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자의 마음책방#6 김초엽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선생님, 마음도 뇌수술을 해서 이 고통스러운 감정만 쏙 도려내는 게 가능하면 좋겠어요.”
상담실에 오신 분이 이런 말을 했을 때, 저도 들으면서 끄덕끄덕- 격하게 공감을 했었어요. 정말 우리 마음에 난 상처도 몸에 난 상처처럼 싹둑 잘라 내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상담실 대신 수술실에서는 이런 부탁이 오고 갈 것 같아요.
“20xx년 x월 x일 00시부터 00시까지 삭제 부탁드려요.”
“그 사람만 떠올리면 화가 나 미치겠어요. 제 화를 80% 정도 덜어내 주세요.”
이런 허무맹랑한(아, 오늘 살펴 볼 소설은 SF장르라, 마냥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네요. 혹시 모르죠. 미래에는??) 소망을 가져 보는 건 어쩌면 우리가 어떤 고통을 견뎌내는 게 그만큼 감당하기 버겁고 힘들 때가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데, 정말 아무런 고통이 없는 혹은 고통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에 수록된 단편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통해서 이야기 나눠볼까 해요. 김초엽 작가는 화학을 전공한 과학도인데요. 과학적 상상력에 따뜻한 감성을 더한 이 한 권의 소설로 어마어마한 호평과 팬들을 얻고 있는 초특집 신예작가입니다. 오늘 소개 할 단편 말고도 주옥같은 글이 많아서 강추해요!!!
그럼,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이 글은 시공간이 모호한 우주의 어느 마을에 사는 데이지가 소피라는 친구에게 보내는 "나는 지금 시초지로 가고 있어"라는 편지로 전개되는데요. 이 마을의 아이들은 성년식을 치르는 18살이 되면 시초지 라는 곳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주인공은 늘 이를 궁금하게 여기지요. 그래서 18살 전에는 절대 진실을 알 수 없는 게 마을의 규칙임에도 이를 깨고 시초지로 향하게 되요. 그 곳에 어떤 비밀이 있기에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는가 하구요.
사실 이들이 사는 마을은 말하자면 유토피아입니다. 절망, 혐오, 비탄 등의 감정은 책에서만 개념적으로 존재하는, 어느 누구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갈등과 고난, 전쟁 등도 없는 곳이에요.
언뜻 듣기에는 정말 좋지요? 회사에서 상사랑만 사이가 안 좋아도 매일 출근길이 괴롭고,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으면 참 괴로운데, 로또에 안 돼서, 애인이랑 싸워서, 원하던 시험에 떨어져서, 외로워서, 내가 마음이 안 들어서, 하루하루가 좌절과 슬픔의 연속인데 그런 부정적인 감정과 관계가 하나도 없다니요. 그런데 왜 여기를 떠나는 순례를 하는 것이고, 누군가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 걸까요?
나중에 밝혀진 진실은 이렇습니다. 이 마을은 만든 사람은 지구의 유전공학자였어요. 유전적 결함으로 자신과 같이 얼굴에 큰 상처를 갖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 딸아이가 이로 인해 어떤 혐오와 멸시도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뛰어나고 좋은 특질들-아름다움과 지성, 호기심과 매력 등의 조합을 통해 만든 인간들을 같은 기계 자궁으로 생산해 갈등과 고통이 없는 지구 밖 행성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 딸이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다시 지구를 방문하게 되고, 모든 것이 평화롭고 완벽한 마을 대신 불공평과 차별이 난무한, 서로에 대한 분노와 원망, 쓸쓸함과 외로움 등이 수시로 일어나는 지구에 남기를 선택하지요. 그리고 후손들에게 한 번은 남은 삶을 어디서 살아갈지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 그게 바로 순례 전통의 시작이었어요.
여러분은 어떨 것 같나요?
아무런 고통이 없는 세상과 가늠할 수 없는 각종 고통 그리고 행복이 뒤엉킨 세상 중 어디에서 살기를 선택할 것 같으신가요?
이 물음에 대해 소설은 이렇게 답하고 있어요.
유토피아 같은 마을에서
“우리가 왜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지를 생각해 본 적 있냐” 구요.
미움이 없는 세상은 아이러니 하게도 낭만적 감정이나 사랑이 존재하지 않고, 갈등이 없는 세상은 누군가를 위해,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맞서 싸울 용기와 의지를 생겨나게 하지 않는다구요. 그래서 딸도 지구에 남기를 한 것이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세상과 싸우기 위해.
우리는 흔히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만 사라진다면, 행복할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은, 행복을 맞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요?
가끔 어른들이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한 번씩 넘어져 봐야, 일어나는 것도 배운다’고요. 너무 힘들 때는 그 말이 참 야속하기도 했어요. 아니 그건 오래 산 어른들이나 하는 소리고, 어린 나는 뭘 안 배워도 좋으니 쭉 안 넘어지고 안 아프고 살고 싶다고! 라는 투정이 절로 나오던데요. 하지만 삶의 힘듦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단단함을 딛고, 우리는 더 의미 있는 행복을 누릴 수도 있을 거예요.
또, 얼마 전에 만난 분은 이런 말을 하시더라구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지긋지긋 하고 싫은데, 그 싫은 마음을 곰곰이 따라가다 보니 내가 일에서 뭘 원하는지를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고. 그 말을 하는 그 분의 표정이 참 개운하고 행복해보였는데요. 고통은 이렇게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가르쳐주는 좋은 신호가 될 때도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이 소설 속처럼 완벽한 세상에서는 완벽한 사람들끼리 사랑하는 일은 왠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어딘가 좀 부족해보여도 내 눈에는 그게 귀여울 때, 너도 참 고생하는구나, 사는 게 힘들지, 싶은 짠함이 생길 때, 상대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마음을 콕콕 찌를 때, 사랑은 싹트니까요.
비단 연인의 사랑이 아니어도, 약자에 대한 연민, 내 가족, 내 사람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정의, 우리가 함께 이 세상의 고통을 이겨내자는 연대감도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고통을 전제로 해야 가능하기도 하구요.
실제로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고통이 없는 상태라기보다는, 부정적인 경험과 긍정적인 경험 간의 상대적인 비율이 중요하다고 해요. 대략 1:3(부정:긍정) 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비율 보다도 부정 경험이 제로인 상태를 이상적인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점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고통이 없다면, 인생은 결정적인 간이 빠진 밍밍한 요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면서.
주인공 소피는 지구로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
이 짧은 두 줄이 작가가 정말로 전하고 싶은 말 같아요.
여러분도, 완벽하지 않은 나를 데리고 완전하지 않은 이 세상에 사는 게 참 만만치 않으시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울고, 그보다 더 자주 웃으며 고통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통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용기를 선택하며 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인생이 단맛만 가득든 재미없는 꾸러미가 아니라
단맛, 쓴맛, 짭짜름한 맛, 싱거운 맛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종합선물상자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