 통해 대한민국의 현실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보여준다. 고통스럽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가장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어디가 잘못된 지를 알아야 고칠 엄두라도 내 볼 테니까. 그런 후에야 우리는 토니 주트의 충고대로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제대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