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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굥 Oct 03. 2018

서른 살의 아르바이트

한 달 전, 빵집 알바를 시작했다

서른 살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직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아르바이트라니! 10대 때나, 20대 때나, 지금의 30대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돈을 벌려는 것".


그렇다. 나는 돈이 없다. 직장이 있고 월급을 받지만, 말 그대로 "텅장"이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갈 뿐이다.


월급의 반 정도를 저죽하고 있다. 한 달에 고정적으로 집세, 교통비, 통신비, 적금, 보험 등등이 빠지면 수중에 남는 돈은 고작 몇 십만원 뿐이다. 신용카드라도 많이 쓰는 달에는 카드 값이 빠지고 나면 통장에 남는 돈이 하나도 없다. 이번 달이 그랬다. 카드 값 100만원이 빠지니, 정말 잔고가 0에 수렴했다. 며칠 전 첫 알바 월급을 받았는데 그거라도 없었으면 또 생활비를 신용카드로 쓰고, 다음 달에 카드 값을 내느라 현금이 고갈되는 사태를 막지 못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요즘 인생에서 가장 가난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듯 하다. 20대에는 자유 영혼으로 탕진잼에 시발 비용에 생각없이 돈 쓰는 걸 낙으로 삼은 터라 모은 돈이 하나도 없었다. 작년, 29살에는 적금에 주택청약까지 탈탈 털어서 외노자가 되고자 싱가폴로 야반도주를 벌였으니 돈이 있을 리가... 거기서 딱히 벌어 온 돈도 없고... 찬란한 20대를 보내고, 서른 살을 0원으로 맞이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가 나무라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돈을 모아야 한다! 남들 모을 때 썼던만큼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모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월급 외에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번역 알바를 시작했다. 한글 문장 50개를 영어로 번역하는 테스트를 거친 후, 처음으로 처리해야 물량이 들어왔다. 작업 비용은 500문장을 번역하는 데 10만원으로 책정되었다. 처음에 100문장 정도는 신나게 했는데, 그 이후부터는 진도가 안 나갔다. 내 자유 시간에 하기 싫은 번역을 하는데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또 회사에서 하루종일 앉아 있는데 퇴근하고 나서도 엉덩이 붙이고 하는 작업이 좀이 쑤시더라. 결국 첫 번역 물량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몇 번 작업 기일을 늦추다가 포기했다.


프리랜서처럼 일하는 것이 아니라, 딱 정해진 시간에 근무지에 가서 일하고 깔끔하게 돌아오는 알바를 찾아 보기로 했다. 일도 쉽고 시급도 최저임금보다 쎈 꿀 알바로 보이는 약국 알바가 있었는데, 그건 면접에서 낙방했다. 한 번 떨어져보니 알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렇게 부랴부랴 재지원 끝에 빵집 알바를 시작하게 됐다. 업무는 아침 7시반부터다. 주말 늦잠을 포기해야 하지만 아침부터 시작해 점심 즈음이면 일이 끝나기 때문에 개인 시간에 지장을 덜 준다. 회사와 알바를 병행한지 이제 한 달 가량 됐는데, 확실히 체력적으로 힘들다. 아침 늦잠을 잘 수 없고 (주 7일 근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루종일 서 있다보니 피로감이 배가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제일 힘든 이유는 빵집에 손님이 너무 많다. 빵 가격이 너무 저렴하고, 입지 상으로도 지하철 역과 버스 정류장이 교차되는 바로 앞에 빵집이 있다보니 손님이 몰릴 때 확 몰려서 미친 듯이 정신이 없다. 또, 오전에 빵이 왕창 나오는데 빵 정리와 포장 그리고 손님 응대를 동시 다발적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몸이 너무 고되다. 알바를 같이 하는 친구는 햇병아리 22살 대학생이다. 확실히 나보다는 몸놀림이 가벼워 보인다.  


몸이 피곤하고, 주말의 시간을 완전히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주말에 여행 같은 거 못 감) 돌이켜보면, 지금의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잘 시간 쪼개서 돈 버는 것 오케이, 회사에서 투 머치 데스크 잡을 하는데 움직이면서 일할 수 있다는 것 오케이, 내가 좋아하는 빵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 오케이, 집에서 3분 거리에 일터가 있다는 것 오케이, 일하는 사람이 잘 챙겨주고 인간적이라는 것 오케이. 참 쓸데없이

긍정적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어찌하랴. 중요한 건 가난에 허덕이다 보니, 완전히 짠순이가 되어 버린 것. 자취를 하다보니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느낌이다. 이제라도 경제 관념이 생겼으니 한층 보통의 인간에 가까워진 기분이다.


 물론 30대임에도 불구하고, 20대 때처럼 탕진하는 재미를 누리며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른들의 말은 틀린 게 없다.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저축은 필수라는 말. 그 중에서도 "결혼 자금만 모아놓고 나서 마음대로 써"라고 꼰대스러운 발언을 한 어른도 있었다. '남자 친구도 없는데, 결혼 자금을 위해 돈을 모아야 한다니? 결혼을 위해 내 현재의 즐거움을 저당 잡혀야 한다는 뜻인가?' 하고 마음 속으로 강력하게 거부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말 같지는 않다. 갑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이 생겨서 초고속으로 결혼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결혼은 갑작스럽게 미래의 돈이 들어갈 하나의 '사건'을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당분간은 직장 생활을 계속해서 매달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겠지만, 나중 일은 모른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1년 반 후면 전세가 끝나기 때문에 어떻게 살게 될지 모르고, 일을 때려치고 다시 해외로 훌쩍 떠난다든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여유 자금이 필요하다. 남들은 진즉에 깨달은 진리겠지만,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깨달았다.


쓰는 재미보다 모으는 재미를 느끼는 요즘.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되다니. 이렇게 철이 들어 가는 걸까?


오늘의 교훈

1. 30대에 직장+알바를 병행하며 뼈 빠지게 일하고 싶지 않으면, 20대부터 조금씩 저축하는 것도 방법이다.

2. 지금의 나같은 삶도 나쁘지도 않다. 삶에 정답은 없다. 본인이 살아가기 나름!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미덕이다. 스트레스 푸는 데 지르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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